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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영혼이야기] 독립문의 비밀

세덕 2012. 4. 6. 15:21

[차길진의 영혼이야기] 독립문의 비밀



청-일전쟁서 일본 승리 기념 의도 담겨" 

7월 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로 1776년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립했음을 만천하에 알리고 미국 정부를 세운 뜻 깊은 날로 미국인이 가장 열광하고 사랑하는 국경일이다.

그들에게 7월 4일이 있다면 우리에겐 8월 15일이 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우리 민족의 소원은 오직 하나, 독립이었으며 이를 위해 수많은 애국 열사들이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독립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얼마 전 독립투사 가문의 구명시식을 올리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그 가문은 독립을 위해 조부 및 친척들이 목숨을 바쳤는데 영가들은 아직도 조국을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의 독립은 불완전하며 여전히 국가의 향방을 가늠하기 힘들다'면서 현재 서대문에 위치한 독립문의 비밀을 성토했다. 현재 사적 제32호로 지정된 독립문은 1896년(건양1년)에 독립협회가 한국의 영구한 독립을 선언하기 위하여 청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迎恩門) 자리에 전 국민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하여 세웠다.

 독립문이 청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 자리에 세워졌다는 것은, 애초에 독립문 자체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닌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염원한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독립문이 기공된 해는 1896년으로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이듬해며, 특히 청일전쟁의 강화 조건에 '청국은 조선에서의 종주권을 완전 폐기한다'는 조항이 있어 당시 '독립'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다.

 왜 독립문은 프랑스 에투알 개선문을 본떴을까. 서재필의 스케치를 근거로 독일공사관의 스위스인 기사가 설계했다고는 하나 역사적 상황으로 미루어, 개선문의 이미지는 청일전쟁에서의 일본 승리를 기념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 예측은 독립문 앞뒤에 새겨진 편액을 보면 더욱 확실하다. 독립운동가 영가는 1924년 7월 15일자 동아일보의 기사를 거론하며 "나라를 팔아먹은 오적(五賊)의 우두머리인 이완용이 독립문 편액의 글씨를 썼소. 독립문은 '청국은 가고 일본은 오라'는 말도 안 되는 개선문인 셈이오"라고 했다.

 지난 YS정권 때 민족정기를 되살린다는 취지에서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했지만 정작 사라져야할 독립문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독립문의 '독립(獨立)'이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고 잘못 알려졌기 때문이다.

 엄연히 독립문은 청나라로부터의 완전 독립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요, 그 배후에는 일본이 있었다. 그렇기에 일제강점기 동안 굳건히 살아남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1928년에는 경성부 토목과에서 직접 보수공사까지 했다. 과연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꾀하는 상징물이었다면 경성부에서 당장 철거했지 왜 보수공사까지 하면서 관리했겠는가.

 이제 독립문의 진의(眞意)를 알았다면 독립문이 세워질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조선은 대대로 중국의 간섭에 시달렸다. 중국은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렸고 침략한 횟수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때마다 우리 민족은 사력을 다해 한반도를 지켜나갔고 현명한 외교술로 왕조를 이어갔다.

 그런데 현재 중국은 한국의 역사인 고구려를 그들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엄청난 물량공세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북한의 인접 국경 지역인 압록강변 대표 병력을 수비대 차원이 아닌 기동작전이 가능한 대규모 전투 병력으로 포진시켰다. 그들의 호전성에 또 한 번 놀랄 뿐이다.

 독립운동가 영가는 다시 한 번 조국의 완전 독립을 희구했다. 더 이상 어느 나라에도 휩쓸리지 않는 진정한 독립국이 되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독립문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민족의 앞날을 밝힐 새로운 상징물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맞아 현재 한국의 독립은 어떤 모습인지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