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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과 명상/영혼의 세계

전생 닭집주인에게 붙은 동물령들

세덕 2013. 4. 4. 14:16

전생 닭집주인에게 붙은 동물령들
전생 닭집주인에게 붙은 동물령들



 어렸을 때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느 집에나 닭 한 마리는 꼭 키웠다. 닭은 여러모로 유용한 동물이다. 못 살던 시절엔 달걀 하나면 진수성찬이었고, 귀한 손님이 오면 그 자리에서 닭을 잡아 손님상에 올렸다. 또 새벽엔 알람시계 역할까지 훌륭히 수행했다.
 그 뿐 아니다. 닭은 무속인들도 유용하게 썼다. 닭의 피로 부적을 써 영험을 더했고 부정을 쫓기 위해 실제로 산 닭의 목을 자르고 환자의 머리카락이나 손톱, 발톱 등을 닭에게 먹여 병을 물리치기도 했다. 정초에 닭이 그려진 그림을 대문에 붙여놓았던 옛 풍습으로 미루어보아 민가에선 닭을 나쁜 귀신을 쫓는 영험한 동물로 추앙했음이 틀림없다. 그런 닭에게 잘못 보였다면 인생이 편안할 리 없다.
 얼마 전, 몇 십년 동안 보이지 않는 사람소리 때문에 고통 받아온 부인이 찾아왔다. 항상 여자 둘에 남자 하나가 자신에게 욕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받고 있었다. "법사님, 이번에는 끝장을 봐야겠습니다. 도대체 왜 나를 괴롭히는지 그 이유라도 알아야겠습니다."
 남이 못 듣는 영가 소리를 듣는 부인 심정이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어떤 면으로는 영능력자이지만 남이 보면 영락없이 정신이상자였다. 나는 되도록 이런 문제에선 빠지고 싶었다. 특히 빙의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해 잘못하면 문제가 커질 수 있었다. 단순히 빙의령을 쫓아낸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인의 경우는 좀 달랐다. 코미디언 수준의 아줌마라 사람이 순수하고 맑아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 "법사님, 욕을 얻어먹어도 이유라도 알아야하지 않습니까. 아무 이유없이 욕 들어봐요, 사람 미칩니다."
 결국 나는 아주머니가 영가에게 욕 듣는 이유를 밝히기 위해 구명시식을 올려줬다. 그런데 구명시식에서 드러난 사실은 정말 기가 막혔다. 현생은 마음 좋고 씩씩한 보통 아줌마지만 전생은 수천 마리의 닭을 도살한 닭집 주인이었다.
 아무리 먹고 살기 위해 닭을 도살했다지만 닭의 입장에선 용서할 수 없는 살생이었다. 한 두 마리 정도라면 모를까, 하루에 십 여 마리씩을 죽이자 닭들은 다시 태어난 아줌마를 괴롭히기로 결정했다.
 "부인에게 들리는 환청은 사실 사람 소리가 아닙니다. 모두 닭의 소리입니다." 닭이 죽을 때 내는 '꼬꼬댁' 소리가 아줌마 귀에는 사람이 욕하는 소리로 들렸다. 전생의 과보였던 셈이다. 이 얘기를 그대로 해줬더니 아줌마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방금 전 영단 앞에 앉아 술을 올릴 때 생긴 일을 털어놨다.
 "아, 글쎄 제가 술을 막 올리려는데 거짓말 안 하고 수백 마리의 닭들이 떼거지로 저한테 덤비더라니까요. 저는 그래서 제가 전생에 닭인 줄 알았어요. 그 닭이 다 제가 전생에 죽인 닭이라 이거죠? 거참, 신기하네. 정말 영혼이 있군요."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분명 전생에 수천 마리의 닭을 도살했다면 현생은 몸이 불구거나 아주 가난하게 살아야 했는데 아줌마는 건강하고 유쾌하게 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아줌마는 음식솜씨가 좋아 남들에게 음식을 많이 베푸는 등 착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닭들이 그녀를 해칠 수 없었던 것. "죽은 닭의 동물령들이 귀찮게 떠드는 정도로 그치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세요."
 그러자 그녀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닭들아, 미안하다. 앞으로는 너희들을 생각해서 닭고기는 안 먹도록 노력 해볼게." 그 순간 법당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참느라 혼쭐이 났다. 닭띠 해를 맞아 본의 아니게 닭을 위한 집단 구명시식을 올려준 아주머니에게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

 

<스포츠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