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문수행이야말로 단시간에 가장 쉽고도 깊은 경지에 까지 들어갈 수있는 수행법이다. 개벽의 대세는 너무도 급박해서 천천히 수행을 할 겨를이 없다. 그리고 현대 문명은 너무도 복잡하고 사람을 산란하게 하기 때문에 참선이나 단전호흡, 비파사나 명상과 같은 수행은 적합하지 않다.
2. 스승이 제자에게 직접 가르치지 않고도 주문의 핵심인 비자 만트라(Vija, 산스크리트어로 '씨'를 의미함)로 수행의 궁극의 경지를 가르칠 수 있다.
3. 주문 수행이야말로 모든 수행법의 결론이다. 모든 수행은 자신의 精과 神을 통일 하기 위한 것이다.
단학 수행은 精의 압축, 정화하여 丹을 만들고, 출신出神하는데 주력을 했는가 하면, 그렇지만 그 길은 쉽지 않다. 단을 만드는데는 엄청난 육체적 고통이 따르며 정신적인 고통도 아울러 따른다.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
참선이라는 것은 자신의 일심으로 집중하여 神이 明化될 수있도록 하였다. 그렇지만 精이 튼튼하여 건강한 신체와 정신력을 바탕으로 두지 않는 참선이란 국민학생이 42.195km 마라톤에 나서는 것과 같다.
명상이라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관조하면서 헛된 망상이 나오는 곳을 분별하여 定과 靜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데.. 참선과 같이 한계가 있다. 그리고 조식호흡에 바탕을 두지 않고는 결정적으로 靜에 들어갈 수 없다.
사랑의 실천이나 時中의 도를 얻는 것은 모두 십자(十)의 조화력을 얻는데 있다. 그렇지만 인간의 몸 자체가 기울어져 있는데 바른 정신 자세을 가지지 않고는 이루어 낼 수 없다.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버리라고 하지만 그것은 모두 마음을 곧게 가지라는 것이다. 몸을 이야기하지 않는 수행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
태을주 주문 수행은 精과 神을 같이 연단하는 수행이다. 그렇지만 태을주의 근본정신을 벗어나서 수행하면 난법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4. 태을주와 운장주는 짝이 되어서 운장주는 대차력주로서 잡신과 척신의 접근을 막기 때문에 태을주의 효력을 배가 시킨다.
5. 태을주는 신명의 엄호를 받게 함으로써 지금과 같은 척신 발동의 시기에 신변을 보호해준다.
6. 태을주의 주신은 태을천 상원군이다. 태을천 상원군은 태을천의 가장 높은 근원된 하느님이다. 태을천은 지금까지 인류의 어느 성자도 정확히 말하지 못한 뿌리되는 하늘이다. 그 말은 지금까지 어떤 지금까지 선천 성자도 태을천의 기운과 하나된 경험이 없었다는 의미이다.
7. 후천 문명의 주체는 神道이다. 태을주는 신명을 안정케하고 신도를 통하게 하는 주문으로서, 그냥 일심 자리에서 열리는 체험정도를 최고의 체험으로 인정하는 선천 수행과는 격을 달리한다. 또 내공을 쌓아서 제 기력으로 수행의 효력을 보기에 선천 수행은 너무도 오래걸리며 어려워서 복잡한 시대에 사는 현대인은 쉽게 포기하고 만다.
태을주로써 모든 후천 문명의 기본 틀의 성격이 주어진다.
8. 후천은 陰의 시대로 陽의 수행법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靜보다는 動이다. 動靜之靜이라는 말처럼 오히려 더 깊은 靜에 들어가게 할 수 있다.
9. 선천에는 천지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산에서 수행을 하지만,
지금은 인간에 천지기운이 갊아드는 때이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人道를 잘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최상의 사람이다. 태을주는 개벽기에 사람을 살리는 주문으로 人道를 실천하면서 人道를 깨닫게 해준다.
10. 우주 통치자 하느님이 내려주신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