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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주 천지조화
삼한관경의 와해와 쇠망 삼한관경의 와해 동북아의 천자 나라로 발전을 거듭하던 고조선은 21세 소태단군 말기 무렵, 개국 이후 첫 번째 국가 위기상황을 맞이하였다. 국가 운영의 근간인 삼한관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상나라 정벌에 공을 세운 개사원 지역의 욕살褥薩(지방장관) 고등高登과 해성 욕살 서우여徐于餘의 권력투쟁이 그 발단이었다. 순행 길에 옥좌 이양 의사를 밝힌 단군은 서우여에게 제위를 넘기고자 하였다. 그러나 고등의 손자 색불루索弗婁가 군사를 일으켜 스스로 보위에 오르는 바람에 어쩔 수없이 색불루에게 국새를 넘겨주었다. 이에 서우여가 마한, 번한의 군대와 연합하여 색불루에게 강력히 저항하면서 삼한의 군대가 서로 싸우는 내전이 발발하였다. 다행히 두 사람 사이에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져서 ..
단군조선,47대 이어온 단군단군조선,47대 이어온 단군배달국시대가 1565년간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 환웅천황은 그 지역의 원주민인 곰을 토템으로 하는 곰종족과는 융화하고 통혼을 하였고, 범을 토템으로 하는 범종족은 무력으로 정복하기도 했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과 호랑이는 사실 곰족과 호족을 지칭한 것이다. 배달국의 마지막 18대 거불단(居弗檀) 환웅천황이 웅씨의 왕녀와 결혼하여 신묘(辛卯)년 5월 2일 인시(寅時)에 아들을 출산하니, 그가 바로 단군조선을 개국한 초대 단군왕검이시다. 단군왕검은 14살 때, 웅씨국의 비왕(裨王, 임금을 보좌하는 으뜸가는 벼슬)으로 봉해졌다가 38세 때, 구환국을 다시 통일하여 도읍을 송화강 부근의 아사달(하얼빈)에 세우고 나라를 세웠다. 개천 1565년(BC 2333..
단군조선과 북방 민족 간의 관계 단군조선과 흉노족 『단군세기』에는 고조선과 북방 민족 간의 관계를 알려 주는 귀중한 기록들이 있다. 3세 가륵단군 6년(BCE 2177) 조에 나오는“ 임금께서 열양 욕살 삭정索靖을 약수弱水 지방에 유배시켜 종신토록 감옥에 가둬 놓았다. 후에 용서하여 그 땅에 봉하시니 흉노의 시조가 되었다”라는 기록과 4세 오사구단군이 재위 원년인 BCE 2137년에 자신의 아우 오사달을‘ 몽고리한’에 봉했다는 기록, 또 30세 내휴단군 5년(BCE 905)에 흉노가 공물을 바쳤다는 기록, 32세 추밀단군 3년(BCE 847)에 선비산鮮卑山의 추장 문고가 공물을 바쳤다는 기록 등이 그것이다. 흉노, 선비, 돌궐, 몽골 등 여러 북방민족과 한민족의 관계를 살펴보면서, 그들의 세력 부침을 ..
한민족의 전성기 단군조선 한민족의 전성기 단군조선 단군왕검이 건국한 고조선 초대 환웅이 배달을 개국한 지 1,500여 년, 18세 환웅에 이르러 배달은 그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된다. 말기의 쇠한 국운을 보여주듯, 마지막 세 환웅은 역대 천황의 평균 수명에 못 미치는 짧은 생을 살았다.52) 특히 18세 거불단환웅은 82세로 가장 단명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배달 내부의 정치 상황과 동북아 정세가 매우 혼란스러웠음을 짐작하게 한다. 거불단 환웅이 세상을 떠나고, 14세에 비왕裨王으로 임명되어 24년간 제왕 수업을 받은 단군왕검이 천제의 아들로 추대되어 제위에 올랐다. 단군왕검은 배달 말기의 혼란을 잠재우고 9환족 전체를 하나로 통일하여 새로이 조선朝鮮이라는 나라를 열었다(BCE 2333). 단군왕검은..
배달겨레, ‘동이東夷’ 고대 동북아에서 수천 년 동안 위엄을 떨친 치우천황은 우리 역사에 또 다른 자취를 남겼다. 치우천황이 큰 활을 만들어 쓴 이래 중국인들이 동방 배달민족을 동이東夷라 부르게 된 것이다. 동이의‘ 이夷’는 자전字典에서‘ 큰 활을 잘 쏘는 동방 사람[東方之人也 從大從弓]’으로 풀이되는데, 이것은 치우천황이 쓴 큰 활의 위력에 놀란 서방 한족이 동방 민족을 동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다. ‘이夷’는 또한‘ 신을 대신하는 사람’과‘ 어진 사람’을 뜻한다. 은나라 갑골문에서 이夷는 시尸, 인人과 똑같이‘ 사람이 똑바로 서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시尸는 제사 때 신이 응감하도록 세워 놓은 신상으로‘ 신의 대리인’을 뜻한다. 이렇게‘ 이夷’를‘ 신의 대리인’을 뜻하는 말로 사용한 것은 당시..
한민족 최초국가 배달 한민족 최초국가 배달 거발환 환웅의 건국 지금으로부터 6천 년 전, 기후변동으로 환족의 일부가 근동으로 이주하여 수메르문명을 개척하고 있을 때 환족의 다른 한 갈래가 동방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인류의 첫 나라 환국 속에 구환족이 모두 통일되어 있던 시대가 끝나고, 나비의 두 날개처럼 인류 문명이 동서로 분화되는 극적인 대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환국시대 말, 인구 증가와 물자 부족으로 백성들이 살기 어려워지자 서자부庶子部 부족의 환웅이 새로운 터전을 개척하기를 갈망하였다. 이에 삼위산과 백두산을 두루 살펴 본 환국의 마지막 임금인 지위리智爲利 환인께서 백두산을‘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 곳’이라 하고, 환웅을 동방 개척의 선봉장으로 세우셨다. 환인은 백두산을 향해 떠나는 환웅에게..
인류 최초의 나라 환국 인류 최초의 나라 환국 현생 인류의 아버지 어머니‘, 나반’과‘ 아만’ 사람은 누구나 어느 종교를 믿고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지 인류의 기원에 대한 호기심과 의문을 안고 살아간다. 최초의 인류는‘ 루시’라 이름 붙인 화석인류가 발견됨으로써 밝혀진 약 350만 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이다. 그 후 약 20만 년 전 불을 사용할 줄 알고, 사냥을 하며, 사회를 이루어 서로 보살피며 살았던‘ 직립인(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우리가 인간다운 특징이라 생각하는 것을 처음으로 가진 존재였다. 그 다음으로 출현한 인류는 네안데르탈인이라고도 불리는‘ 슬기 인간(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언어를 사용하였고, 처음으로 배를 만들..
환단고기의 저자들 환단고기의 저자들 안함로 원동중 행촌 이암 복애거사 범장 일십당 이맥 삼성기 상을 지은 암함로안함로는 신라 진평왕 때의 도통한 승려이다. 성은 김씨이고, 안홍법사, 안함법사, 안함태安含殆 화상 등으로 불린다. 불교가 흥했던 신라의 대표적 고승 열 분을 기리는 신라 십성十聖 가운데 한 분이다. 23세(601, 진평왕 23) 때 수나라로 가서, 열반에 이르는 십승十乘의 비법과 심오한 불교 경전과 진문眞文을 공부하고 5년 후 서역의 승려들과 함께 귀국하였다. 일찍이 세속 너머의 세계에 뜻을 두었던 안함로는, 사물에 통달하고 지혜가 밝아, 번뇌의 속박을 벗어나 가고 머무름을 뜻대로 하였다. 또한 물 위를 걷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범상치 않은 신통력을 보였다고 한다(『해동고승전』). 이로 보건대..
환단고기는 무엇인가? 환단고기 >환단고기는 무엇인가? 환단고기는 안함로의 삼성기(삼성기 상), 원동중의 삼성기(삼성기 하),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 범장의 북부여기, 일십당 이맥의 태백일사를 모아 한 권으로 묶은 기념비적 사서이다. 신라의 고승 안함로에서 조선조 이맥에 이르기까지, 천 년 세월에 걸쳐 다섯 사람이 저술한 사서가 하나의 책으로 집대성 된 것이다. 한민족 고유 사서의 소실 예로부터 전해 오던 한민족의 고유 사서 대부분은 환국-배달-고조선의 삼성조 시대 이후 수천 년 동안 무수한 전란 속에서 화재로 소실되거나 외적에게 탈취되었다. 그리고 고려 때는 국시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유가와 불가 사상에 벗어난 사서들이 대거 소각되었다. 특히 고려 중기 김부식의 대대적인 사료 수거와 소각은..
임나일본부설 개요 임나일본부설 개요‘임나일본부’는 우리나라 삼국시대 가야라는 지역 즉 임나에 있었다는 일본 고대국가의 식민지 통치기구를 말한다. 종래 일본 내의 통설적인 견해로는 임나일본부는 왜가 신라를 위시한 삼한지역의 국가를 평정했다는 369년경 이 지역에 설치되어 562년 대가야가 멸망한 시기까지 존손하였다고 한다.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 스에마츠에 의해 보완되고 집대성되었는데([임나흥망사]1949) 그 주요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일본서기] 신공황후 49년(369)조에 보면, 아리타와케, 가가와케 등을 보내 백제 장수들과 함께 신라를 치고 이어서 가야지역의 일곱 나라를 평정하였다는 기사가 나온다. 이를 ‘가야 7국의 평정’이라 하는데 고대 일본의 임나 지배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