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임나일본부설>임나일본부 설치해 가야 지배했다는 설은 거짓 본문
<임나일본부설>임나일본부 설치해 가야 지배했다는 설은 거짓
<임나일본부설>임나일본부 설치해 가야 지배했다는 설은 거짓
▲ 임나일본부설은 4세기 후반 일본이 고대국가 가야에 일본부를 두고 지배했다는 설로 수많은 모순이 발견돼 2010년 한일 공동 연구 끝에 근거없다고 결론이 났다. 사진은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사용된 ‘일본서기’
‘일본’이란 국호는 8세기 등장/ 3세기에 한반도 지배했다는 건 안 맞아
‘일본서기’ 기록을 내세우지만 한‧일 공동연구 결과 “근거없다” 결론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고대 가야사 연구‧복원사업을 정책과제에 꼭 포함시켜줬으면 좋겠다.”
지난 6월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본인 표현대로 ‘뜬금없이’ 가야사 이야기를 꺼냈다. 도종환 신임 문체부 장관도 6월 7일 한 인터뷰에서 “일본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임나일본부설의 임나가 가야라고 주장하는 국내 역사학자들의 논문이 많은데 여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하며 가야사 연구·복원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했다.
대통령과 문체부 장관의 발언으로 고구려‧백제‧신라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았던 가야가 역사학계의 관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야는 기원 전후부터 562년까지 낙동강 하류지역에 있던 여러 국가들의 연맹 왕국 또는 그 지역에 위치한 각 국가들의 명칭을 말한다. 주로 경남도 대부분과 경북도 일부 지역을 영유했던 고대 국가를 일컫는다.
이런 가야를 말할 때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임나일본부설’이다. 임나일본부설이란 일본 야마토정권이 4세기 후반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진출, 가야에 일본부(日本府)라는 기관을 두고 지배했다는 주장으로, 대표적인 일본의 한국사 왜곡 사례 중 하나이다. 고대 한반도 남부 전체가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남선경영설’(南鮮經營說)이라고도 한다.
임나일본부에 대한 연구는 1600년대부터 일본의 국학파들에 의해 시도된 후 일제의 한국침략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크게 4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 중 핵심적인 것이 720년 편찬된 ‘일본서기’의 기록이다.
이 책은 한반도의 여러 나라들이 일본의 지배 아래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임나일본부’이다. 4세기 후반 신공황후라는 가공의 인물을 내세워 가야 7개 나라를 정복하고, 이를 임나관가라고 하는 천황의 직할령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신공황후가 정벌한 7국의 지명을 고증한 결과 그곳이 당시의 가야지역이었으며 따라서 임나는 가야를 지칭한다는 게 임나일본부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국호가 700년대 이후 생겨난 점, 630년까지 임나가 존재해 야마토 조정에 조공을 했다는 기록과 달리 마지막 가야왕국인 대가야가 562년 신라에 병합된 역사적 사실 등 수많은 오류가 발견되면서 신빙성을 잃었다.
▲ ‘광개토대왕비문’의 모습.
1883년 일본 사학자들은 중국 지안(集安)에 있는 광개토대왕 비문(碑文)에서 ‘왜이신묘년래도해파백잔○○○라 이위신민’(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 ○○○羅 以爲臣民·○는 알 수 없는 글자)을 발견하고, 이를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와 신라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해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는 자료라고 주장해 왔다. 이에 반해 남북한 역사학계는 ‘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羅 而爲臣民’의 문장을, ‘파’(破)까지 한 문장으로 끊어 ‘왜’가 아닌 ‘고구려’를 주어로 ‘고구려가 신묘년에 일본을 무찔렀다’고 해석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중국 남조(南朝)·송(宋)·제(齊)·양(梁) 나라의 역사기록에 등장하는 왜왕의 책봉기록도 내세웠다. 기록에 따르면 왜왕은 ‘왜백제신라임나진한모한제군사왜국왕’(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 諸軍事倭國王)이라는 관작(官爵)을 인정해줄 것을 요청했고, 송에서는 백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대한 왜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듯한 칭호를 내렸다. 일본은 이를 근거로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의 ‘칠지도’(七支刀)도 왜의 군사적 우세와 한반도 남부 지배를 인정한 ‘번국’(蕃國) 백제가 야마토 조정에 바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임나일본부’란 명칭은 한국문헌의 기록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 존재조차 의심됐고 이에 대한 반론들이 제기됐다. ‘일본서기’보다 먼저 서술된 ‘고사기’에는 임나일본부에 대해 전혀 언급된 바가 없으며 고고학적 근거도 없기 때문에 당시 가야에서 군사적인 활동을 벌인 것은 일본이 아니라 백제라고 주장해 왔다.
한발 더 나아가 북한 사학자 김석형은 분국설(分國說)을 제기했다. 삼한·삼국 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가 그곳에서 삼한·삼국의 식민지라 할 수 있는 분국들을 곳곳에 설치했고, 이때 임나일본부는 일본열도 내에 수립된 가야의 분국 임나에 설치됐다는 주장했다.
양국 간의 팽팽한 논쟁이 지속되던 중 2001년 일본 후소샤 역사교과서 왜곡 파문을 계기로 2002년 한·일 역사학자들로 구성된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후 지속적인 연구 끝에 양국 공동위원회는 2010년 3월 23일 발표한 제2기 최종연구보고서에서 4~6세기 당시 야마토정권이 한반도 남부를 활동하면서 임나일본부를 설치해 지배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일본 교과서의 내용을 폐기하는 데 합의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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