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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역사가 부끄러워할 10억엔,위안부 합의

세덕 2016. 8. 24. 10:24

<위안부>역사가 부끄러워할 10억엔,위안부 합의

<위안부>역사가 부끄러워할 10억엔,위안부 합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최종적 해결”

한·일 정부 ‘화해와 치유 재단’ 출범


2015년 12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는 모습.


[한겨레21]잊기를 바라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8월15일 광복절 70주년 경축사에서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조속히 합당하게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8월15일 광복절 71주년 경축사에서 박 대통령은 ‘위안부’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일본과 관련해서는 “한·일 관계도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이 전부다. 6천 자가 넘는 연설문 중 단 38자 분량이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앞으로 일본 정부는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공언을 일관되고 성의 있는 행동으로 뒷받침하여, 이웃 나라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과 견줘도 올해 발언은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일본 “10억엔 신속 출연할 것”

지난 1년간의 한·일 관계를 돌아보면 박 대통령의 대일 메시지를 변화시킬 만한 사건은 하나밖에 없다. 한·일 위안부 합의다. 한·일 외교부 장관은 한국 정부가 위안부 지원 목적으로 재단을 설립한 뒤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거출하고 이를 전제로 양국 정부는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하기로 2015년 12월28일 합의했다. 또 12·28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이라고 확인했다.

일본이 내기로 한 돈은 10억엔. 한국돈 111억원 남짓이다. 12·28 합의는 7월28일 일본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와 치유 재단’이 출범하면서 현실화됐다. 또 외교부가 8월12일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한국 절차가 완료되는 대로 10억엔을 신속하게 출연키로 했다”라고 언급한 사실을 밝히면서 돈의 지급 시기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한·일 언론들은 8월 안에 일본이 재단 출연금을 지급할 것이라 전망했다. 양국 정부 말대로라면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하지만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관련 단체들은 화해와 치유 재단 설립에 강하게 반발한다. 일본이 내기로 한 돈은 법적 배상금이 아닌 위로금이나 치유금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관련 단체들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법적으로 책임지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단추라고 본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상임대표는 <한겨레21>과 8월17일 만나 “더 이상 정부에 기대할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대협은 1992년 1월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를 열어온 단체다. 윤 대표는 “12·28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주장일 뿐이다.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증언한 이후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멈춘 적이 없다. 한·일 합의와 무관하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고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촉구하는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11명이 머물고 있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 안신권 소장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다. 안 소장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12·28 합의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위한 합의다. 할머니들은 정부에 개인 청구권을 전혀 위임하지 않았는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일본과 합의한 것은 분명한 위법이다. 할머니들이 정부의 합의에 동의하시지 않기 때문에 나 역시 재단 활동에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피해 할머니들이 대부분 재단 설립에 찬성했다는 게 화해와 치유 재단 쪽의 주장이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관련 단체의 입장이다. 김태현 화해와 치유 재단 이사장은 7월28일 기자간담회에서 생존해 있는 피해 할머니 40명 중 37명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면서 “반대하시는 분이 많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 뒤로도 재단 쪽은 대다수 피해 할머니들이 재단 설립에 찬성한다고 말해왔다.


생존 피해 할머니 절반이 ‘반대’

8월17일 열린 제1244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 참석자들이 모여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안신권 소장은 “김태현 이사장이 6월28일 나눔의 집에 찾아왔다. 이날 김 이사장은 거실에 있는 세 할머니를 만났는데 그중 이옥선 할머니는 강력하게 반대 의견을 내면서 12·28 합의를 취소하라고 주장하셨다. 한 분은 아무 말도 안 하셨고 다른 분은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을 뿐 재단 설립에 찬성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김 이사장은 나머지 할머니들의 방을 돌면서 한 번씩 포옹했을 뿐 재단과 관련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그런데 (화해와 치유 재단 쪽에서) 나눔의집 할머니 7명이 재단 설립에 찬성했다고 이야기하고 다녀서 강하게 항의했다”고 말했다.

윤미향 대표도 “정대협 쉼터에 있는 세 할머니는 합의에 반대한다. 또 개별적으로 서울에서 지내고 계신 할머니 4~5명도 우리에게 직접 연락해서 합의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밝혔다. 두 단체의 말을 종합하면 국내에 생존해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40명 가운데 절반인 20명에 가까운 할머니들이 재단 설립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힌 셈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화해와 치유 재단이 한국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대표해 일본 정부와 합의를 이행할 명분은 약해 보인다.

12·28 합의는 오히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활동을 더 활발하게 해주고 있다.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시위에는 수백 명의 사람이 모인다. 이전보다 더 늘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어릴 적 모습을 본떠 만든 ‘소녀상’도 전국 곳곳에 세워졌다.

윤미향 대표는 “12·28 합의에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계획이다. 무시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더 활발하게 활동할 계획이다. 소녀상도 일본이 식민지배를 했던 아시아 피해 지역 곳곳에 추가로 세울 계획이다. 미국 워싱턴을 비롯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으로 참전한 국가에도 소녀상을 세워 위안부 문제를 전세계적으로 알려나갈 것이다. 일본 식민지배를 받은 아시아 각국에서 위안부 관련 문서를 찾아내 일본이 벌인 전쟁폭력을 낱낱이 공개하는 활동도 새로 시작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활동은 12·28 합의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 및 개인이 지난 6월 설립한 ‘일본군 위안부 정의와 기억 재단’(정의기억재단)을 중심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윤 대표는 “정의기억재단에 후원 의사를 밝힌 사람은 10만 명이 넘는다. 현재 재단 설립 허가를 받는 과정인데 이 절차가 마무리되면 더 활발하게 활동할 계획이다. 일본은 아무런 문제 해결을 하지 못한 채 10억엔만 잃은 결과를 가져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1995년에도 일본은 민간 차원에서 기금을 조성해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을 세운 뒤 위안부 피해자에게 위로금을 지급했지만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이 아니라 도의적 책임만 지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여성기금은 필리핀 등 일부 국가에 위로금을 전달했지만 피해자들은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며 문제 제기를 그치지 않았다. 12·28 합의도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대로라면 한·일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아무런 진전 없이 의미 없는 합의를 한 셈이다.

유엔위원회 “피해자 중심 접근 아니다”

한국뿐 아니라 국제사회 역시 12·28 합의의 부당성을 지적한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지난 3월7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에서 “(한·일 합의가 있었지만) 우리의 최종 의견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일 합의를 “피해자 중심의 접근을 충분히 채택하지 않았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또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와 배상을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화해와 치유 재단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재단은 운영을 위한 사무처 직원 등 최소 인력도 없는 상황이다. 재단 설립금은 김태현 이사장이 사비로 낸 100만원이 전부다. 일본의 재단 출연금이 들어와야 정상적 운영이 가능하다. 현재로선 이사장과 이사 10명이 이사회를 열고 회의하는 것 외에 별다른 활동을 할 수 없다. 돈이 들어온다고 해도 많은 피해 할머니들이 재단 자체를 반대하는데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다. 명분 없는 합의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정환봉 기자bon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