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마음에다 천지를 담을 수 있다 본문

증산도는./증산도 입도 수기

마음에다 천지를 담을 수 있다

세덕 2012. 8. 9. 11:26

마음에다 천지를 담을 수 있다

고미순 _ 인천 주안
여자가 공부 잘해서 뭐하냐?
저는 전라남도 고흥에서 농사를 짓던 부모님의 2남5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평소에, 여자가 한글과 셈 계산만 할 줄 알면 되지 무슨 공부냐며 엄청 구박을 하셨고, 집안일을 잘해야지 공부 잘하는 것은 하나도 기쁘지 않다면서 장학금 받는 것도 싫다 하시던 분이었어요. 그래도 어머니가 뒤에서 묵묵히 뒷돈을 대주셔서 중학교를 양궁선수로 졸업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많이 배우지 못하고 일을 하면서 검정고시, 야간 고등학교, 방통대를 통해서 공부를 해야 했어요. 고등학교를 못 가게 하는 아버지가 그 때는 너무너무 밉고 야속했지만, 나중에 객지생활로 고생하면서 부모님의 소중함과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시골 내려가기 전날 밤, 부모님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과 설레임에 잠 못 이루고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바로 지금 이 기분일 겁니다. 어찌나 좋던지 그 때는 버스를 타고 꼬박 24시간을 달려서 가야 했거든요. 그렇게 해서 부모님과의 묵은 감정은 해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신앙 25년째
1982년부터 언니가 저를 교회로 이끌어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졸리기만 하던지 기독교 신앙이 좋은 것을 몰랐는데, 수요 예배 때였습니다. 갑자기 백회를 통해서 뜨거운 불덩어리가 들어와 온몸을 스쳐 발끝까지 내려갔던, 뜨거운 기운을 느끼면서 하염없이 울었던 그날, 아마도 하나님을 신앙하게 된 계기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그 후로는 언니보다 제가 먼저 성경책을 가슴에 꼭 안고 나서곤 했고 교회 가는 것이 너무너무 기쁘고 기다려졌습니다. 그런데 직장에서 잔업이다, 특근이다, 철야 작업이다 해서 교회를 못 나가게 되면 살다가 힘들어질 때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 드렸습니다.
 
그후 결혼해서 아이를 갖고 순복음교회에 다시 나가면서 이기적인 신앙을 벗고 거듭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공중에 나는 새도 저 산꼭대기에 사는 소나무도 물 주지도 않고, 먹이도 안 주는데 다 살아가지 않느냐? 하물며 내가 너희를 죽이기야 하겠느냐?” 하신 말씀과 “믿기만 하면 구원을 해 주신다”는 말씀에 기운을 얻고 살았습니다. 4년을 신앙하다가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순복음 교회의 몇몇 운영 실태를 보고 너무도 실망을 해서 신앙을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그후 하나님의 진리를 제대로 신앙하며 공부하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인천 연수동에 있는 조그마한 개척감리교회를 나가면서 또다시 4년 동안 열심히 신앙하였습니다. 부동산을 운영하면서 돈도 제법 벌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건물도 하나 사고, 정말 행복했습니다. 헌금도 제법 많이 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십일조나 감사헌금을 낼 때 한번도 이름을 밝힌 적 없이 무명으로 냈습니다. 그런데 구역장을 시키는 겁니다. 하기 싫었습니다. 저는 항상 부족하다고만 생각해서 누구를 가르칠 정도의 신앙심과 자질이 없다 생각했기에 거절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도 실망스러운 일이 생겨, 교회를 다시는 안 나겠다고 결심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상제님이 누군데? 뭐 하는 사람인데?”
그날 밤, 저에게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 같은, 날벼락 같은, 어떻게 정신을 차려야 할지 모르겠는, 아주 강렬한 충격이 있었습니다. 20년을 한결같이 예수의 이름으로 하늘에다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 신앙을 해왔는데, 예수가 인도에서 도를 닦았고, 결혼을 해서 후손을 봤고, 십자가에서 죽지도 않았고, 예수의 무덤이 발견됐다고도 하고…. 진짜 전기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열 받고 분통이 터지고, “상제님이 누군데? 뭐하는 사람인데?” 하면서 대순진리회에 갔습니다. 사업도 집어 치우고, 집에는 거짓말을 하고 아침 9시부터 새벽 1시 30분까지 파고들어서 공부를 했습니다. 생사가 달려 있는데 보이는 것이 있었겠습니까?
 
열 받고 분통 터지는 마음은 어느 새 가라앉고 곤륜산과 석가, 공자, 예수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니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금강산 12,000 도통 군자였습니다. 그것이 나를 하루에 3번씩 기도하게 하였고, 16~17시간씩을 미쳐서 공부하게 했으며, 11개월 만에 36명을 포덕하게 해서 바로 선무가 되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직분만 주면 하기 싫고 전도를 못했는데, 상제님을 알고 나니 완전 반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기독교 20년 대순진리회 4년, 하나님 신앙 25년째를 돌아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고생도 참 많이 했고 시련도 많이 겪었습니다. 하나님 신앙하면서 결혼생활도 파탄이 났고, 죽을 고비도 세 번이나 넘겼습니다. 시부모님은 저에게는 둘도 없는 고마우신 분으로, 친정 부모님보다 좋아했고 존경해서 성심성의껏 모셨습니다.
 
이런 시부모님을 비롯하여 남편과 아들을 하루아침에 다 잃고 혼자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나의 씨 나의 분신, 아들 영훈이와 헤어지던 마지막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이 글을 통해서 시어머니와 영훈이를 키워주는 새엄마한테 감사 말씀을 드리고 싶고, 우리 영훈이한테 이 세상에서 너를 제일 많이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영훈아! 사랑한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죽음이 눈앞에 닥치고, 목을 조여 오는 손길에도 하나님을 배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강세하신 참하나님을 간절하게 동경하고, 하나님의 존재 이유와 나와의 관계를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혼자서 간절히 만나 뵙기를 기도하던 중 기적적으로 증산도를 만나게 되었으니, 지금 제가 살아가는 이유는 오직 천지일월 네 분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제가 증산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도기 137년 1월 20일입니다. 하루 전 19일, 인터넷을 통해서 태을주의 중요성과 증산도를 발견하고 광주 상무도장으로 전화를 했던 것이 지금의 저를 태어나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 저와 통화했던 남현주 포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때 전화를 잘못 받아 주셨거나 진리가 바로 깨우쳐지지 않았다면 저는 아직도 방황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인천 주안도장에 포교사님, 포감님, 성도님들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과 지도편달이 없었다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앙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로, 대복을 받은 것 같습니다. 입문도 두 번에 걸쳐서 하게 되었고, 21일 정성공부와 수행하는 동안 6명의 포감님들이 돌아가면서 지도해 주셨고, 포교사님들과 여러 성도님들께서도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마침내 인간의 모습으로 전라도 땅에 오신 강증산 상제님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대순진리회에서 상제님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4개월 동안은 모든 것을 접어두고 하루에 3번씩 기도하며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후에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었던 차, 진리의 참 주인이신 안운산 종도사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천 주안도장을 찾아가서 7시간 30분 동안 묻고, 또 묻고…. 대순진리회에서 궁금했던 많은 의문점을 풀었던 그 날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한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태모님과, 태모님의 10년 천지공사, 정확한 태을주 해석과 수행법, 이 모든 것이 저한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더 강렬하게 미칠 수밖에 없었으며, 주위의 친구들은 “적당히 미쳐라” 하고 가장 친한 친구까지도 저를 욕하며 힘들게 했습니다.
 
저는 실패라는 단어를 아주 싫어합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라는 말이 있듯이 과정일 뿐이지 실패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천지일월도 사람을 위해서 일심으로 운행하는데 세상에서 사람이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 다 나를 몰라줘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마음을 알아주실 거라는 믿음,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최고의 강철검이 그렇듯 최고의 큰 일꾼은, 최고의 큰 시련과 고통과 복마와 척신의 발동을 이기는 자만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시속에 화복이란 말이 있고, 아픈 만큼 성숙하고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상충하면서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선천의 이치이기 때문에 가장 큰 화를 견딜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꿀맛보다 달고 향기로운 도훈 말씀
상제님, 태모님의 생명말씀과 태사부님, 사부님의 도훈말씀이 저에게는 꿀맛보다 더 달고 향기롭고 이 세상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맛있고 배부릅니다.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책에서 눈을 쉽게 뗄 수가 없습니다. 꿈을 꾸면서도 공부와 포교를 계속하는지 같이 사는 여동생이 변해가는 저를 보면서 자동으로 같이 주문 읽고 청수 모시고, 심고문을 외우는데 열정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곧 입문을 앞두고 있습니다. 정성수행 날짜가 더해 갈수록 미치게 되고 울보가 되어갑니다.
 
우주일년, 생장염장, 춘생추살, 상씨름, 병겁, 도공, 용봉기, 의통인패 중에서도 해인, 득의지추, 제세핵랑군. 이런 단어들은 저를 더욱더 강력하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통해서 사기와 자신감이 백배, 천배 넘치게 되었습니다.
 
 
오직 상제님 뜻대로 하소서
모든 일을 행할 때 천지일월께 먼저 기도를 올리고, 기도 끝에는 ‘제 뜻대로 마옵시고 오직 하나님 뜻대로 하여 주시옵소서’하며 기도 드립니다. 또한 ‘모든 기도와 소원을 가납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합니다.
 
많이 배우지 못한 것이 가슴에 한이 되었는데 지금은 부귀도 영화도 대통령도 부럽지 않습니다. 지난 날, 세상 속에서 기쁨과 행복과 쾌락을 즐기며, 술 마시고 TV 많이 보고 유행가 많이 부르고 찜질방에서 수다를 즐기던 저는, 태을궁 가는 날을 기다리고 도장 가는 것이 즐겁고, 공부하고 수행하는 것이 좋고, 세상 사람들과 도담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쾌락과 금은보화도, 태을궁에 가는 것과 도장에 가는 것과 포교하는 기쁨이나 행복과 바꿀 수가 없습니다.
 
증산도를 만나기 전 저의 꿈은 막연하였는데, 지금은 거대하고 성대하고 확고한 꿈이 생겼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잠시라도 쉬지 않고 증산도 5대 수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맨 처음에는 잘 되게 해달라고 성금 냈는데, 이제는 너무너무 감사해서 정성껏 성금을 올립니다. 세상에 미운 사람이 없어지고, 저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이 더욱더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태사부님과 사부님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천지일월 네 분께 엄청난 은혜를 입어서 보은하고자, 기쁘게 해 드리고자 노래도 지어서 불러보고 일일구호도 정해서 소리 높여 외쳐보고, 주문은 입에 물고 다닙니다.
 
제 포교 대상자는 무한합니다. 그럴수록 복마의 발동과 척신의 방해도 끊이지 않지만 저는 오히려 즐기고 있습니다. 산모가 강렬한 산통을 겪은 후에야 자녀를 얻을 수 있듯 저에게 고통과 아픔을 안겨준 사람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월 11일 설 보은치성과 함께 조상님 천도식을 성황리에 올려 드리고, 날마다 도장에 나와서 100배례와 주문수행, 기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가족과 친구와 주변 지인들에게 『개벽 실제상황』 《진리 맥 전하기》〈지금은 우주의 가을개벽기> <천지공사 백년>, <상제님 강세기> 등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직접 통화하고 메시지 전달하고, 만나서 궁금한 것을 풀어주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살아가니 너무너무 살맛이 납니다. 그 동안에 2명을 포교해서 입문시켰고, 3월에도 3명 정도의 입문자가 나올 것 같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진리를 전하고, 가게를 찾아주는 몇몇 손님에게도 상제님의 진리 씨앗을 계속 뿌리고 있습니다. 봄에 씨앗을 많이 뿌리고 여름에 관리를 잘해서 성숙되어야 가을에 많은 알곡을 추수할 수 있기에 불철주야로 뛰며 노력하겠습니다.
 
 
포교사님과 포감님과 성도님들, 모두가 하나 되어 둥글둥글 둥글어가는 인천 주안도장으로 많은 예비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기를 기도하며 많은 방문을 환영합니다. 천지일월 네 분과 선배신앙인과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도와주신 모든 분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전하며, 천지일월 네 분의 축복이 온 인류에 울려 퍼져나가 후천 5만년 선경세계가 건설되는 그날까지 큰 복, 대복을 받으십시오. 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