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증산도>성공하는 일꾼 신앙의 길-천지의 대역자 본문

카테고리 없음

<증산도>성공하는 일꾼 신앙의 길-천지의 대역자

세덕 2023. 8. 31. 09:48

<증산도>성공하는 일꾼 신앙의 길-천지의 대역자

<증산도>성공하는 일꾼 신앙의 길-천지의 대역자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각자가 분업적 작용을 한다. 자신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 전부를 바치고 혼을 바쳐서, 발분망식發憤忘食,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면서 일을 한다. 한참 일에 열중하다 보면 배가 고프다. ‘아이쿠나, 점심을 안 먹었구나.’ 밥 굶는 줄도 모르고 일을 한다. 자기 하는 바에 그렇게 일심으로, 다 바쳐서 집중해야 그런대로 성공도 하고 하나라도 이룰 수가 있다.


헌데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은 더군다나 천지 사업이다. 천지의 일을 우리가 대역자代役者로서 하는 것이다. 우리는 천지의 대역자이기에 조금이라도 개인주의, 이기주의, 이런 소인배 속성을 가지고 사사로운 생각을 갖고서 일하면 성공할 수가 없다. 남을 미워하고, 질투하고, 세상 말로 사촌이 땅 사면 배가 아프고, 내가 앞질러 가야 되고, 내가 명령을 해야 되고, 세상 사람은 나를 도와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느 때, 어느 시대고 설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은 겸허해야 한다. 세상 사람을 나보다 낫다고, 고마운 사람으로 여겨야 나를 상대하고 단골도 되고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을 상대했다가 손해가 났다면 누가 그 사람을 상대하겠는가? 사람은 같이 살게 돼 있는 것이다. 공생공영共生共榮, 같이 살고 같이 번영한다. 저 사람에게 이로워야 나도 얻는 게 있다. 나도 남을 위해야 남한테 대접을 받는단 말이다.

성공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예를 들어서, 저 불가에서도 3천 년을 내려오는데 ‘태산절정泰山絶頂에 갱진일보更進一步라’는 문구가 있다. 태산의 맨 꼭대기에서 한 걸음을 더 내디딘다는 것이다. 태산 그 높은 데서 한 걸음을 더 내디디면, 떨어져서 죽을 수밖에 없잖은가. 그러니 죽음을 무릅쓰고, 생사를 맡기고 다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은 바로 거기에 있다.

유가에서도 이런 말이 있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 갱진일보更進一步라’, 백 자나 되는 장대의 끄트머리에서 다시 한 걸음을 나간다. 그 끄트머리에서 한 걸음 나가면 떨어져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정신을 가지고 하라는 것이다.

내가 우리 신도들을 교육하는 데 이런 문구를 많이 쓴다. ‘이재만궁지간利在挽弓之間이라.’ 이로울 이利 자, 있을 재在 자, 활을 걸어 시위를 당긴다는 만挽 자, 활 궁弓 자, 갈 지之 자, 사이 간間 자. 뜻을 풀어 보면 이로운 것은, 다시 말해 성공을 하는 것은, 열매기에 결실하는 것은 활을 걸어 당기는 그 사이에 있다는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 하면 활을 쏘는 사람이 과녁을 향해서 냅다 활시위를 잡아당기는데 그 과녁을 관중貫中, 꼭 맞혀야 하니 정신을 집중한단 말이다. 과녁을 향해 시위를 잡아당기는 것을 한번 가만히 연상해 봐라. 그 자세가 어떻게 되겠는가? 그 과녁을 꿰뚫어 맞히려고 손과 발과 육신 전부를 총체적으로 과녁에 집중하고, 온 정신을 집중해서 잡아당긴단 말이다. 유형과 무형, 정신과 육체가 거기에 100프로 집중돼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화살촉이 과녁을 관중할 수가 없다. 세상만사 성공을 하는 것은 활 쏘는 사람이 과녁을 상대해서 시위를 잡아당기는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성공을 한다는 말이다. 신앙도 역시 그렇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헛신앙을 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