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택 (태전 세종도장)
우주의 변화 이치를 담고 있는 역(易)은 천지만물과 인간이 나아갈 법도를 밝히고 있다.
역은 동방의 성철(聖哲)들에 의해 그 맥이 이어져 왔다.
선천의 역인 복희팔괘와 문왕팔괘를 이어 등장한 제3의 역, 후천의 역이 정역(正易) 팔괘다.
100여 년 전, 다가올 후천 가을세상의 이치를 담고 있는 정역팔괘를 긋고『, 정역』을 통해 상제님의 강세소식을 알린 인물이 있으니 그 분이 바로 일부(一夫) 김항(金恒) 선생이다.
연담 이운규 선생의 가르침
김일부 선생(1826~1898)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지금의 충남 논산시 양촌면 남산리 당골의 선비 가정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공부하기를 좋아하여 성리학을 깊이 연구했다. 선생은 그 용모부터 기이하여 손을 드리우면 팔이 무릎을 넘고 키가 커서 춤을 추면 마치 학이 춤추는 것 같고, 얼굴에 인중은 무려 한 치나 되었고, 목소리는 철성(鐵聲)으로 노래를 하면 허공 높이서 들리는 것 같았다.
선생은 평상시에도 늘 의관을 정제하여 흐트러짐이 없었다. 취침 전에는 눕는 일이 없었고 낮잠 또한 없었으며, 잠을 자도 극히 단시간 졸고 마는 정도였다. 항시 두 무릎을 꿇고 단정하게 앉되 식사 시에만 평좌로 하였는데, 두 손으로 상을 약간 집는 듯이 가볍게 대고 잠시 묵념한 후 상 위를 살핀 뒤에 천천히 수저를 들었다고 한다.
선생이 태어난 당골의 서쪽에는 띠울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 일찍이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圭) 선생이 국운이 쇠미해짐을 보고 서울에서 낙향하여 은거하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대학자 이서구(李書九)선생의 학통을 계승하여 천문(天文), 역산(曆算), 역학(易學), 시문(詩文)에 능통하였다고 한다. 그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아 신비에 싸여있는데, 김일부선생 뿐 아니라 후일 동학(東學)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崔濟愚), 남학(南學)의 김광화(金光華)와 같은 걸출한 인물들의 스승이 된다.
김일부 선생이 36세 되던 해, 하루는 연담 선생이 최제우, 김광화, 김일부를 차례로 불러 말하였다. 최제우와 김광화에게는‘각기 떨어져가는 선도(仙道)와 불도(佛道)를 대표하여 이 세상에 나온 것이니 주문을 외우고 깊이 근신(謹愼)하라’고 경계하였다. 그리고 일부에 대해서는“그대는 쇠하여 가는 공자의 도를 이어 장차 크게 천시를 받들 것이니 이런 장할 데가 있나. 이제까지는‘너’라 하고‘해라’고 했으나 이제부터는 ‘자네’라 하기도 과만한 터인 즉‘하소’라 할 것이니 그리 알고, 예서(禮書)만 자꾸 볼 것이 아니라『서전(書傳)』을 많이 읽으소. 그러노라면 자연 감동이 되어 크게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고, 후일 정녕코 책을 지을 터이니 그 속에 나의 이 글 한 수만 넣어 주소.”하고 글 한 수를 내어주니 이러했다. “관담막여수(觀淡莫如水)하고 호행의행인(好德宜行仁)을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하니 권군심차진(勸君尋此眞)하소. 맑은 것을 보는 것은 물만 같음이 없고 덕을 좋아하는 것은 인을 행함이 마땅하구나. 빛이 천심월에서 동하니 그대에게 권하노니 이 진리를 찾아보소.”연담 선생은 이 글을 남겨놓고 마을을 떠나 행방을 감추었다.
공부에 일심한 김일부 선생
일부 선생은 연담 선생의 유훈에 따라 예학(禮學)과문사(文詞)에 힘쓰던 종래의 공부 방법을 바꿔『서전』을 읽고『주역』을 탐구하였다. 또한 영가무도(詠歌舞蹈)의 법으로 정신과 육신을 계발하여 천지의 심법을 함양하였다.
그는 요순(堯舜)의 심법을 체득하고, 요순의 기(朞)와 삭망(朔望)의 전도(轉倒)에 따른 천체의 이동을 알고자 했다. 그래서 마을 뒤쪽에 있는 용바위, 냇가 등지에서 종일토록 뛰고 청아한 음성으로‘음아어이우’의 오음(五音)을 발하고 그 곡조에 맞춰 춤을 추었는데, 이 노래를‘영가(詠歌)’라 하고 춤을‘무도(舞蹈)’라 하였다. 이는 선생이 붙인 이름이 아니라 고종제인 권종하(權種夏)가 선생의 공부를 보고 감동하여 옛 성인들의 공부법을 보았다 하여‘영가무도’라 이름붙인 것이다.
일부 선생은 조석으로 뒷산에 오르내리며 어떤 때는 날밤이 새도록 가무(歌舞)하다가 새벽녘에야 갓에 서리를 하얗게 싣고 도포 자락이 찢어진 채 돌아오곤 했다. 또 반야산 기슭에 있는 관촉사 은진미륵을 주야로 찾으며 깊이 기도하기도 했다. 소나무 숲속에서 무도를 하면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면“복(福)받아 가거라”하고 자주 외치시곤 했다. 당시 선생이 뛰던 자리는 풀 한 포기도 없을 정도로 닳았다고 한다.
김일부 선생은 공부에만 정진할 뿐 가사를 돌보지 않아 집안 살림이 극히 가난하였다. 그 부인이 겨울에도 맨발로 짚신을 신고 다녔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일반 선비들처럼 글만 읽은 것이 아니라 뒷산으로 가서 춤추고 노래 부르기를 반복하자 종문(宗門)에서도 이단지학을 한다하여 족보에서 이름을 빼버리기까지 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공부에 진력했던 선생은 후에 자신의 마음을『정역』에 이렇게 써놓았다.
六十平生狂一夫는 自笑人笑恒多笑라. 笑中有笑笑何笑오. 能笑其笑笑而歌를.
육십평생에미친(狂) 한지아비(一夫)는스스로웃고남이 웃으니 항상 웃음이 많구나. 웃음 속에 웃음이 있으니무슨웃음을웃는고. 능히그웃음을웃고, 웃으며노래하는구나.『 ( 正易』「十五一言」중에서)
선생은‘영동천심월’의 열쇠를 풀기 위해 더욱 정진하여 주야로 가무하면서 탐구에 진력을 다하는 가운데, 눈을 감으나 뜨나 환하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신이 갈수록 청명해졌다. 일부 선생의 끊임없는 정진으로 36세로부터 19년 만에 드디어 ‘영동천심월’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으니, 그 때가 선생이 54세 되던 1879년이었다.
그리고 기묘(1879)년 이후부터는 눈앞에 이상한 괘(卦)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천지가 모두 이 낯모르는 팔괘의 상으로 뒤덮여보였다. 혹시 가무에 너무 집중하여 기력이 쇠한 탓이 아닌가 하여 음식을 먹기도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혹시 주역에 그런 괘도가 언급되어 있지 않는가 여러 차례 찾아 보기도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어느 날, 『주역』「설괘전(說卦傳)」에서“신야자(神也者)는 묘만물이위언자야(妙萬物而爲言者也)니라. 신이라는 것은 만물을 신묘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라는 대목에 와서“…고(故) 수화상체(水火相逮)하고, 뇌풍이 불상패(雷風不相悖)하고, 산택이 통기(山澤通氣) 연후(然後)에야 능변화(能變化)하여 기성만물야(旣成萬物也)니라. 그러므로 수화가 서로 미치고 뇌풍이 서로 어그러지지 않고 산택의 기가 통한 후에야 능히 변화하여 이미 만물이 완성 되느니라”는 말씀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괘도와 완전히 부합함을 깨달았다. 그리고‘성인이 이미 주역에 말씀하신 것이니 그릴 수밖에 없다’하여 재종질인 김국현으로 하여금 그리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문왕괘도의 뒤를 이어 나타난 제3의 괘도인 정역팔괘(正易八卦)이다.
팔괘도를 다 그리자 홀연 공자가 나타나 일부에게 “내가 일찍이 하고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한 것을 그대가 이뤘으니 이런 장할 데가 있나!”하고 무한히 찬양한 후‘일부(一夫)’라고 호칭을 했다. 일부라는 호칭은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문득 들은 일이 있었으나 그것이 자신에 대한 호칭인줄 몰랐다가, 이제 공자가 말씀하시니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눈앞을 꽉 채우던 괘상은 이후로도 3년 동안이나 어른거리다가 사라졌다.
1881년 선생은 정역의 서문격인 <대역서(大易序)>를 저술하였다. 이 글에서 선생은 역(易)은 역(曆)이라는 것과 공자는 천지유형지리(天地有形之理)를 통달했는데, 자신의 도는 천지무형지경(天地無形之景)까지 통관하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59~60세(1884~1885년)에 정역(正易)을 선포하였다. 이후 1886년에 제자들에 의해 목각판으로 초판이 발행됨으로써『정역』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후천개벽의 이치를 밝힌 정역
정역은 무엇인가. 기존의 역과는 어떻게 다른가?
정역은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세상의 미래상을 담고 있다. 그 핵심은 앞으로 천지의 시공질서가 바뀌어 1년이 360일이 된다는 것이다.
공자가 서술한『주역』「설괘전」을 보면 앞으로 지구 일년의 날수가 365일이 아닌 360일로 바뀜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다.
乾之策二百一十有六坤之策一百四十有四凡三百有六十當期之日.
건지책 이백일십유육 곤지책 일백사십유사 범삼백유육십당기지일『( 주역』「설괘전」)
그러나 이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도 풀지 못한 채 2000여년을 내려왔는데, 이를 김일부 선생이 비로소 밝혀낸 것이다.
帝堯之朞는三百有六旬有六日이니라
제요지기는삼백유육순유육일이니라
帝舜之朞는三百六十五度四分度之一이니라
제순지기는삼백육십오도사분도지일이니라
一夫之朞는三百七十五度니十五를尊空하면
일부지기는삼백칠십오도니십오를존공하면
正吾夫子之朞는當朞三百六十日이니라.
정오일부지기는당기삼백육십일이니라.
『( 正易』「十五一言」)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온 지구 자연환경은 360일에서 5와 1/4이라는 윤도수가 붙어서 불안정한 천지질서에 의해 인간은 고통과 번민 속에 살아야 했다. 그러나 이제 본래의 천지의 운행도수인 360도로 천지일월이 운행하게 되면 모든 인간은 정음정양의 천지질서 속에서 성숙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선천 5만년 상극의 주역(周易)시대가 후천 5만년 상생의 정역(正易)시대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誰遣龍華歲月今고!
오호라, 그누가용화낙원의세월을이제야보냈는가!『( 正易』「十一一言」중에서)
一夫能言兮여水潮南天하고水汐北地로다.
일부가 능히 말함이여! 물이 남쪽 하늘에 모이고 물이 북쪽땅에서빠지는일이로다. 『 ( 正易』「十五一言」중에서)
火金金火原天道니라.
화금이 금화로 되는 것(金火交易)이 근본된 천지의 도이니라. 『( 正易』「十一一言」중에서)
복희팔괘는 천지가 창조된 원 틀을 그려놓은 생역(生易)이고, 문왕팔괘는 선천의 장구한 역사 기간 동안 만물을 키워내는 봄여름의 장역(長易)이다. 그리고 정역팔괘는 만물을 익혀내고 열매 맺는[旣成] 가을의 성역(成易)이다. 이는 복희역와 문왕역에 이어 나온 제3역이며, 다가오는 미래의 세상 이치를 미리 밝혀놓은 미래역이다.
선천의 기울어진 천지의 근본 틀이 바로 서서 선천의 천지비(天地否, )의 괘상이 후천의 지천태(地天泰)로 개벽된 후천역이다. 지천태는 상하가 소통되며, 각색 인종이 서로 평등하고, 각자가 자유롭고 사랑이 충만한 사회, 후천세상을 보여준다. 정역은 지금까지 모든 종교와 위대한 예언자들이 말한 우주의 새 시대를 선언하는 가을개벽의 이치를 담고 있다.
상제님의 강세를 말하다
또한『정역』의 중요한 핵심은 장차 우주의 주재자하느님이신 상제님께서 지상에 강세하시어 새 우주를 열어주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靜觀宇宙無中碧하니誰識天工待人成가.
우주의조화세계를고요히바라보니, 하늘의조화공덕이사람으로오시는상제님을기다려이루어짐을그누가알았으리오. 『 ( 正易』「十五一言」중에서)
天地淸明兮여 日月光華로다. 日月光華兮여 琉璃世界로다. 世界世界兮여上帝照臨이로다.
천지의 맑고 밝음이여, 일월의 새 생명 빛나도다. 일월의 새생명빛남이여, 낙원세계되는구나. 개벽세계여, 새 세계여, 상제님께서 성령의 빛을 뿌리며 친히 강세하시도다. 『 ( 正易』「十一一言」중에서)
일부 선생이 쓴『정역』은 단지 선생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깨달음에는 상제님의 가르침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嗚呼라. 天地无言이시면 一夫何言이리오, 天地有言하시니一夫敢言하노라.
아아, 천지가 말이 없으시면 일부가 어찌 말하겠는가?
천지가 일부에게 말하라고 말씀하시니 일부가 천지의 말씀을말한다. 『 ( 正易』「十五一言」중에서)
化翁親視監化事.
화옹(조화옹 상제)께서 친히 선후천 우주변화의 일을 감독하심을보이신일『( 正易』「十五一言」중에서)
상제님께서 친히 선후천 우주변화의 일을 감독하시는 것을 보여주시고, 이를 보고 김일부 선생이 구술한 것이다. 정역에 보면 일부 선생이 영가무도를 하시다가 천지와 더불어 삼재문(三才門)을 지나고 일월성신(日月星辰)과 함께 오원문(五元門)을 통과하여 마침내 팔풍(八風)이 되어 일부도 바람이 되어 십무문(十无門)을 넘어 화무상제(化无上帝)와 신앙 고백하는 장면이 있다.
이 날은 1884년(甲申) 7월 17일(己未)로“불초자김항감읍봉서(不肖子金恒感泣奉書)”라 하여 눈물로 기록하고 있다.‘ 불초자’란 말에서 보듯 김일부 선생은 선후천 우주변화를 친히 감독하시는 조화옹 상제님을 부모로서 극진히 받들었다. 선생이 천지조화의 문을 열어젖히고 가을개벽의 실상을 보게 된 것은 후천개벽의 이치를 세상에 널리 전하라는 상제님의 천명이었다.
상제님을 친견한 김일부 선생
선생은 회갑을 지내고 1887년 논산군 부적면 부황리로 이사하여 지내다가, 동학운동이 일어나자 소란을 피하여 충청도 연산 향적산 국사봉으로 옮겨 수십 명의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선생은 정역을 밝힌 이후에도 아직 때가 아니라고 여겼는지 아니면 이해할 사람이 없다고 여겼는지 제자들에게 정역에 대해서는 별로 가르치지 않고, 주역의 가르침만 반복해서 이야기했다고 전한다.
선생은 항상 너그럽고 포용함이 있었다. 한번은 제자들과 함께 향적산 국사봉에 있을 때 동학도 200여명이 떼를 지어 국사봉 양반들에게 쳐들어 온 일이 있었다. 선생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태도로 지극히 청아하게 영가를 불렀다. 이 노래를 들은 무리들은 감동한 나머지 하나 둘 몽둥이를 내던지고 사죄하거나 혹은 제자 되기를 청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국사봉에서 남은 인생을 보내고 있던 1897년, 일부 선생은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증산 상제님께서 친히 그곳을 방문하심으로써 상제님을 친견하게 된다. 그 내용이 증산도『도전』에 기록되어 있다.
충청도 강경을 지나 연산(連山)에 이르러 향적산(香積山) 국사봉(國師峯)에 있는 김일부를 찾으시니라. 지난밤 일부의 꿈에 하늘로부터 천사가 내려와‘옥경(玉京)에 올라오라.’는 명을 전하거늘 일부가 천사를 따라 올라가‘요운전(曜雲殿)’이라는 편액이 걸린 장려한 금궐에 들어가 상제님을 뵙고 내려왔는데 이제 맞이한 증산을 뵈니 간밤 꿈에 뵌 상제님과 그 형모가 같은지라 그 일을 아뢴 뒤에‘요운(曜雲)’이란 도호를 드리며 심히 경대하되 증산께서는 그 호를 받지 않으시니라. 증산께서 그곳에 머무르시며 영가무도의 교법을 관찰하시고 일부와 후천개벽의 천지대세에 대해 말씀을 나누시니라. (道典1:68:1∼6)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1897년)하고 일본의 침략이 가속화되어 가던 1898년(戊戌) 11월 25일 아침, 선생은 유명을 달리하신다. 그는 부인과 자녀들에게 유언하기를“내가 평생에 공부만 알고 금전을 몰라서 집안이 이 꼴이 되었으니 너희들을 고생시킨 일을 생각하면 딱하고 가엾구나. 참 안됐다. 그러나 성인의 일을 알아보느라고 그리 된 것이니 할 수 없는 일…. 너무 걱정 말고 참고 살아가노라면 자연히 돕는 사람도 생겨서 그럭저럭 부지할 것이다”고 하였다. 그리고 선생은 눕지도 않고 조용히 앉은 채 운명하였다. 상제님을 알현한 이듬해 세상을 떠나신 것이었다.
후천개벽이 오는 이치를 역으로 밝히고 우주의 주재자가 직접 지상에 강림[上帝照臨]하심을 알린 김일부 선생의 공덕에 대해 상제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최수운은 내 세상이 올 것을 알렸고, 김일부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전명숙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일부가 내 일 한 가지는 하였느니라.(道典2:31:1∼7)
주역 공사는 이미 일부(一夫) 시켜서 봐 놓았노라. (道典3:198:5)
김일부 선생은 돌아가신 후 천상에 올라가서는 조화정부에 참여하고 계신다. 증산 상제님은 명부의 혼란으로 세계가 혼란하게 되었다고 하시며 명부를 정리하여 세상의 혼란을 바로잡는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김일부 선생에게 청국 명부를 맡기셨다.
전명숙은 조선 명부, 김일부는 청국 명부, 최수운은 일본 명부, 이마두는 서양 명부를 각기 주장케 하여 명부의 정리 공사장(整理公事長)으로 내리라.(道典4:4:4)
김일부 선생이 그려놓은 후천의 역, 정역팔괘. 정역의 심오한 이치를 깨닫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정역에서 밝힌 가을우주의 이치와 정역의 시간대를 맞아 상제님께서 이 조선 땅에 강세하신다는 그 핵심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알아야 한다. 더불어 앞으로 열릴 가을우주, 정역세상을 준비하는 것은 이 시대 절체절명의 명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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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도전』증산도도전편찬위원회, 대원출판
『정역』연산 돈암서원, 목판본, 1923
『정역 연구』이정호, 국제대학출판부, 1983
『우주변화의 원리』한동석, 대원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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