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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유럽에 금속활자를 전파했다

세덕 2012. 7. 9. 11:59

[이사람]“조선이 유럽에 금속활자를 전파했다?”

글 윤민용·사진 남호진기자
ㆍ장편 역사소설 ‘구텐베르크의 조선’ 발표 오세영 작가

소설가 오세영씨(54)는 매일 노트북을 들고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송파도서관과 분당도서관에 주로 가고, 날씨 좋은 날이면 강이 바라다보이는 광진정보도서관으로 향한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2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다독의 결과물은 차곡차곡 노트북에 저장했고, 여기에 상상력이 더해져 일련의 역사소설들이 탄생했다.

15년 전 역사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으로 판매부수 150만부를 넘기며 공전의 히트를 쳤던 그가, 이번에는 세 권짜리 역사소설 ‘구텐베르크의 조선’(예담)을 발표했다. ‘베니스의 개성상인’이 루벤스가 그린 ‘한복을 입은 남자’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됐듯, 이 소설의 단초도 2005년 5월 ‘서울 디지털 포럼 2005’에 참석했던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기조연설에서 비롯됐다.

그것은 근대활판인쇄술의 발명자인 구텐베르크가 사실은 조선의 금속활자에서 기술을 전수했다는 내용이었다. “충격적인 발언이었죠. 고어의 설명에 따르면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할 당시 교황 사절단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겁니다. 로마교황청 기록을 찾았더니 구텐베르크의 친구 중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추기경이 1452년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교황 니콜라우스 5세에게 소개했고 ‘42행성서’(일명 구텐베르크 성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음을 알렸다는 내용이 있었죠.”

추기경과 신원 미상인 남자, 서양보다 200년 앞서 금속활자를 발명한 고려의 인쇄술, 그리고 고려를 계승해 훈민정음이 반포되기 전 장영실이 주축이 돼 만든 갑인자(1434), 구텐베르크의 성서 인쇄(1448) 등 동시대의 서로 다른 공간에서 진행된 사건들이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을 뒷받침하기 위해, 오씨는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며 행간에 숨겨진 역사를 더듬었다.

유럽과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 조선을 종횡무진 오가며 세계를 하나로 묶어내는 솜씨는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주인공은 장영실의 제자인 활자주조장 석주원이다. 세종의 밀지를 받고 장영실과 명나라로 건너가 새 활자를 주조한 그는 사마르칸트에서 교황 사절단을 만나고, 곡절 끝에 독일 마인츠로 가 구텐베르크를 만나 새로운 금속활자를 주조한다는 내용이다. 이 가운데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에 얽힌 세종과 사대부들간의 갈등,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등 15세기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녹아있다.

“역사 속에서 자료를 찾다보니 도서관에서 파묻혀서 광범위하게 이런저런 자료를 훑어봅니다. 요즘엔 인터넷 덕분에 자료수집도 편해졌죠. 그렇게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서 작품 속에 가다듬죠. 하지만 자료에 함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말하자면 그는 한국형 ‘팩션’의 원조라고 할 만한데, 정작 그는 ‘팩션’이라는 용어가 마뜩찮은 듯했다. “ ‘다빈치코드’ 이후 팩션이 유행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다 팩션이 아닌가요?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도 정사에 기반한 팩션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나는 팩션이 역사적 사실 속에 픽션(허구)을 녹여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자신의 방점은 소설이 아닌 역사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그는 “시대 자체를 주인공으로 끌어들여서 인물 속에 그 시대를 반영하는 역사소설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데뷔작이 150만부 이상이 팔리면서 전업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그는, 그동안 신라와 조선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수원 화성행차를 바탕으로 한 근작 ‘원행’은 지난해 케이블채널 드라마의 원작이 되기도 했다.

작가는 벌써 다음 작품을 집필 중이다. 이번엔 다시 조선에 관한 이야기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펼쳐지는 역사를 솜씨 좋은 직공(織工)처럼 엮어내는 그의 상상력이 다음 작품에서는 또 어떻게 구현될까.

< 글 윤민용·사진 남호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