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광개토태왕>은 주인공 담덕(이태곤 분)이 고난과 시련을 거쳐 고구려 최고의 정복군주가 된다는 스토리를 제시하고 있다. 고난과 시련은 영웅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약방의 감초' 같은 것이다.
하늘이 담덕에게 부여한 고난과 시련은 무엇인가? 드라마에서 제시된 것은, 그가 고국양태왕(고국양왕)의 장남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둘째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차남의 설움을 톡톡히 치른다는 것이다.
드라마 속의 허구이기는 하지만, 담덕은 중국 왕조인 후연의 침공을 막는 데 일등 공로를 세웠다. 그런데도 반대파에서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기는커녕, 전쟁 중에 있었던 '개인플레이'를 문제 삼아 도리어 그를 징계 대상자로 전락시켰다.
심지어는 그를 참형에 처하려고까지 했다. 어차피 왕이 되지 못할 둘째아들이 너무 강해지면 고구려의 미래가 불안해진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런 일도 있었다. 전후처리를 위해 고구려를 방문한 후연 태자가 담덕을 독살하려 했다. 담덕 때문에 자기들이 패했다는 울분 때문이었다. 음모를 알아낸 담덕이 후연 태자에게 손찌검을 가하자, 반대파는 "왜 근거도 없이 외국 태자를 폭행하느냐?"며 담덕을 몰아세우고 이를 빌미로 그를 변방으로 유배 보내는 데 성공했다. 변방으로 가던 중 자객들의 습격을 받아 부상을 입은 담덕은 노예 상인들에게 끌려가 비참한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된다.
이처럼 이 드라마에서는 광개토태왕이 고난과 시련을 극복한 진정한 영웅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그가 어려서부터 차남의 설움을 겪었다는 식의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설정은 과연 얼마나 개연성이 있을까? 그는 정말로 자기 형과의 경쟁을 거쳐 태왕의 지위에 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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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개토태왕>에서 담덕의 형으로 나오는 담망 태자(정태우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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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덕은 정말 차남이었을까?
유감스럽게도,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서는 담덕이 고국양태왕의 몇째 아들인지는 알려주고 있지 않다. 그저 "광개토왕은 이름은 담덕이고 고국양왕의 아들이다"라고만 했을 뿐이다.
"사료에서 담덕이 몇째 아들인지 알려주지 않았다면, 역사소설가나 사극작가(이하 '역사작가')가 이에 관해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할까?
역사학자와 역사작가의 차이점이 있다. 역사학자는 특정 주제에 관한 사료가 없는 경우에는 일단 집필을 멈춘다. 사료가 없더라도 합리적 추론을 통해 사료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경우는 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역사학자는 그 주제에 관해 더 이상 기술하지 않는다.
이렇게 역사학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영역에서 역사작가는 빛을 발한다. 역사작가에게는 상상의 특권이 있다. 사료에 직접적인 기록이 없더라도, 혹은 합리적 추론을 가능케 하는 단서가 전혀 없더라도 역사작가는 상상을 통해 사료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
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하기 전에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에티켓'이 있다. 그것은 '기본적인' 조사작업 정도는 거친 다음에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 소설가나 만화가들은 작품을 집필하기 전에 사전조사를 진행한다. 예컨대, 음식에 관한 작품을 쓸 때는 노트나 카메라를 들고 식당 주방에 가서 자료를 수집하기도 한다. 법정에 관한 작품을 만들 때도 그와 유사한 사전작업을 한다.
어떤 경우에 그들은 역사학자들을 뺨칠 정도로 철저히 조사작업을 진행한다. 그들은 자료가 있는 곳을 부지런히 찾아다니고 또 열심히 공부한다. 그런 기초 위에 상상력이 더해지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들의 작품을 실감나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상상력은 '머리'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발'에서도 나오는 셈이다. 열심히 뛰어다녀야 더 좋은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준비 없이 처음부터 상상만으로 작품을 쓸 경우, 그것이 얼마나 재미없는 작품이 되리라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법률용어나 소송 방식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도 없는 작가가 오로지 상상만으로 창조해낸 법률 소설이 독자들에게 과연 얼마나 개연성을 제시할 수 있을까? 상상하기 전에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역사작가의 당연한 의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광개토태왕이 고국양태왕의 장남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도 그렇다. 물론 사료에는 그가 장남인지 차남인지에 관한 직접적인 기록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상상력부터 발휘해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간접적인 단서는 없는지를 최종적으로 확인한 연후에 상상력을 발휘하는 게 순서다.
<삼국사기>고구려 본기에, 그 단서가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단서가 될 만한 정보가 담겨 있다. 이것을 읽어 보면, 광개토태왕이 고국양태왕의 첫째아들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고구려 본기' 광개토태왕 편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광개토왕은) 태어나면서부터 웅장하고 위엄이 있었으며 기개 있고 뛰어난 의지를 가졌다. 고국양왕 3년에 태자로 세워졌고, 9년에 왕이 죽으니 태자가 왕위에 올랐다."
여기서 '9년'은 '8년'으로 정정되어야 한다. 고국양태왕은 384년에 즉위했고 광개토태왕은 391년에 즉위했다. <삼국사기>에서는 ○○왕이 즉위한 해부터 '○○왕 1년'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기 때문에, 광개토태왕이 즉위한 391년은 고국양태왕 입장에서 보면 '고국양태왕 8년'이다.
위의 기록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2가지다. 하나는, 담덕이 몇 살에 태자가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담덕은 고국양태왕 3년에 태자가 되었다. 서기로 치면 386년이다. 담덕이 374년에 태어났으므로, 그는 만 12세에 태자가 된 것이다.
또 하나는, 담덕이 고국양태왕 몇 년에 태자가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여타 태왕들과 비교할 때, 담덕은 상당히 빨리 태자에 책봉되었다. 예컨대, 담덕의 백부인 소수림태왕(소수림왕)은 고국원태왕(고국원왕) 25년에, 담덕의 할아버지인 고국원태왕은 미천태왕(미천왕) 15년에 태자가 되었다. 그에 비해 담덕은 고국양태왕 3년에 태자가 되었으니, 꽤 일찌감치 후계자가 된 셈이다.
담덕이 만 12세에, 그것도 고국양태왕의 집권 초기에 일찌감치 후계자가 된 것은, 그를 중심으로 하는 후계구도의 형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왕위를 놓고 그와 경쟁할 만한 라이벌이 없었음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만약 그에게 형이 있었다면 그처럼 빠른 나이에, 그것도 아버지의 집권 초기에 후계자가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형들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그는 좀더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삼국사기>의 표현처럼 외형상으로 웅장하고 위엄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훌륭한 의지를 갖고 있었던 데다가 태왕의 장남이었기 때문에, 담덕은 어린 나이에 별다른 장애 없이 태자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는 태자가 되기 위해 고난과 시련을 겪을 이유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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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연 태자 모용보(임호 분, 왼쪽)와 결투를 벌이는 담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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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그가 위대한 업적을 세울 수 있었던 진짜 이유
드라마 <광개토태왕>에서는 담덕이 위대한 업적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즉위 이전에 고난과 시련을 겪었기 때문이라는 식의 설정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였다고 보는 편이 훨씬 더 현실적이다.
태왕이 되는 과정에서 힘을 별로 소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즉위 이후에 그토록 엄청난 업적을 신속히 세울 수 있었다고 보는 게 훨씬 더 이치적이다. 예외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집권과정에서 반대파와의 투쟁으로 힘을 많이 소진한 군주들은 즉위한 후에도 반대파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광개토태왕의 경우에는, 그런 소모적인 경험이 없었기에 자신의 역량을 보존할 수 있었다고 보는 편이 맞는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 <광개토태왕>에서처럼 담덕을 차남으로 설정하고 그가 즉위과정에서 고난과 시련을 겪었을 것이라고 설정하게 되면, 우리는 그가 위대한 업적을 세울 수 있었던 진짜 이유를 놓치게 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21년의 재위기간 동안에 그가 그토록 많은 업적을 세울 수 있었다는 것은 그의 리더십이 누구보다도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영웅적 면모도 바로 그 리더십 속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광개토태왕이 어려서부터 어떤 방식으로 리더십을 체득했는지를 규명하지 않고, 차남의 설움을 극복하고 태왕이 되었다는 식의 엉뚱한 이야기를 전개한다면, 시청자들은 광개토태왕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셈이 된다.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광개토태왕이 어떤 방식으로 그처럼 위대한 국가를 세울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차남 설정은 이 같은 욕구를 도외시한 것이다.
지난 5월에 종영된 KBS1 <근초고왕>에서는 백제 비류왕의 둘째아들인 근초고왕을 넷째아들로 설정하더니, KBS2 <광개토태왕>에서는 첫째아들인 광개토태왕을 둘째아들로 설정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동생이 돼야만 영웅이 될 수 있는 무슨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인생을 살면서 극복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닌데도, 최근 사극들에서는 하필이면 혈육과의 경쟁관계 속에서만 그것을 찾으려 하니 이것은 상상력의 빈곤이라고밖에 평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아들로 태어나 장남인 양녕대군을 제치고 왕위에 오른 세종대왕만 훌륭한 게 아니다. 장남으로 태어나서 일찍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고 큰 업적을 세운 임금도 똑같이 훌륭하다고 평가해야 한다.
사실, '어떻게 왕이 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왕이 된 뒤에 어떻게 하느냐'다. 왕이 되기 전에 아무리 고생을 많이 했다 해도, 막상 왕이 된 뒤에 백성들이 싫어하는 일만 하고 백성들이 원치 않는 일만 하고 산다면 그런 왕을 과연 훌륭한 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출처 : 광개토태왕이 형과 싸워 왕 됐다고? 어이없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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