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큰 효로써 보은하는 후손, 상제님의 참 일꾼이 되겠습니다! 본문
큰 효로써 보은하는 후손, 상제님의 참 일꾼이 되겠습니다!
김명기(43세) / 서울 동대문도장 / 도기 139년 7월 26일 입도
참된 진리를 만나게 해주신 상제님과 태모님, 조상 선령님께 무한한 영광을 올립니다.
후천에는 선천에서 못다한 가수의 꿈을 이루어, 상제님 진리의 하모니로 승화시켜 모든 일꾼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습니다. 개벽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하고 또 나아가 가난하고 힘들고 괴로움에 지친 선량한 사람들을 있는 힘껏 많이 살려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독교와 천주교 신앙 체험
저는 어렸을 때에 동네 지하에서 방석을 깔고 예배 보던 조그만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때는 신앙이라기보다 그냥 교회에 가면 맛있는 과자도 주고, 성가부르기 대회에서 상을 받아 학용품 받는 재미로 다니곤 했습니다.
그후 고등학교를 기독교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종교란에 항상 기독교라고 적었습니다. 술, 담배 하는 친구들이 걱정돼 말리기도 했고 진실로 그 친구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친구한테‘결벽증 아니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고 다툰 적도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장래희망과 대학문제로 고민하던 어느 날,‘ 여호와의 증인’이란 분들이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직접 여러 가지 책을 보면서 한때는 그곳이 참된 진리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종교는 아니었기에 성경 말씀대로 사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저렇듯 비난해도, 굴하지 않고 진리를 전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참된 사람들이 아닐까?’그래서 그 사람들의 말대로 군대 대신 징역을 살겠다고 하는 바람에 집안에서 난리가 난 적도 있습니다.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난 일이었지만, 제 성격이 원래 의심하기보다는 먼저 믿고보는 성격이어서 그랬나 봅니다.
그후 결혼을 했는데 처갓집이 독실하게 천주교를 믿어온 집안이었습니다. 결혼을 하려면 영세를 받고 결혼식을 성당에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결혼은 일반 예식장에서 하고 성당에서도 약식으로 한 번 더 하겠다. 영세는 결혼 후 바로 받겠다’고 설득하여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 후 약속대로 1년간 성당에서 교리를 받고 마침내 영세도 받았습니다. 제가 영세받던 날 장인과 장모님, 아내가 무척 기뻐하더군요.
조상님을 모시는 치성
하지만 채 몇달 지나지 않아, 박사학위까지 받은 친척 형님이 저를 설득하러 찾아오셨습니다. 조상님을 잘 모시는 곳이 있으니 치성을 드려야 우리 후손들이 잘 풀린다고 날마다 찾아와 말했습니다. 저희 집안은 작은집이었지만, 종손인 사촌형님이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제 부모님을 부모님 이상으로 여기며 잘 지내왔고 또 어렸을 때부터 항상 제사며 시제를 같이 모셔 왔던 터였습니다. 해서 형님의 설득에 거부감은 느끼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그곳이 대순진리회라는 것을 눈치 채고 말렸지만 딱 한번만 그곳에 다녀오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곳을 방문한 날 치성을 올리고 나서 형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벌써 오래 전에 인간으로 다녀가셨다. 또 증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오셨다.”저는 이 말을 듣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님 말씀처럼 그렇게 엄청나게 좋은 진리라면, 많은 파(派)도 있을 테고 종교이름도‘증산’이라는 명칭이 들어가야지 왜 대순진리라는 이름을 쓰냐면서 형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형님은‘대순진리’라는 이름에 대한 해석을 해주면서‘증산도’라는 곳도 있고 여러 파가 있다면서 대순진리회를 빼놓고는‘전부 다 정통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박한경이라는 분은 부처님이 환생하시어 우리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라고 하더군요. 그때 저는 완강히 부정하기보다는‘그럴 수도 있겠다’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성경 말씀에“깨어 있지 않으면 그분(하나님)께서 도적같이 오리라”는 말씀을 항상 제 가슴에 새기고 있었던 터라‘예수님도 인간으로 오실 수 있는데 그를 보낸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못 오실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얼마 후 부처라고 생각했던 박한경이란 사람이 갑자기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지요. 그때 대순진리회 내의 분위기가 좀 의아하기도 하고, 충격을 받은 그런 모습들이었어요. 당시 저는 아내의 극렬한 반대가 있었고 의심스러운 생각도 들어서 그곳에 더이상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형님을 선산에 묻던 날
남들은 다 힘들다던 IMF 시절, 저는 오히려 하던 사업이 잘 풀려서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항상 어렵게만 살다가 갑자기 경제적인 혜택을 누리게 되자 도리어 사치와 방탕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것은 거의 다 해봤으니 마음껏 해원한 셈이지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장남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형님이 돌연 말기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온 집안이 하루아침에 울음바다로 변했습니다. 형님이 몇 개월을 못 넘긴다는 소리를 병원에서 듣고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괴로웠습니다. 저는 제가 하던 일을 모두 내던져서라도 반드시 형님을 살리겠다는 각오로, 좋다는 병원이나 요양원이라면 다 찾아서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당시에 저는, 착하고 바르게 살아오신 형님 대신 저를 하늘로 데려가 달라고 울부짖으며 하나님과 조상님들께 기도하며 눈물로 매달렸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우리 집안에 장남으로 태어난 형님은 중학교를 마치고 독학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우리 가족을 지켜주셨습니다. 저를 비롯한 동생들에게는 아버지 같은 분이었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노동자운동의 일환으로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재소자들에게 기술과 취직을 알선해 주는 등 봉사를 계속하셨습니다. 제가 늘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느 정도 먹고살만하니 형님을 하늘로 보내야 한다는 것이 저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전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형님 대신 저를 데려가 주십사 울며불며 매달렸던 기도에도 불구하고 형님은 허무하게 우리 곁을 떠나 저 세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때 고향에 있는 납골묘지에 찾아가 조상님들한테 원망의 절규를 했습니다. 왜 부모님 가슴에 피맺인 대못을 박는 건지~! 왜 제 기도를 안들어 주는 건지~! 조상님들께서 정말 후손을 보살피시기는 하는 거냐~! 하며 대들었습니다. 다시는 정성껏 제사 지내지 않을 거라며, 조상님들의 납골묘에 형님을 모시던 날 저는 속으로 울부짖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상 선령님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조상님의 원과 한을 듣다
저는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둘째형은 제가 어렸을 때 이미 병으로 돌아가시고 남은 큰형님마저 보내고 나니 저는 외아들이 되었습니다. 부모님한테 들은 얘기로는 둘째형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똑같은 병으로 다시 죽음의 문턱까지 가서 모두들 포기하고 있을 때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이나 물에 빠져 떠내려 가다가 기사회생으로 살아났었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저는 명이 길 거라고 얘기를 했답니다.
어쨌든 저는 큰형님을 떠나보낸 후,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어려워졌고 형님을 잃은 상실감마저 큰 나머지‘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의미없고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형님이 너무 배고파하고 힘겨워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천도식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후‘다시 돈을 벌어야겠구나’하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아가 족보를 보면서 저의 고조부님대에까지 올라가며 있었던 모든 일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일이 두 번이나 있었고 물이 무서웠기에 혹시 조상님 중에 물에 빠져 돌아가신 분이 없냐고 아버지한테 처음으로 여쭈어 봤습니다. 고조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두 번째 고조모님이 들어오셨는데, 자식들과 손자들한테 친자식처럼 잘 대해 주셨던 분이 그만 물에 빠져 돌아가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더우기 작은 할아버지 세 분이 연속으로 어린 시절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아버지 위로 큰아버지 세 분이 또 어렸을 적에 연속으로 돌아가셨다는 충격적인 말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증조부님의 아들 손자 여섯 분이 이유 없이 돌아가시자, 너무 화가 난 증조부님께서 두 번째 고조모님의 탓일 거라며 그분의 산소를 파헤쳐 없애버리셨다는 말씀을 듣고는 정말 놀랐습니다.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가 물에 빠져서 죽을 뻔한 일을 당한 것은 억울한 일을 당하신 일을 하소연하시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조상님들께서 나를 세 번이나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 주신 것은 내가 꼭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구나!’
운명이라는 신비에 이끌려
노무현 대통령과 관계된 인터넷 카페와 친일파 청산 카페 & 예언 등의 카페 활동을 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증산도’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증산도 홈페이지에 들어가서‘태사부님’‘사부님’오디오 도훈을 듣기도 하고 모든 글과 영상들을 밤새 듣고 또 들으며 일주일 내내 읽어 보았습니다. 알고 보니‘증산도 진리’라는 것이 참으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러다가 하선녀 성도님의 카페와 블로그에서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대구에 살던 분이 서울에 잠깐 올라왔을 때 만나게 되었으니 참으로 인연이라는 것은 신비하기도하고 알 수가 없더군요. 형님이 돌아가시기 몇년 전에 어떤 분이 저한테 장남이 될 팔자 같다고 했을 때에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현실이 되고보니 운명의 이끌림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장남 노릇 제대로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 때 불효자라고 했던 사람도 나중에는 정말 큰 효를 할 수 있다.”이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말뿐 아니라 진실로 조상님들께 효도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철없이 굴었던 저의 불효를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를 염원합니다. 앞으로는 정말 큰 효로써 보은할 수 있는 후손이 되자고 경건하게 다짐합니다.
일꾼을 대나무에 비유하시면서 가장 하찮은 것들을 거두어 쓰신다 하신 상제님의 말씀에 힘을 얻습니다. 또 큰 복을 받기 전에는 항상 화를 먼저 주신다는 말씀에 새삼 용기를 얻습니다. 지금까지 제게 왔던 모든 시련은 앞으로 더 큰 상제님의 일꾼이 되라는 채찍이고 과정이었음을 꼭 명심하겠습니다.
매일 전화와 문자로 챙겨주시고, 절실한 눈물의 기도로 저를 이끌어 주신 대구 대명도장의 인도자 하선녀 성도님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좋은 인도자를 만나게 해주신 조상님들께 한없는 감사를 느낍니다. 또 부족한 저를 친 가족처럼 따뜻하게 맞이해 주시고 입도교육이며 수행이며 적극 도와주신 동대문도장의 이준석 수호사님과 박진수 교정님을 비롯한 모든 성도님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개숙여 깊이 감사 드립니다. 참 일꾼이 될 것을 천지일월 하느님께 약속드립니다.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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