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자의 역사 >
"환단고기"에 나타난 나타난 문자창조와 발달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녹도문 (鹿圖文) : 기원전 3890년 경
시조한웅은 신지 혁덕에게 문자를 만들게 하였는데 사냥나가 사슴발자국을 보고 만물의 모양을 관찰하여 마침내 문자를 만드니 태고문자(그림문자)의 시작이다. (BC. 3,890년)
※ 보충설명
시조환웅은 환인으로부터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구두로 전수 받고 왕권을 물려 받았는데 신지씨가 녹도문을 만든 뒤 이것을 문자로 기록하였다. 세상에서 맨 처음 지은 책이고 경서이다. (신시본기)
< 태고문자(녹도문) : 남해각자 (南海刻子) >
일찍이
- 남해도 양하리 계곡과 - 경박호 - 선춘령 - 오소리 밖의 바위에서
때때로 범자(梵字)도 아니고 전자(篆字)도 아닌 것이 발견된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신지씨가 만든 옛글자가 아니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다시한번 우리나라의 미진함과 우리겨레의 약함을 한탄한다 (환단고기, 규원사화)
대변경주에 이르기를 남해현 양하리 계곡 바위에 신시의 옛 색임고각(古刻)이 있으니 그 글에서는
"환웅천왕이 사냥와서 삼신께 제사 올리다" "桓雄出? 致祭三神"
라고 하였다
- 보충설명 -
① 태고문자(녹도문) : 남해각자 (南海刻子)
- 경남 남해군 양하리의 금산(錦山) 중턱바위에 녹도문인 남해각자가 있다 - 송호수 저 "위대한 민족" 표지사진
② 경박호(鏡泊湖)
- 흑룡강성 영안현의 서남쪽에 있는데 암벽의 글씨 탁본이 현존 - 1998년 10월 송호수박사가 직접 현지 확인 - 이것이 단군 제 3세 가륵임금때 삼랑을보륵이 만든 가림다 38자와 같다함 (확인 필요 : 추후 확인자료를 별도로 올리겠습니다 - 운영자)
③ 선춘령 : 고려 북방인 두만강 북쪽 600리 (흥개호 남단)
④ 오소리(烏蘇里) 강 : 길림성 동편 오소리, 만주어로 천왕(天王)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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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 고구려 유기(留記 : 100권)가 전하는 백산청암벽(白山靑岩壁)의 기호 "ㄱ" - 평양법수교하(平壤法首橋下)의 고비문 (운영자 주 - 사진 입수 노력중)
등 고대문자의 흔적이 남아 있다
2. 용서(龍書) : 기원전 3,500년경
태호복희는 팔괘부호를 만들고 용서(龍書)를 만들었다.(신시본기)
3. 육서(六書: 여섯 가지 글자체)
주양은 옛 문자에 의하여 처음으로 육서(六書: 여섯 가지 글자체)를 만들었다.(신시본기)
4. 우서(雨書) : 기원전 2,800년 경
자부선생(BC.2800년경)이 우서(雨書)를 만들어 칠회제신의 책력(음양오행력)을 만들고 삼황내문(三皇內文: 천황, 지황, 인황의 진리경서)을 지었는데
후세의 은나라는 칠회제신력을 기초로 하여 일주일 내내 해, 달, 물(수성), 불(화성), 목성(나무), 금성, 땅에 차례로 제사를 지내는 풍속을 가졌다.
이것이 일주일의 원형이다.
중국의 황제헌원은 치우환웅을 배알하고 가는 도중 산동성의 자부선생에게 들려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아 공부하여 - 신들을 부리는 능력을 얻고 군사를 모아 - 신농국을 멸하여 임금이 되고 - 마침내 치우환웅과 70여회의 전쟁을 한 중국의 시조다.
후에 삼황내문의 한권을 정리하여 음부경을 지었는데 중국 주(周)나라 초(BC.1,200년경)에 여상 강태공이 주(注)를 달아 자부선생의 뜻을 조술하였다.
치우환웅, 황제헌원과 같은시대의 인물들인데 북경서쪽에 위치한 황제헌원과 북쪽에 있던 대요(大堯)는 간지의 술(十干十二支의 사용법)을 배웠고, 북경동쪽에 있던 창힐(倉 )은 부도(符圖:천부경이 쓰여진 녹도문: 그림문자)의 글을 배웠다. (삼성기전하편, 검불본기)
5. 산목(算木), 화서(花書 : 투전목 : 鬪佃文)
치우한웅 이전에는 산목(계산법을 적는 숫자)이 있었고(BC.4,000∼BC.2,700) 치우때는 화서(花書 : 투전목 : 세계의 카드와 화투의 시초)(BC.2,800)와 산목이 있었 고, 부여때는 서산(書算: 계산법)이 있었다. (태백일사)
< 투전목 >
< 산목 >
< 전목 >
6. 신전(神篆)
시조환웅 원년(BC.2,457)에 신지(행정장관)에게 글자를 만들게 하다. 신전(神篆)은 은나라 갑골문의 원형이며
부여시대의 왕문이란 사람이 전문이 복잡하여 약간 생략하여 부예(符隸: 예서)를 만들고 진(秦)나라 때(약 BC.200년경) 정막이 숙신(고조선)에 사신으로 왔다가 왕문(王文)의 예서를 바꾸어 팔분(八分)을 만들고 진(晉)나라 때 왕차중(왕문의 후손)이 해서(楷書)로 발전시킨 것이 한문(漢文)이다.
문자의 시원은 모두 녹도문이고 한문과 한글 모두 우리민족이 만든 것이다. 인류역사에서 두 가지의 문자를 만들어 오랫동안 사용한 민족은 우리밖에 없다.
BC 2,391년 태자 부루를 (중국 안휘성) 도산에 보내 순임금의 치수관 우사공(나중의 夏나라 禹임금)에게
- 험난한 곳을 다녀도 해를 입지 않는 천부왕인(天符王印), - 물의 깊이를 측정할 수 있는 신침(神針), - 황거종(皇鉅宗) ☞ 황거종 : 우주진리, 음양오행, 오행치수법 등을 적은 여러권의 책으로서 표지는 금간옥첩金簡玉牒이라고도 한다
의 세가지 보물(黃帝中經 : 황제중경은 금간옥첩중의 한권일 것임)을 전해주니 그로부터 중국의 치산치수가 잘 되었고 이 공로로 우사공은 순임금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고 나라이름을 하(夏)로 하여 하나라의 시조가 된다. (신시본기, 단군세기)
7. BC 2305년 삼랑 을보륵에게 글자를 만들게 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어 가림토라 하였다 (단군세기)
< 정음38자 >
< 가림토, 훈민정음, 일본 신대문자 비교 >
※ 가림토
이 문자는 한글과 똑같으며 지금도 인도의 구자라트 지역에서 사용하고 있다. 한국, 인도, 수메르가 서로 교류하였으니 이때 이후에 가림토가 전해졌을 것인데 인도에서 쓰는 가림토가 언제 전해졌는지, 또 일본의 아히루 신대문자에는 어떻게 영향 되었는지를 연구해야 한다.
깊이 연구도 하지 않고 외래문명이 한국에 榕楮都鳴?만 생각하고 주장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인도는 우리민족이 6,500년 전부터 이동하여 살았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파동적으로 이동한 역사적 사실(몽골족의 무갈제국 등)들이 있으므로 불교의 석가모니가 사용했던 산스크리트어(범어)가 바로 우리의 방언에 속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세종대왕의 한글은 몽골족에 의하여 인도로부터 중앙아시아에 전해진 가림토를 본 따서 만든 것이다.
세종실록 25년 12월조에 "---其字倣古篆(---其字倣古篆)"이라고 하여 "그 글자는 옛 전자를 모방했다"라고 하였으나
"전자(篆字)에서는 한글원형을 모두 찾기가 어렵다
< 길림시 송호상 교수의 증언 - 동이민족 논설중 일부 >
"산동성 환대(山東省 桓臺)시에서 발굴된 가림토문자{加臨土文字(옛 한글)}는 조선의 한글이 세종대왕의 발명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으며,
지하 6m 깊이에서 발굴된 녹각에 새겨진 ㅅ ㅈ × ㅜ 등의 가림토문자는 C14 측정결과 거금 3850년 전의 것으로 확인하였으니,
환단고기의 '가림토 문자가 4000년 전에 있었다'고 하는 내용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녹각 사진은 구하는 중임 - 운영자)
< 관련지도 >
< 일본신대 문자와 오향청언 >
일본사학자 오향청언(吾鄕淸彦)은 그의 저서 "일본신대문자(神代文字:대마도에서 발견)"에서
"아히루 문자와 한글이 친자(親子)관계에 있다"는 것을 논하면서 - "아히루 문자를 실크로드계의 문자"라 기술하고 있다
또한 - "그런고로 가림다(加臨多)문자 즉 원시한글이 고조선에서 창작된 문자인 이상 한글계의 아히루문자가 대마도에서 발견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라고 하였다
"오향"의 연구는 한자 이전에 문자가 우리나라에 통용되고 있었음을 밝히고 있으며, 세종대왕의 한글이 백지 상태에서 이룩된 것이 아니고 소위 한글의 전신인 원시한글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오향"은 저서 말미부분에 "아히루 문자는 한자 도래이전에 일본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는 결론을 유도하여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이것이 80년대 말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하였던 "한글은 일본민족이 만들었다"라는 소설책(?)의 이론적 배경이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환단고기의 이러한 내용들을 우리가 연구도 안하고 방치하는 동안 일본은 이미 30년전부터 환단고기 연구에 저만치 앞서가 자기들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을 하고 있다
우리는 군데군데 위서의 흔적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있고 일본은 이곳저곳 자기네 역사에 유리한 문장을 찾아 이용해 먹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자기의 역사는 자기스스로 지키고 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운영자 주)
8. 책력 : 기원전 2,220년
BC 2,220년 육십갑자를 이용하여 책력을 만들었다.
※ 십간십이지
십간십이지는 옛부터 있었는데 책력을 만든 것은 처음이란 뜻이다.
중국 서량지의 "중국사 전사화"에
"중국의 책력법은 동이에서 시작되었다. 책력을 만든 사람은 희화자(犧和子)이다. 그의 계통은 은나라 동이조상이다. 동이가 달력을 만든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하였다. (임승국의 한단고기)
9. BC 1,957년 나라를 순수하다 요하 남쪽(하북성)에 순수관경비를 세워 역대 제왕들의 이름을 새겼다. (문자사용 증거)
10. BC 1,465년 공공인 공홀이 구한의 지도를 제작했다. (문자사용 증거)
11. BC.1,409년 금 8법 제정(문자사용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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