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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풍헌과 임진왜란에 얽힌 이야기

세덕 2012. 7. 16. 12:03

최풍헌과 임진왜란에 얽힌 이야기

최풍헌과 임진왜란에 얽힌 이야기


 

나상민_ 수원 매교도장

 
 이 세상에는 기인도 많고 이인도 많다. 그 중 세상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상제님께서도 인정하실 만큼 뛰어난 도술을 가졌던 인물이 있다. 바로 조선 선조 때 기인 최 풍헌이다.
 
 지난 임진왜란에 정란(靖亂)의 책임을 ‘최 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 일에 지나지 못하고 진묵(震默)이 맡았으면 석 달을 넘기지 않고 송구봉(宋龜峯)이 맡았으면 여덟 달 만에 끌렀으리라.’ 하니 이는 선도와 불도와 유도의 법술(法術)이 서로 다름을 이름이라. (道典 4:7:1∼4)
 
 이 말씀을 통해 최 풍헌의 조화법술이 무척 뛰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최 풍헌은 그러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임진왜란을 끌러내지 못했을까?
 임진왜란에 얽힌 최 풍헌의 일화를 통해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
 
 
 “저에게 병권을 허락하소서”
 ‘풍헌(風憲)’은 조선시대 대민행정 실무를 담당하던 향임(鄕任)의 하나로서 오늘날 면이나 동의 직원에 해당하는 직책이다. 최 풍헌에 대한 자세한 신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도력이 남달랐다는 것은 지금까지도 전설로 전해져 내려온다.
 
 임진왜란 때 평양으로 피난 간 선조에게 최 풍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병권을 3일만 허락하면 왜병을 3일 내에 전멸시키겠습니다.” 그러나 왕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다시 “그러면 ‘최 풍헌 네가 병권 없이 왜병을 없애라’고 한 말씀만 내려주십시오.”라고 청하였으나 이 역시 허락되지 않아서 결국 조화권(造化權)을 쓰지 못해 통탄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1592년부터 7년간에 걸쳐 조선은 왜구로부터 영토와 백성들을 참혹하게 침탈당했다. 그런 임진왜란을 3일 만에 해결하겠다고 할 만큼 최 풍헌이 엄청난 도력과 능력을 가졌음에도 끝내 자신의 조화술법을 부리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인사대권자로부터 명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사부님께서 “부득기위(不得其位)하면 불모기정(不謀其政)이라, 그 직위를 얻지 못할 것 같으면 정사를 꾀하지 못한다. 직위가 없는데 무슨 재주로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는가. 자기 위치가 있어야 그 노릇도 할 수가 있다.”고 하신 말씀 속에 그 답이 들어있다.
 
 최 풍헌의 일화는 인사대권자의 명(命)이 현실역사에서 무엇보다 절대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신도(神道)를 응기시켜 인사(人事) 문제의 향방을 틀 수 있는 근원적인 역사변혁의 추진 동력이 인사대권자에게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역사는 인사(人事)로 실현된다
 최 풍헌에 대한 일화는 상제님의 천지대업을 현실 역사 속에서 실현시켜 나가는 우리 일꾼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주의 통치자이자 절대자이신 상제님께서 역사를 매듭짓는 삼변도운의 인사정신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상제님의 대행자인 인사대권자의 명을 받는다는 것, 그것은 곧 일꾼에게 기운을 받아 가능성이 크게 열림을 의미한다. 그 명에 충실하는 삶을 살 때 성공에 이를 수 있음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인사의 지도자께서 주신 역사의 과업, 그 사명을 잊지 않고 실천하는 삶, 오직 깨어진 정신으로 실천하는 자만이 상제님 천지공사의 성공자가 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