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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맥컬리프 버지니아 주지사가 마침내 동해병기 법안에 서명했다. 시한은 이달 9일까지였지만 시한을 열흘 앞두고 전격적으로 서명한 것이다. 이로써 올해 초 버지니아 주는 물론 워싱턴 정가까지 뜨겁게 달궜던 동해병기 논란에 마침표가 찍혔다.
최초로 동해병기를 명문화한 법이 탄생한 것이다. 오는 7월부터 버지니아 주 내의 모든 공립학교는 교과서나 지도 등 공식적으로 활용하는 모든 교재에 동해와 일본해를 함께 표기해야 한다. 통상 하나의 출판사가 여러 주에 걸쳐 교과서를 공급하기 때문에 다른 주에서도 동해가 함께 표기된 교과서가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한반도 오른쪽 바다가 동해라는 사실을 미국 학생들에게 분명히 알릴 수 있는 첫 걸음을 이제 겨우 내딛게 된 셈이다. 분명 큰 의미가 있고 환호할 만한 일이다. 뉴욕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잇따라 동해병기법안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해병기가 법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우리에게 남긴 것이 과연 무엇인가 이 시점에서 한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맥컬리프 버지니아 주지사는 당초 예상과 달리 법안에 서명한다는 사실을 한인단체에도 알리지 않았다. 혹시 있을지 모를 반대여론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안을 추진했던 한인단체들은 당초 성대한 법안 서명식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명과정을 보면 주지사의 의중은 분명해 보인다.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선출직 주지사로서 유권자가 한인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매컬리프 주지사는 후보 시절 동해 병기 법안을 지지한다고 했다가 주지사가 된 다음 몇 차례 말을 바꾼 전력이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이 로비스트까지 동원해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로비 활동을 벌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 과정을 뚫고 동해병기 법안이 결실을 맺은 것은 한인 단체들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라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실 조차 힘을 동원하지 않으면 이루기 힘든 것이 냉혹한 외교의 세계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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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그들이 저지른 가장 패륜적인 전쟁범죄인 위안부 문제에 조차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이를 외교문제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독도 문제 역시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국제 사회에서 힘이 없으면 곧 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가능하리라 생각지 않았던 동해병기 법안이 성사된 것도 어떻게 보면 우리의 국력이 그만큼 자란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워싱턴 주재 일본 대사가 투자 철수를 거론하며 버지니아 주지사를 압박하자 우리 대사관측은 과연 어느 나라가 버지니아에 더 많이 투자하고 있는지 잘 살펴보라며 대응했다고 한다. 유권자 수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또 하나, 우리의 주장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있는 싸움에서는 결코 냉정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다수의 한인 유권자들이 집단주장을 통해 미국의 교과서 내용을 바꾸려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한때 동해 병기법안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조성되기도 했었다. 워싱턴 포스트조차 유권자 운동으로 교과서 내용이 바뀌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많은 소수 민족들이 특정 지역에 살고 있는 다수의 유권자를 동원해 역사 교과서를 바꾸려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대단히 억울하지만 이런 평가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성과가 오히려 다른 지역의 한인 풀 뿌리 운동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의 목표는 미국 정부가 입장을 바꾸고 이런 움직임이 전 세계로 퍼져 최종적으로 국제수로 기구 총회에서 일본해를 동해로 바꾸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버지니아의 승리가 끝이 아니라 시작인 셈이다. 이 싸움을 통해 일본이 인정하지 않고 있는 그들의 범죄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버지니아 동해병기 법안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과연 무엇인지 무섭도록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할 때인 것이다.
신동욱 기자shin65@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