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大田의 본래 지명은 太田 본문

세상이 변한다./현실로 다가오는 예언

大田의 본래 지명은 太田

세덕 2012. 11. 19. 13:11

大田의 본래 지명은 太田

태전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은 경부선 철도의 개통을 알리는 <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의 기사에 태전이라는 지명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이후 모든 공식자료(대한제국 정부의 공식문서)에 이곳의 공식지명이 태전으로 기재되었다

그러던 태전이 대전으로 그 지명이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일본인 전중여수가 지은 <대전발전지>에 그 내막이 나온다 . 한일합방 되기 한 해 전인 1909년 1월의 일이다.

당시 순종황제를 호종하여 태전을 지나던 이등박문 통감이 이곳의 그 주변의 수려한 산세와 이름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아랫사람에게 태전지명을 바꾸어 대전이라 부르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

이렇게 이름을 고쳐 부르게 한 것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하여 금수강산 곳곳에 혈자리에다 쇠말뚝을 박거나 경복궁 앞에 '日'자 모양의 조선 총독부 건물을 지은것과 동일한 맥락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왜 이등박문은 태전(太田)을 대전(大田)이라고 부르게 했던 것일까?

한마디로 , 이름을 왜곡시킴으로써 그 지세의 기운을 꺽고 나아가 지기(地氣)를 받는 조선사람의 기운을 제어하고자 함이었다

참고자료

[백두산에 말뚝박고 제사지내는 일본인들]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도 쇠말뚝이!. 1943년 백두산 천지에서 일본 개국신을 기원하는 제사장면을 담은 사진이 최근 공개됐다. 사진가운데 민족정기를 말살하기위해 박아놓은 쇠말뚝이 보인다.

cf) 일본놈들이 말뚝만 박은게 아니라 민족정기 말살을 위해서 갖은 짓을 다 하였습니니다

“일본사람이 모든 섬 속을 샅샅이 뒤져 보고 물 밑까지 더듬었나니 (증산도 도전)

대전에 관한 예언들

 

[설총결 일부]

艮地太田龍華園에 三十六宮皆朝恩이라.

- 간방(한국)의 태전은 용화 낙원의 중심지라. 세계만국(36궁)이 그 은혜를 조회하리라

 

[정감록의 일부]

살아자수(殺我者誰)오 소두무족(小頭無足)이 신부지(神不知)라.
활아자수(活我者誰)오 사답칠두락(寺沓七斗洛)에 부금(浮金)은 냉금(冷金)하니
종금(從金)하라. 엄택곡부(奄宅曲阜)라.

삼인일석(三人一夕)은 이재전전(利在田田)하니 도하지(道下止)하라.

-이재전전(利在田田)은 진리가 매듭지어지는 구원의 도가 태전(太田)에 있으니

그 도에서 머물러 구원을 받으라(道下止)는 소식이다.

 

[태전가사]

송송가가(松松家家)지낸 후에 이재전전(利在田田) 밭을 갈아, 안태전(安太田)을 많이 갈아, 궁을궁을(弓乙弓乙) 때가 오니 어느 밭에 가잔말가.

-지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 살아나는 법방인 송송가가 후에, 앞으로 궁궁을을의 때에는 태전에서 살아나는 법방이 나온다는 뜻.

 

[춘산채지가]

내 손 잡고 놓지마라 떨어자면 아니된다. 우리 오빠 매몰하네 왜 이같이 못오는가? 우리 서울 새서울 이리가면 옳게 가네(남강철교 중에서)

여름도수 지나가고 추분도수(秋分度數) 닥쳤으니, 천지절후(天地節候) 개정(改正)할 때 오장육부 환장(換臟)이라. 수토복통(水土腹痛) 앓을 적에 임사호천(臨死呼天) 급하더라, 구년홍수(九年洪水) 몰아드니 몸돌릴 틈 없었구나. 이재전전(利在田田) 찾아가니 (칠월식과 중에서)

-천지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우주가을 대개벽기의 위급한 상황에는 새서울인 태전에 가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격암유록]

利在田田陰陽田 二人太田水田穀 天牛耕田 田田

大難全世人心洶洶하니 入田券 얻기가 極難구나. (격암유록 전전가)

-가을 대개벽기에 태전에서 출세하는 두 사람이 인간추수를 하며, 전세계 사람들의 인심이 흉흉할 그때에는 태전에 들어가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풍수지리로 본 후천 새서울 '대전'

-증산도 안운산 태상종도사님 말씀

 

 

지리(地理)만은 역(逆)해야 된다(1): 수도 서울의 형국

세상만사가 다 순(順)해야 되는데 지리만은 역(逆)해야 되는 이치가 있다

경조오부(京兆五部)

1861년에 김정호가 펴낸 대동여지도에 수록된 서울(당시 한양) 지도

서울이 어떻게 생겼냐? 저 북악산이 그냥 춤추는 것처럼 떡허니 내려와서 이쪽 오른쪽에 친 가지를 인왕산이라고 한다.
이 인왕산 줄기 쪽에 신촌, 연희동 등이 있고 또 이화여대, 연세대학교 같은 게 여기 잔뜩 붙어 있다. 또 인왕산 줄기를 타고 죽 내려오면 저쪽으로 넘어가는 굴을 뚫어놓은 사직터널이 있다. 그 사직터널 거기서부터 산줄기가 미끄러져 내려와 서대문, 서소문이 생기고 남대문까지 와서, 그 줄기가 남산을 치켜올렸다.


그래서 이 서대문, 서소문, 남대문 이쪽 물은 이 위로 이렇게 해서 청계천 쪽으로 빠지고 반대쪽 인왕산 줄기 서쪽 물은 저 밑으로 해서 용산 저쪽으로 빠져나간다. 이쪽 판도가 그렇게 된 것이다.
이 인왕산 줄기 안쪽 물과, 북악산 골탱이서부터 남산 골탱이 그 서울 장안 안 물은 전부 청계천으로 모여들어 거꾸로 치올라가 중랑천으로 해서 빠져나간다. 그런데 지금은 복개해서 안보이지만, 이
청계천 물이 흐르는 방향은 한강 물줄기가 흐르는 방향과 정반대이다. 한강은 동에서 서로 저 김포 강화도 쪽으로 냅다 흐르지만, 이 청계천 물은 묘하게도 서에서 동으로 역(逆)하며 거꾸로 흐른다.

그러니까 서울에 도읍터 하나 만들기 위해 청계천 물이 그렇게 역(逆)을 했다는 말이다 저 북한강 남한강 물이 양수리부터 합해져 대세는 이렇게 서쪽으로 냅다 빠지는데, 요 서대문 서소문 남대문 남산 안 물만 거꾸로 치올라간다. 그렇게 된 데가 어디 있어? 지리는 이렇게 역(逆)을 해야 터가 생기는 것이다. 집터도, 묘자리도 다 그렇다. 그렇게 되어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다. 이렇게 역(逆)을 하지 않으면 절대 자리가 안 생기는 것이다.

서울의 지세
북한산, 인왕산, 남산으로 둘러싸인 4대문 안쪽 물은 모두 청계천에 모여들어 불과 몇Km를 역(逆)하면서 흐르다 중랑천으로 빠져 나간다.
청계천이 역수(逆水)하는 거리가 얼마 안되지만 1392년에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래, 오늘날까지 600년이 넘게 도읍터의 생기를 발하고 있다.

그러면 그 청계천이 역(逆)하면서 흐르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그저 몇 키로 될 뿐이다. 서대문 남산 경복궁, 그게 얼마 안 된다. 그렇게 좁아터진 데다. 그래도 그 기운 가지고 조선왕조 500년을 끌고왔다.그리고 노량진에서 제일한강교를 넘다보면 가운데 중지도라고 있다. 이게 왜 생겼냐? 한강물이 냅다 빠지는데, 중간에 중지도가 있어 서울 기운이 빠지는 걸 막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밤섬이 있다.

내가 어릴 때 보면 거기에도 오막살이가 있어 사람이 살았었다. 홍수가 밀려오면 밤섬 같은 건 그냥 쓸려가 버리고 말 것 같은 데, 그게 여러 만년 그 자리에 그냥 있다. 가만히 생각해 봐라. 큰 홍수가 져서 그냥 막 물이 떠내려가는데 그게 어떻게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지를. 십년 전에도 백년 전에도 천년 전에도 그 잘잘한 밤섬이 여러개 그대로 있다. 또 그런가하면 그 밑에 여의도가 있다. 또 조금 더 내려가면 난지도가 있고, 저 강화도에 가면 ‘손돌목’이라는 데가 있어 강이 요렇게 기역자로 꼬부라져 있다. 그게 다 설기(洩氣)되는 기운을 차단하기 위해 그런 것이다.

지리(地理)만은 역(逆)해야 된다(2): 후천의 새서울, 대전(大田)의 형국

그러면 여기 이 대전(大田)은 서울과 비교할 때 어떻게 생겼냐? 진안, 무주 저쪽에서부터 추풍령, 속리산 물이 전부 거꾸로 치오른다.

여기 이 금강 줄기를 가만히 봐라. 그렇지? 우리 나라 대세가 전부 이렇게 위에서 아래로, 북에서 남으로 흘러내려 가는데, 이쪽 물은 거꾸로 남에서 북으로 거꾸로 오르잖아. 아니 추풍령, 무주, 진안, 장수가 저기 남쪽 아니냐? 저기에서 이쪽으로 거꾸로 치오른다. 이것을 이렇게 얘기해 주기 전에는, 추풍령은 저기고 물은 그저 이렇게 흐르고, 그렇게 지나가고 마는 것이다. 모르니까.

하지만 알고 보니까, 그 참 이상하게도 물이 거꾸로 올라온다. 이렇게 금강으로 거꾸로 공주까지 치오른다. 저 공주에 고마나루(곰나루)라고 있다. 그 고마나루까지 물이 거꾸로 기어 올라가서, 거기서부터는 부여 저쪽으로 이렇게 구부러져서 장항 군산 그쪽으로 순(順)하게 그냥 내려간다.

여기가 세계통일국가가 형성되기 위한 자리가 되느라고 이렇게 된 것이다. 이 세계에서 자리가 이렇게 된 데가 없다. 가만히 생각해봐라. 추풍령이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를. 아니 서울 터와 한번 비교를 해봐라. 여기에 비하면, 서울 터는 손바닥만 한 것이다. 여기 대전이 서울 터의 몇백배에 해당한다.

속리산 저쪽에서부터 장수, 진안, 무주로 해서 장장 저기 공주까기, 여기가 그렇게 크게 역(逆)을 한 곳이다. 여기에서 공주 가려면 마티터널 뚫리기 전에는 대평리를 거쳐 가면 자동차로 대전에서 근 한 시간이나 걸렸다. 여기가 그렇게 범위가 크다. 자그마치 우리 나라 중심부 절반을 역(逆)을 한 곳이다.

지리학상으로 볼 때 지구의 혈이 바로 남북한을 통털어 대한민국이고, 이 대한민국 중에서도 오직 대전이 자리한 중부지방 이곳만이 그렇게 크게 역(逆)을 했다.

이곳 대전이 본래 지구의 혈이다.

본래 천지가 형성될 때부터 후천 5만년 세계통일정부가 세워지도록 이렇게 마련되어져 있는 것이다. 알고서 보면 본래 그렇게 된 것이다. 이 천지의 비밀을 누가 알겠나?

그래서 지리학상으로 볼 때도 상제님이 이 땅에 오시게 된 것이고, 또 이 대전에 세계통일정부를 건설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천지의 비밀이 되어 내가 얘기하고 싶지 않지만 이런 것도 좀 아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내가 참고로 얘기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