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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각한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 (AP=연합뉴스 DB) |
우크라에 압박 공세-"이미 크림으로 군대 파견" 주장도
러시아 외무 "5월 조기대선 시기상조-서방 개입 말아야"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러시아가 친러 성향의 대통령을 몰아내고 친서방 성향의 야권이 권력을 잡은 우크라이나에 대해 압박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그동안 러시아에 의존해온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실각하고 친서방을 표방한 야권 주도의 의회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흔들리고 있는데 대한 대응 조치다.
우크라이나 인터넷 매체 '우크라인스카야 프라브다' 등에 따르면 러시아 하원 독립국가연합(CIS·옛 소련권 국가 모임) 문제 담당 위원회 위원장 레이니트 슬루츠키가 이끄는 의회 대표단이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방문했다.
◇ 러'의회 대표단 "크림 반도 병합할 수도"
의회 대표단은 크림 지방 정부 및 지역 의회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크라이 정국 위기에 우려를 표시하면서 우크라이나 야권이 지난 21일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주요 야당 지도자들이 서명한 정국 위기 타개 협정을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의원들은 또 러시아 당국이 크림반도에 거주하는 러시아계 주민들에 대해 자국 여권을 간소화한 절차에 따라 발급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대표단은 이밖에 크림 주민들의 투표나 지역 의회 결정으로 크림을 러시아에 병합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러시아는 이를 신속히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원들의 이같은 발언은 우크라이나가 정치 위기의 와중에 친러 성향의 동남부 지역과 친서방 성향의 중서부 지역이 충돌해 국가 분열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진 상황을 고려할 때 상당히 민감한 것이었다.
향후 우크라 정국 추이에 따라 러시아가 크림반도 병합을 시도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슬루츠키 위원장은 간소화된 절차에 따른 여권 발급이 시작됐다는 자신의 발언이 현지 언론 보도로 파문을 일으키자 "크림 언론이 원하는 바를 사실로 잘못 전달했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는 "이 문제는 아주 미묘한 것으로 특별한 검토와 국가 지도부의 결정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면서도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우크라이나 형제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며 일련의 조치들이 조만간 취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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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러성향의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오른쪽) (EPA=연합뉴스 DB) |
◇ 남오세티야 상황 크림서 재현 가능성
러시아는 지난 2000년대 초반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내 자치공화국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 주민들에게 대규모로 러시아 여권을 발급한 바 있다.
이후 두 공화국에 거주하는 러시아인 보호를 명분으로 2008년 8월 조지아와의 전면전을 시작했었다.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에 대한 조지아의 군사작전으로 위험에 처한 두 공화국 내 러시아 국적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자위권 발동이란 논리였다. 러시아는 전쟁이 끝난 후 두 공화국이 독립을 선포하자 서둘러 이를 승인했다.
러시아 의회 대표단의 발언은 유사한 상황이 크림반도에서도 벌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현재도 주민의 50% 이상이 러시아인으로 친러 성향이 강한 크림반도가 새로 들어선 우크라이나 중앙 권력의 친서방 정책에 반대해 분리·독립을 선언하거나 러시아에 합병을 요청하면 러시아가 이를 적극 수용할 것이란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우크라이나 중앙 권력이 크림의 분리·독립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군사 작전에 나서고 러시아가 이에 맞서 크림으로 군대를 파견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잖아도 러시아는 크림반도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소련 붕괴 이후 지난 1954년 우크라이나 출신의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친선의 표시로 그때까지 러시아에 속해있던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넘긴 조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반도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 왔다.
러시아는 지금도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항을 자국 흑해함대 주둔 기지로 조차해 사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국가 분열 시나리오가 크림에서부터 촉발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 러'외무 "5월 조기대선 시기상조…서방 개입 말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5일 우크라이나의 5월 조기대선은 시기상조라며 대선 계획은 지난 21일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야권 지도자들이 서명한 정국 위기 타개 협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모스크바를 방문한 장 아셀본 룩셈부르크 외무장관과의 회담한 뒤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야권이 협정을 통해 오는 9월까지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개헌을 실시하고 그 이후에 연말까지 조기 대선을 치르는 방안에 합의했었다며 "5월 조기 대선에 관한 의회 결정은 이같은 합의 파기"라고 비판했다.
라브로프는 이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할 생각이 없으며 서방 파트너들도 같은 태도를 취해주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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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발터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왼쪽부터), 비탈리 클리치코 '개혁을 위한 우크라이나 민주동맹'(UDAR) 당수, 올렉 탸그니복 '스보보다'(자유당) 당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 아르세니 야체뉵 '바티키프쉬나'(조국당) 대표, 라도슬라프 시코르시크 폴란드 외무장관 등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수도 키예프에서 진행된 우크라이나 정국 위기 타개 타협안 서명식 (AP=연합뉴스) |
그는 러시아가 지난해 말 약속했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150억 달러 차관 지원 문제와 관련, 우크라이나의 새 정부에 어떤 인사들이 포진하고 내각이 어떤 프로그램을 추진할지가 분명해지면 지원을 재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하루 전 우크라이나에 약속한 차관 2차분 20억 달러의 전달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힌 바 있다.
라브로프는 "서방이 '우리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원칙에 기초한 선택을 우크라이나에 강요하는 것은 건설적이지 않다"면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하는 것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 우크라産 식료품 수입 중단도 경고
러시아는 또 우크라이나산 일부 식료품에 대한 수입을 잠정 중단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내놨다.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검역위생감시국 국장 세르게이 단크베르트는 이날 러시아와 관세동맹(러시아-벨라루스-카자흐스탄)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산 일부 식료품에 대한 수입을 잠정 중단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단크베르트 국장은 우크라이나의 정치·사회 혼란으로 수출 식료품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이같은 조치의 이유로 들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 압박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이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와 외무부는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주요 야당 지도자들이 서명한 정국 위기 타개 협정을 파기하고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한 우크라이나 의회의 합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세르게이 나리슈킨 러시아 하원 의장도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어떤 권력이든 법률과 헌법에 기초하고 있으면 견고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정치 위기 앞에서 무력할 수 밖에 없다"면서 "우크라이나의 권력은 합법성의 기초를 다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의회 권력의 합법성에 마찬가지로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 우크라 지도자 "러', 크림으로 이미 군대 파견"
한편 극우민족주의 성향의 우크라이나 주요 야당 '스보보다'(자유당) 당수 올렉 탸그니복은 24일 러시아가 세바스토폴항을 침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현지 인터넷 신문 '우크라인스카야 프라브다'가 전했다.
탸그니복은 이날 의회 연설에서 "내 정보에 따르면 세바스토폴로 이미 러시아 군대가 이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늘 낮에 러시아 남부 항구 도시 템륙에서 세바스토폴로 흑해함대 소속 대형 상륙함 '니콜라이 필첸코'가 도착할 예정"이라면서 "이 상륙함에는 200명의 병력과 10대의 장갑차 등이 실려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러시아 남부도시 소치에서 (우크라이나에 가까운 인근 도시) 아나파로 6대의 '밀(Mi)-8' 전투헬기가 이동배치됐다고 덧붙였다.
탸그니복은 "우크라이나가 전 정권이 초래한 무서운 경제위기와 함께 북쪽 이웃(러시아)과의 문제에도 직면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러시아는 그러나 아직 우크라이나로의 군전력 이동에 대해 확인하지 않고 있다.
cjyo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