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고조선을 우리 고대사 시대 구분에서 빼야 합니까."
"그렇다면 고조선 실체는 뭡니까. 유물 등의 고고학적인 근거들이 충분히 있어야지요."
열띤 고성이 오갔지만, 논의는 좀처럼 실마리를 잡지 못했다. 지난달 21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열린 '한국사 시대구분론 외부 전문가 초청 포럼'은 난상 토론장이었다. 고고학·역사학계가 제각기 다른 개념과 잣대를 써 혼란이 극에 달한 현 한국 고대사 시대 구분과 명칭에 대한 두 학계 학자들의 물밑 의견들이 분출했다.
60년대 이래 교과서와 별개로 역사·고고학계는 선사 이래 삼국시대까지의 한국 고대사를 놓고 개설서 등에서 각기 다른 시대사 명칭을 써왔다. '구석기-신석기'의 선사시대 이후를 고고학계는 '청동기-초기철기-원삼국-삼국시대'로, 역사학계는 '고조선-삼국시대' 혹은 '전기 삼국시대(열국시대)-삼국시대' 등으로 표기해왔다. 중고교 교과서는 '선사시대-고조선과 여러 나라의 성장-삼국시대' 등으로 풀어 쓰는 등 제각각이다. 고고학자들은 물질 수단 중심으로, 역사학자들은 왕조사 중심 관행을 고집해왔다.
고고학은 물질적 수단 중심 역사쪽은 왕조사 중심 서술 발굴성과 해외판 발간 맞춰 "난맥상 정리를" 한목소리
포럼은 이런 답답한 상황을 반영한 자리였다. 지난해 국내 발굴성과를 소개하는 <고고학저널>의 해외판 발간과 2014년 <고고학사전>의 영문판 발간을 앞둔 연구소 쪽이 출간물의 공식 시대사 용어에 대해 고고·역사학자들의 교감을 모아보기 위해 급히 준비한 것이다. 포럼 발제를 맡은 학자들은 관점은 달랐지만, 교과서 따로 학계 따로 다른 용어와 시대 구분을 쓰는 난맥상을 빨리 정리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남규 한신대 교수는 "1986년 전국고고학대회에서 고고학계가 청동기-초기철기-원삼국-삼국시대로 시대 구분을 정했지만, 지역 학계, 학자, 박물관 등에서 자의적으로 다른 용어를 남발하면서 논란이 가중됐다. 학계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못해 국민에게 혼란만 안겨줬다"고 비판했다. 고조선사 전공인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는 "학계 시대사 구분에 역사적 실체로 판명된 고조선을 넣어야 한다"고 했고, 최성락 목포대 교수도 "효용성을 잃은 초기 철기, 원삼국 시대구분을 재고하고 두 학계가 고조선의 실체를 반영한 통합적 시대 구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동조론을 폈다.
이런 고조선 반영론에는 고고학계 참석자들도 상당수 공감했다. 김길식 교수(용인대) 등은 그동안 삼국시대, 원삼국 시대 이전 단계를 역사시대 이전 범주인 청동기, 철기시대로만 취급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반면 청동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기원전 20~1세기 사이 고조선의 고고 문화적 특징이 확실하지 않다는 한계를 직시하고 연구를 좀더 진척시켜야 한다거나(조영제 경상대 교수), 명칭 개정이 학계 현장에서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최종택 고려대 교수)도 만만치 않았다. 연구소 쪽은 "연구소 간행물 연표나 시대용어 등에 고조선을 공식 표기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모은 것만으로도 성과"라고 자평했다.
뒤이어 지난달 25일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영남고고학회와 한국상과사학회가 공동주최한 '선사에서 역사로-초기 철기 원삼국시대의 상한과 하한'에 대한 합동워크숍도 비슷한 취지였지만, 뚜렷한 합일점을 얻지는 못했다. 삼한, 고구려, 부여가 나란히 존재했던 삼국시대 이전 모호한 시기가 철기-원삼국이라는 기존 고고학계의 시대 구분과 어떻게 부합되느냐를 놓고 판이한 의견차를 확인했을 뿐이다. 두 학계가 '체면'과 '권위'에만 기대 시대사 논의에 소홀했던 타성을 벗어나야 한다고 소장 연구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노형석 기자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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