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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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홍산문명>환단고기가 재조명 받는 이유
<환단고기,홍산문명>환단고기가 재조명 받는 이유
6천5백년전 배달국 홍산문화 유물이 발견되면서
<만리장성 밖> 요하에서 <홍산문화> 발굴의 의미는?
6천년 전 역사 유물로 no history 가 아닌 “lost” histoty 였음을 밝혔다.
아더왕 신화가 유물이 발견되고 역사로 인정됬고
트로이 신화도 유물이 발견되고 역사로 인정 받았듯이
신시 배달 신화도 홍산문화 유물이 나오면서 역사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6500년전 홍산문화 시대 유물의 역사 이야기를 담고있는 환단고기가 다시 주목 받는 이유이다.
1. 홍산문화의 주체를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 상투
<상투>를 고정시키는 <옥고>가 발견된 것이다!
천하의 도적놈 “위만”이 삼조선 중 2세 부루 단군 때 쟁취한 중국 지역의 땅 “유주”와 “영주”를 치우 천황의 자손에게 부-단군을 임명하여 72세 부-단군이 통치하던 분조 “번조선”의 마지막 왕 기준-부단군으로으로 부터 강탈 하기 전.
한고조 “유방”의 공신숙청을 피해 “번조선”에 망명을 요청할 때 “동이족” 문화를 따르겠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튼 것이 <상투>다.
<상투의 의미>
<상투>는 “북두칠성”에 계시는 “삼신상제님”을 모시고 그분의 천명을 받아 하나 됨을 상징하는 ”동이족 정체성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자신과 동이족의 구분을 <상투>로 했는데 동이족의 상투를 고정 시키는 장식구가 홍산문화 유물에서 대량 출토 된 것이다.
(사진출처 : 안경전 환담고기 역주본 해제 294p)
2. 동이족 새 토템의 시원지 발견
태양 광명 숭상에서 비롯된 “새” 토템의 잃어 버린 시원 유물이 만리장성 밖 내몽골 지역, 비파형청동검이 나오는 지역에서 발견 되었다. 조선시대 강화 반다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부엉이와 박쥐의 시조가 되는 옥으로 정교하게 만든 “옥조”들이 무더기로 나온 것이다.
작품의 완성도만 보아도 투박하지 않은, 기계로 깍은 듯 한 정교한 작품들이 7천년전 유물로 나온 것이다. 그것이 신시 배달 18대 환웅의 역사 중심지인 요하에서 나온 것이다.
<환국 말기 호족과 웅족의 전쟁 시기의 유물>
환단고기 2번째 역사서 삼성기전 하권에 보면
환국 말기게 다스리기 어려운 강족이 나타나서 혼란해 진 상황이 벌어졌을 때 이미 원주민 "호족"과 이주민인 "웅족"이 전쟁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와 있다. 두 족속 모두 태양 광명을 숭상을 본래 부터 하고 있던 것으로 나온다.
따라서 이 유물들은 환국 말기 시대로 호족과 웅족이 전쟁을 했던 시기 때 유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동이족과 새 토템>
갑골 문자를 쓰던 “동이족 이주민” 상(은)나라은 지독한 “제사”와 “새 bird 토템”의 나라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 건국신화 또한 새 토템이다. 지방마다 서 있는 솟대에서 새 토템의 전승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새 토템의 유물이 나왔다는 것은 그 문화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추측게 하는 단서이기도 하다.
(사진출처 : 안경전 환담고기 역주본 해제 288p)
3. 역사 시각의 대대적 변화의 필요성
이러한 고고학 유물 발굴은 기존에 역사 문헌을 바라 보던 역사관 시각에 변화를 가져올 필요성을 가져 왔다. 더이상 인류 세계사 학문에서는 7천년 전 역사를 신화라 부르지 않는다. 왕조의 역사 수준으로 바라 본다.
<의학사 입장>
수메르 고고학 발굴로 전염병이 최초로 발생했을 시기를 6000년 전으로 잡고 있는지 오래다. 전염병은 병이 돌 수 있는 최소한의 인구와 문명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하문명권이 발굴이 되면서 최초의 전염병이 발생할 수 있는 시기 연대기가 최소 1000년 이상 올라가게 되었다. 그것이 신시배달의 역사이며, 그 역사를 이야기 해 주는 역사책이 “환단고기”이다.
환단고기는 의학사에 있어서 엄청난 정보를 알려 주고 있는 역사서로 재평가 닫고 있다. 이것이 “환단고기”가 21세기에 와서 천문학을 비롯한 이과-과학계에서 새롭게 재조명을 받는 이유이다.
4. 결론
21세기 동북아는 영토 전쟁을 위한 역사 전쟁 중이다. 더 이상 역사는 인문학계의 전유물이 아닌 정치인의 이데올로기, 군사 작전의 무기로, 독도를 지키려는 일반국민들의 관심의 대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더 이상 역사는 인문학계 만의 것도, 어느 전문가 1,2명의 독점물도 아닌 과학 문명에 익숙한 일반 대중들의 것으로 바뀌어 가는 세상으로 접어 들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염원에 맞는 “환단고기”가 대중들에게 새롭게 인식되는 것도 이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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