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운주사 와불>한국의 불가사의,운주사 천불천탑 본문
<운주사와불>한국의 불가사의,운주사 천불천탑
<운주사와불>한국의 불가사의,운주사 천불천탑
1. 전설속에 싸인 신비의 절, 운주사
눈 내린 운주사 풍경운주사는 '와불이 일어나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왕건의 삼국통일을 예견했던 도선국사가 하루 밤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불가사의의 전설이 전해지는 신비의 절 운주사. 지금도 석탑 17기와 석불 80여기를 비롯해 절주변 곳곳에 크고 작은 석불과 탑들의 흔적들이 천불천탑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천불천탑. 천(千)이라는 숫자는 많음과 완성의 수이다. 사람의 바램(-천불천탑)과는 달리 천번째 부처님을 세우지 못했으니 완성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는 999개의 석불과 석탑을 만들다가 천번째 마지막 석불은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쓰여 있다,
1530년 증보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능성현(綾城縣)’조에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는데 절의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1000개씩 있고, 또 석실도 있는데 두 석불이 등을 마주 대고 앉아 있다”고 쓰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1632년 <능주읍지(綾州邑誌)>에도 “운주사는 현의 남쪽 25리에 있는데 천불산 좌우 산 계곡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1000기씩 있고 석실에는 두 개의 석불이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다”고 쓰여 있다.
사찰의 이름대로라면 ‘구름이 머물다 가는 절’. 먼 옛날부터 運舟,運柱,雲柱,雲住 등 다양하게 불려왔지만 1984년부터 1989년까지 네 차례에 걸친 전남대박물관의 발굴조사를 통해 ‘雲住寺’라 새겨진 암막새 기와가 확인되면서 ‘구름이 머물다 가는 절’이란 ‘雲住寺’가 일반화됐다.
여러 이름만큼 누가 어떤 이유로 세웠는지에 얽힌 이야기도 가지가지다.
인근 마을에 중국설화에 전하는 선녀 마고할미의 이름을 딴 폭포와 손가락자국, 지팡이 바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마고할머니 전설’, 신라 고승 운주화상이 신령스러운 거북이의 도움을 받아 창건했다는 이야기, 미래불 미륵의 혁명사상을 믿는 천민과 노비들이 모여 세웠다는 설등.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도선국사 창건설이다.
신라말기 도선국사가 나라의 기운을 바로잡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도선국사가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천불 천탑을 하루 낮밤에 세운 뒤 맨 마지막에 두 부처를 세우려 했으나 공사 말미에 일을 싫어한 동자승이 일부러 “꼬끼오” 닭소리를 내자 석공들이 날이 샌 줄 알고 하늘로 가버려 와불로 남게 됐다는 이야기가 얽혀 있다. 여러 불상 가운데에서도 와불은 가장 많이 관심을 집중시키는 불상인데 와불 바로 아래 시위불은 그 동자승이 벌을 받아 시위불(머슴미륵)로 변했다는 석불입상이 서있어 전설에 흥미를 더한다. 와불과 관련해 오래 전부터 “와불이 일어나는 날 이곳이 세상의 중심이 된다.”는 말이 떠돌았으며 일제강점기에 이 속설을 믿은 일본인들이 불상을 훼손했다는, 조금은 황당한 이야기도 있다.
일설에는 우리나라가 바다를 가는 배의 운를 가지고 있는데 동쪽에는 산이 많고 서쪽에는 산이 없어 자꾸만 국운이 동쪽으로 기운다는 것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운주사를 세우고 배의 기울임을 바로잡아주는 돛대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설로는 도선국사가 우리나라의 국운이 일본으로 흘러 들어감을 보고 이를 막기 위해 사람의 명치에 해당하는 이곳에 운주사를 세웠다고 전한다.
또 당나라의 힘을 이용하여 이 나라의 만세 번영을 위하여 건설했다는 이야기와 특이하게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재구 학예연구관은 1270년경 몽고가 고려를 침략했을 당시 몽고군이 만든 것이라고도 주장하고 있다.
많고 많은 창건 설화.
결국 긴 시간을 이어 오면서 옛 사람들도 역시나 운주사를 신기하게 여겼던 탓일까. 물론 어느 것 하나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하나, 누구는 석공들이 연습하는 실습장이었다고도 하고, 누구는 말 그대로 천지개벽을 염원하던 세력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는 등 신비에 쌓인 운주사의 전설은 고스란히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온다.
2. 천체를 땅에 옮겨놓은 절, 운주사
운주사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와불과 칠성바위다. 두 곳 모두 대웅전에서 오른쪽 언덕위에 있다.
사람들이 운주사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와불 때문이다. 그 크기도 크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누워있는 독특한 모습과 황석영의 <장길산>에 의해 더 유명해진 이 와불은, “이 와불이 일어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미륵 신앙과 함께 사람들 뇌리에 박혀 있다.
와불은 미처 일으켜 세우지 못한 불완전석불인데, 좌불(앉은 모습)과 입상(선 모습)으로 자연석 위에 조각된 채로 누워있다. 이렇게 좌불과 입상의 형태로 누워있는 부처님은 세계에서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이 와불은 좌불 12.7미터, 입상 10.26미터의 대단히 큰 불상이다.
나침반을 갖다대면 거의 정확히 남북으로 향하고 있다. 또한 와불의 아래에 있는 시위불도 와불 옆에서 떼어내 세운 것이다.
와불에서 정남쪽 아래로 크기가 각기 다른 7개의 둥근 바위가 놓여있는데 그 모양이 흡사 북두칠성일 뿐 아니라 각기 다른 돌의 크기와 북두칠성에 속한 각 별들의 밝기가 같은 비율이라 한다.
뿐만아니라 칠성바위를 기준으로 했을 때 와불은 북극성의 위치에 있으며 나머지 큰 부처와 탑들이 밤하늘의 일등급 별들의 위치와 똑같다고 한다. 즉, 운주사는 천체를 땅에 옮겨다 놓은 형상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 때문에 알면 알수록 더욱 신비로운 곳이 바로 운주사다.
3. 우리 삶의 얼굴을 옮겨놓은 민중의 절, 운주사
운주사 불상들은 천불산 각 골짜기 바위너설 야지에 여러 모습으로 배치되어있다. 크기도 각각 다르고 얼굴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평지와 야산 측면의 암벽 위아래에 무리지어 서있는 석불들은 대부분 큰 돌의 앞면만 조각한 평판상인데 정통적인 양식에선 한참 동떨어진 채 한결같이 못생겼다. 불상의 이목구비 생김새나 비례, 조형미가 엉성해 부처의 위엄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홀쭉한 얼굴형에 선만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 단순한 법의 자락이 인상적이다. 민간에서는 할아버지부처, 할머니부처, 남편부처, 아내부처, 아들부처, 딸부처, 아기부처라고 불러오기도 했는데, 마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우리 이웃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여러 불상들의 얼굴 위로는 구원을 바라는 민중의 표정을 사실적으로 다듬어내려 애쓴 석공들의 토속적인 심성, 그 깊은 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러한 불상배치와 불상제작 기법은 다른 곳에서는 그 유형을 찾아볼수 없는 운주사 불상만이 갖는 특별한 가치로 평가받는다.
또한 운주사 석탑들은 모두 다른 모양으로 각각 다양한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연꽃무늬가 밑에 새겨진 넙쩍하고 둥근 옥개석(지붕돌)의 석탑과 동그란 발우형 석탑, 부여정림사지 5층 석탑을 닮은 백제계 석탑, 감포 감은사지 석탑을 닮은 신라계 석탑, 분황사지 전탑(벽돌탑) 양식을 닮은 모전계열 신라식 석탑이 탑신석의 특이한 마름모꼴 교차문양과 함께 두루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운주사 탑들의 재료로 쓰인 돌은 석질이 잘 바스라져서 오히려 화강암질의 강한 대리석보다 더 고도의 기술을 습득한 불모(석공)님이 아니면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 석질로 빚어만든 탑이 이렇게 수많은 세월의 풍상을 버티어 전해져 오는 것을 보면 이곳의 조형자들의 기술이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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