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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한국 역사를 뒤흔들었던 무서운 전염병들 본문

세상이 변한다./전염병의 횡포

<전염병>한국 역사를 뒤흔들었던 무서운 전염병들

세덕 2016. 8. 26. 09:42

<전염병>한국 역사를 뒤흔들었던 무서운 전염병들

<전염병>한국 역사를 뒤흔들었던 무서운 전염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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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는 폭염 때문일까. 2001년 이후 한국 땅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콜레라가 다시 등장했다. 15년간 잠잠했던 탓에 요즘의 젊은 세대는 잘 모를수도 있지만, 콜레라는 심하면 사망까지 이르는 1군 법정 전염병이다. 문제는 콜레라 뿐만이 아니다. 결핵, 장티푸스, 홍역 등 인류가 정복했다고 여겼던 전염병이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일명 '후진국형 전염병'이라 불리는 것들이다.

후진국형 전염병

영양과 위생 상태가 나쁜 후진국에서 주로 발병하는 질병. 대표적으로 결핵, A형간염, 유행성이하선염(볼거리), 콜레라 등이 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이후 이러한 질병의 발병률이 급격히 떨어져 후진국형 질병 발병 국가에서 벗어났었다.



법정 전염병

사회적 파급력이 커서 환자를 격리하거나 적절한 방역 조치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감염병. 환자가 발생하면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감염 속도와 파급력에 따라 1~6군으로 구분되어 있다.

한국을 뒤흔들었던 전염병들

인류의 역사는 전염병의 역사와 함께 흘러왔다. 백신과 공중 보건이 발달하기 시작했던 20세기 이전에는 전염병이 돌면 수많은 인구가 집단 사망했다. 특히 원인과 해결책을 몰랐던 옛날 사람들에게 전염병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도 무서운 전염병이 여럿 등장한다.



콜레라(Cholera)

콜레라는 고종 16년인 1879년경 일본으로부터 한국에 전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에 상륙한 것은 1822년경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후에 콜레라가 인도 한 지역의 풍토병이었음이 밝혀졌다. 파급력이 어마어마하여 전세계적으로 7번의 대유행 시기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9년에 1,538명의 많은 환자가 발생했고, 이후 1970년·1980년·1991년에 각각 100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해 '10년 주기설'이라는 얘기도 돌았다. ▶ 기사 더보기

조선에 콜레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병의 정체를 알 수 없어 '괴질(怪疾)'이라고 불렀다. 호랑이가 살점을 찢어내는 것처럼 아프다고 하여 '호열자(虎列刺)'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이 병이 한 집에 들어가면 한 집의 사람이 거의 다 죽고, 이 고을에서 저 고을로 칡덩굴같이 뻗어가며 일거에 일어난 불과 같이 퍼져간다."

(대한매일신보 1909.9.24.)

당시의 기록으로 보면,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콜레라의 치사율은 80~90%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감부 직원, 친위대 군인, 창덕궁 인부, 일본인 순사 등이 너나 할 것 없이 차례로 쓰러졌으며,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콜레라를 피해 고향으로 가려는 사람들로 기차역은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70년 전인 1946년에는 부산에서 시작한 콜레라가 전국으로 퍼졌다. 환자들은 학교 강당에 격리된 채 하루에 10~20L씩 설사를 했다. 가족들은 전염이 걱정돼 면회도 가지 못했다. 환자들은 공포 속에 철저히 버림받았다.

오염된 물이 주요 발병 원인인 콜레라는 설사와 구토를 하다 급속한 탈수 증상으로 사망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치사율이 1%에 불과하다.


천연두(Smallpox)

천연두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천연두(두창, 속칭 마마)는 온몸에 피부 발진과 고열이 일다가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감염병이다. 한국에서는 조선시대 후기에 창궐하여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2주를 버티면 회복됐지만 대부분은 그 전에 사망했고, 낫더라도 흉한 곰보 자국이 남았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도 천연두가 크게 유행해 1만 명이 이상이 사망했다. 조선 말, 영친왕도 천연두를 앓다 회복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세계적으로도 3억 명 이상의 인구가 천연두에 의해 희생됐다. 기원전 1157년에 사망한 람세스 5세의 미이라에서도 천연두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 밝혀지며, 인류 최초의 전염병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제는 '호환마마보다 무섭다' 말만 남은 천연두

세계 곳곳을 초토화시켰던 천연두는 1977년을 끝으로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 천연두의 완전 소멸을 선언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1979년부터 예방접종을 중단하고 법적인 사망 절차를 밟았다. 인류가 천연두를 정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바이러스의 고유한 특성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독감 바이러스 등과 달리 몸체(항원)가 바뀌지 않아 오직 한가지 균주에 대한 백신으로 예방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1년 미국의 9·11 테러 이후 천연두 바이러스를 테러에 이용할 가능성이 제기되며, 천연두가 다시 인류 역사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홍역 (Measles)

'홍역을 치렀다'는 관용어에 등장하는 홍역은 콜레라, 천연두와 함께 조선시대 3대 전염병 중 하나로 꼽혔다. 보통 소아에 많이 발생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홍역이 일생에 한 번쯤은 치러야 하는 병이라 여겨 '제구실', '제것'이라는 속칭이 붙기도 했다.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각종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어린이도 많았다.

현종 9년인 1668년에는 팔도에 홍역이 대유행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숙종 33년인 1707년에는 평안도에 발생한 홍역으로 인해 사망자가 수천명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다.

1962년 국내에 백신이 들어온 이후 홍역 발병이 크게 줄었다. 그러나 2000년과 2011년, 경기도 이천·부천에서 시작된 홍역이 전국적으로 대유행했다. 당시의 기사는 "홍역이 산불처럼 번져 하루 평균 350여 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부모와 아이가 함께 걸려 병원을 찾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후 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홍역퇴치 5개년 사업'을 실시하며 예방 접종에 만전을 기했다. 그러나 질병 자체가 소멸된 것은 아니며, 2년 전인 2014년에도 한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홍역에 집단 감염됐다. 미국·유럽에서는 '홍역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소문 때문에 예방접종을 하지 않는 경우가 늘어, 다시 홍역 발병률이 높아지는 추세다.



장티푸스 (Typhoid fever)

"여름철이면 염병(장티푸스)과 호열자(콜레라)가 돌아 마을 어귀에 새끼줄을 쳐 놓은 곳이 많았지. 염병이 돌면 사람들은 똥물을 마시곤 했어"

(1998년 양성택씨의 회고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비속어인 '염병'은 장티푸스를 칭하는 말이었다. 치료하지 않으면 치사율이 25%에 이르는 장티푸스는 1960년~1970년대 우리나라에서만 한 해에 수천 명 이상이 감염됐다.

장티푸스에 관한 기록이 한국에서 처음 등장한 건 '삼국사기'에서다. 통일신라에 '여역(癘疫)'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장티푸스는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크게 유행했다. 중종 19년인 1524년에는 여역이 대유행하여 이를 물리치기 위해 나라에서 '간이벽온방(돌림병을 치료하기 위한 처방글을 모아놓은 의서)'을 발간했다고 중종실록은 전한다.

장티푸스의 원인은 살모넬라 타이피균인데, 장티푸스 환자나 보균자의 대변·소변에 오염된 음식물을 섭취했을 때 감염된다. 1990년 이후 위생 수준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 정부는 장티푸스의 퇴치를 자신해 왔지만, 여름철만 되면 간간이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결핵 (Tuberculosis)

기원전 7000년경의 화석에도 감염 흔적이 남아있는 결핵은 오랫동안 많은 사망자를 낳으며 인류를 괴롭혀 온 질병이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인 1937년, 한 해만 5,973명의 조선인이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당시 조선의 인구는 2,280만 명이었다.

객혈을 토하며 죽는 결핵은 당시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19세기와 20세기 전반은 '결핵의 세기'라 불러도 될만큼 지구상에 결핵이 만연했는데, 특히 젊고 아름답고 재능있는 사람들이 많이 감염돼 '미인과 천재의 병'이라고도 했다. 쇼팽과 안톤 체호프, 알베르 카뮈, '절규'의 화가 뭉크 등이 결핵을 앓았다. 한국에서는 이상과 김유정이 결핵 때문에 서른을 못 넘기고 요절했다.

'결핵 공화국' 오명 아직도 벗지 못한 한국

광복 후 대한민국은 '결핵 공화국'이었다. 열악한 노동 환경, 영양 상태, 주거 환경이 주 원인이었다. 1954년에는 하루 평균 300명이 결핵으로 숨졌는데도 병원이 부족해 치료받지 못했다. 당시의 한 신문은 대한민국을 "폐결핵에 무관심한 왕국"이라며 정부를 비판했다.

불결한 주변환경 때문에 발생하는 결핵은 대표적인 '후진국형 질병'이지만, 한국은 20년째 OECD 가입국 중 결핵 발생률·유병률·사망률 모두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러다 보니, 해외 유학 중 병원에 갔다가 "결핵에 관해 신뢰 못할 국가에서 왔으니 주사를 다시 맞고오라"는 수모를 당했다는 경험담도 나온다.

불과 3주 전인 8월 초에도 서울의 몇몇 병원에서 의료진이 결핵에 감염되는 등, 한국에서 결핵은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왜 '후진국' 전염병이 다시 돌고 있나?

경각심 부족

가장 큰 이유는 '후진국병'에 대한 경각심 부족과 보건당국의 소홀한 관리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질병 중 천연두를 제외한 나머지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후진국병'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여겨, 관리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과거 역사에서도 전염병은 언제나 예고없이 찾아왔다. 전염병의 주 원인인 세균과 바이러스는 조금만 경계를 늦추면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

해외여행의 급증
해외여행이 늘어나며 동남아 등에서 풍토병을 옮겨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번에 발생한 콜레라 역시 국내에서 감염된 건 15년 만이지만, 해외에서 걸려오는 경우는 가끔 있었다. 최근 가장 비상인 건 '뎅기열'이다. 뎅기열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필리핀·태국·캄보디아·인도네시아 등지의 풍토병으로, 모기를 통해 전염된다. 질병관리본부 측에 따르면, 해외여행 중에는 피로가 누적되고 기후가 달라 신체의 면역이 낮아지는 데다가, 여행객은 풍토병에 대한 면역체계가 없어 현지인보다 심한 증상을 겪을 수 있다고 한다.

현대인의 면력역 저하
현대인의 면역력이 전반적으로 저하된 점도 과거의 전염병을 부르는 한 원인이다. 세균과 기생충, 바이러스는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 쉽게 질병을 일으킨다. 현대인의 면역력이 약해진 이유로는 스트레스, 불균형한 식사, 각종 환경 공해 등이 꼽힌다.

기후변화
최근 발병한 콜레라는 가장 큰 원인이 폭염으로 지목됐다. 실제로 기온이 오르면 세균 번식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뿐 아니라, 모기나 진드기, 빈대와 같은 질병의 매개체가 성충이 되는 기간도 짧아진다.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은 기온이 1도만 올라도 감염률은 10%씩 높아진다.

지구 온난화가 '질병 지도'를 바꾸고 있다는 경고는 10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평균 기온이 매년 높아지면서 겨울에도 모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모기가 옮기는 열대·아열대성 질병인 말라리아, 뎅기열 등의 감염병도 계절과 관계없이 전세계에서 증가하는 추세다.

현대의 전염병, 과거보다 더 치명적이다?


백신과 의료 기술의 발달로 전염병의 치사율은 크게 낮아졌다. 그러나 파급력은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

가장 먼저 전염병의 직격탄을 맞는 분야는 경제다. 전염병이 퍼지면 사람들은 공공장소를 기피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소비가 위축된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를 겪은 우리나라 역시 심각한 내수 침체에 빠졌다. 당시 기획재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영화관·놀이공원·야구장·박물관 등을 찾는 사람이 많게는 80% 이상 줄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국제 행사가 취소되고 외국인 관광객도 여행을 취소하는 등 대내외로 악재를 겪었다.

전염병과 함께 사회 분위기가 뒤숭숭해지면 각종 음모론도 고개를 든다.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근거 없는 음모론이 급속도로 퍼지는 현상을 우리는 여러 번 경험했다. 지난해에도 메르스가 미군 소행이라는 괴담이 떠돌았다. 올해 들어 지카 바이러스가 유행하자 이를 이용한 공포 마케팅이 기승을 부렸다. '흙으로 만든 침대를 사용하면 지카를 예방할 수 있다'거나 '버섯가루가 지카 예방약'이라는 등의 소문이 불안한 대중들의 심기를 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