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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록유산>유교책판·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세계기록유산 등재
세덕
2015. 10. 11. 09:02
<세계기록유산>유교책판·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세계기록유산 등재
<세계기록유산>유교책판·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세계기록유산 등재

유교책판·이산가족 찾기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되다
지방 종가 등에 흩어진 조선시대 옛 문중 선조들의 책판(옛 책 내용을 활자로 새긴 목판)들은 오랫동안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덩치가 크고 분량이 많지만 오늘날 계속 찍어쓸 수도 없고 목질이라 원 상태로 보관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특별한 관리대책 없이 집 뒷방 구석이나 창고에 처박히는 경우가 많아 문화재절도범들의 주된 표적이 됐고, 고물상이나 골동상에 헐값으로 넘어가거나 심지어 땔감이나 불쏘시개로 쓰이기도 했다. 한동안 낡고 후진 고물 취급을 받으며 방치되다가 2000년대 이후에야 공공기관의 관리가 본격화된 이 책판들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반열에 오르게 됐다.
문화재청은 4~6일 열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국제자문위원회(IAC; International Advisory Committee of the UNESCO Memory of the World)의 12차 회의(아랍에미레이트 아부다비)에서 조선시대 유교책판과 한국방송(KBS)의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1983) 관련 기록물에 대한 ‘등재 권고’ 판정이 내려졌으며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추인으로 최종등재가 확정됐다고 10일 밝혔다.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 내부
등재된 유교책판은 2000년대 이래 305개 문중에서 경북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 관리를 위탁한 718종 6만4천226장으로 이뤄져 있다. 주된 내용은 문집과 성리학 서적, 족보·연보, 예법에 관한 예학서, 역사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훈몽서, 지리지 등이며 국학진흥원 수장고에 보관중이다. 이 책판들을 만든 주역은 각 향리의 지식인 선비들로, 문중, 학파, 서원, 지역사회의 공론을 모아 책의 내용을 기획하고, 경비도 추렴해 목판을 짜고 서적을 인쇄해 펴냈다. 유네스코 쪽은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500여년간 ‘도덕적 인간의 완성’이라는 일관된 주제 아래 스승의 학문을 후학이 이어받아 더욱 보완·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집단지성의 산물”이라고 평가했다.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 현장

사연을 홍보하는 이산가족들의 모습.
32년전 온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의 등재도 눈길을 끈다. 이 기록물은 한국방송이 83년 6~11월 특별생방송 기간 만든 비디오테이프, 담당 피디의 업무수첩, 이산가족이 쓴 신청서, 일일 방송진행표, 큐시트, 기념음반, 사진 등 2만522건의 방대한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전담인력 1천641명이 투입된 생방송에는 이산가족들의 사연 10만952건이 접수됐고, 이들 가운데 5만3천536건이 전파를 탔으며, 1만189건의 상봉이 이뤄졌다. 문화재청은 “냉전과 분단에 따른 이산가족의 아픔이 담긴 세계 유일의 기록물로, 전쟁의 비극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평화 메시지를 세계에 알렸다는 점에서 주요 등재기준인 진정성, 독창성, 세계적 중요성 등을 충족시켰다”고 전했다.
유교책판과 이산가족 생방송 기록물 등재로,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은 13개로 늘어났다. 한국은 1997년 <훈민정음> 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을 처음 등재시킨 이래 2001년 <승정원일기>와 <직지심체 요절>, 2007년에는 해인사 대장경판·제경판과 조선왕조 의궤, 2009년에는 한의서 <동의보감>을 목록에 올렸다. 뒤이어 2011년에는 <일성록>과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2013년은 <난중일기>와 새마을운동 기록물을 추가한 바 있다. 일찌감치 90년대 중반부터 정부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기록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한 덕분에 아시아권 국가중에서는 보유한 기록유산 숫자가 가장 많다.

‘KBS 이산가족 찾습니다’ 기록물
이번 유네스코 심사회의에서는 지난 세기 제국주의 일본의 학살, 위안부 동원 자료를 등재시키려는 중국과 이를 막으려는 일본의 치열한 물밑 외교전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우선 중국이 신청한 일본군의 난징대학살 관련 문건들은 일본정부의 반대에도 등재가 확정됐다. 이 문건은 일본군이 37년 12월 당시 중국 수도 난징시를 점령한 뒤 6주간 시민과 중국 군인들을 학살한 사실과 1945년 이후 전쟁 범죄자의 재판 관련 기록물을 포괄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함께 신청한 1931~49년 일본군 위안부 자료는 결국 최종 등재 목록에서 빠졌다. 중국이 유네스코 유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일본 정부의 항의 로비가 먹혀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의 경우 2차대전 종전 뒤 소련군에 붙잡혀 시베리아에 억류됐던 일본군 포로의 귀환 관련 자료와 옛 도읍 교토의 고찰 도지(東寺)에 소장한 고문서를 등재했다. 목표로 잡은 유산들은 모두 등재시켰지만, 일본 정부는 지난해 태평양전쟁 때 가미카제(자살돌격) 전투기 조종사들의 유품과 관련 기록들의 등재도 추진하다 국제적인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철회하기도 했다. 이번 심사회의 결과까지 포함해 중국과 일본이 등재한 세계기록유산은 각각 10건, 5건으로 한국보다 수치가 적다. 두 나라 모두 한국과 달리 최근 들어서야 기록유산 등재 경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한·중이 일본과 근대사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3국의 역사기록물 등재경쟁은 앞으로도 역사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세계기록유산은 국가를 넘어 세계사와 세계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역사적 시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서, 영상, 음성 등의 기록 자료 보존과 활용을 위한 제도다. 유네스코가 1992년 목록 사업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3백여 건을 등재했으며, 올해 심사회의에서는 60여개국이 신청한 88건 가운데 47건을 새로 등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