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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첩포>백첩포-문익점보다 800년 전? "면직물 생산과 목화 재배는 다르다" 본문

역사 이야기/잊혀진 역사

<백첩포>백첩포-문익점보다 800년 전? "면직물 생산과 목화 재배는 다르다"

세덕 2015. 11. 30. 14:28

<백첩포>백첩포-문익점보다 800년 전? "면직물 생산과 목화 재배는 다르다"
<백첩포>백첩포-문익점보다 800년 전? "면직물 생산과 목화 재배는 다르다"

 

2010-07-16 헤럴드경제

 우리나라에 목화씨를 맨 먼저 가져온 인물은? 당연히 고려 말 학자 문익점(1329∼1398)이라 하겠죠. 문익점은 1363년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붓대 속에 목화씨를 몰래 숨겨 와 장인 정천익과 함께 고향(경남 산청)에서 재배에 성공했지요. 목화 재배 성공은 당시 헐벗은 백성들의 옷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혁신을 불러일으킨 역사적 사건이랍니다.

 

그런데 문익점의 목화씨 반입 시점보다 800년이나 앞서 제작된 백제시대 면직물이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모았습니다. 1999년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수습한 유물 가운데 폭 2㎝, 길이 12㎝의 직물을 첨단 기자재인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관찰한 결과, 식물성 셀룰로스 섬유로 짠 면으로 목화에서 실을 뽑아 직조한 것으로 분석됐다는 겁니다.

 

능산리 절터는 백제 위덕왕(재위 554∼598) 때 제작된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가 함께 출토된 곳으로 이 직물의 제작 시기를 감안하면 국내 가장 오래된 면직물이라는 얘기입니다. 이 면직물은 강한 꼬임의 위사(緯絲·씨실)를 사용해 직조방식으로 짠 것으로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도 이 같은 사례가 아직 보고된 바 없다고 합니다.

 

이 면직물이 백제에서 재배한 목화를 재료로 제작됐다면 문익점을 통해 한반도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진 한국 면직의 역사는 다시 쓰여져야 할 것입니다. 문익점 이전에도 한반도에서 면직물을 생산한 기록이 확인됩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문왕 9년(869) 조를 보면 같은 해 7월에 신라가 당나라에 보낸 공물 목록에 ‘백첩포(白疊布) 40필’이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백첩포는 삼국시대에 사용된 면직물의 일종으로 이를 짜는 원료가 문익점의 목화와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게 학계의 연구 결과입니다. 목화는 크게 인도종과 아프리카종 두 가지가 있답니다. 문익점이 들여온 목화는 인도종이고, 그 이전 한반도에서 면직물 원료로 삼은 목화는 초면(草綿)이라고 하는 아프리카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면직물 역시 아프리카종 목화를 원료로 한 것으로 백첩포와 유사하다는 것이죠. 이 목화는 삼국시대 일부 재배되기는 했지만 토양과 기후가 맞지 않아 실용화되지는 못했다는군요. 따라서 문익점의 목화씨 반입은 한반도 전역에 목화 재배를 본격화하고 면직물 사용을 대중화시킨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국립부여박물관이 10월 16일까지 특별전 ‘고대직물-유물 속에 숨은 유물’을 연다고 합니다. 백제 능산리 출토 면직물은 물론이고 신라 천마총 출토 직물과 석가탑 출토 ‘금동제 사리 외함’(국보 제126-28호) 등 100여점의 고대직물 자료를 선보입니다. 이런 유물들이 문익점의 목화씨와 어떤 연관이 있고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요.

 

문화생활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