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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은 어떤 분이신가 ?

세덕 2012. 11. 15. 12:59

 

상제님은 어떤 분이신가 ?

우주의 도道의 주재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광대무변한 우주는, 쉬임없이 음양(태극)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변화 원리에 따라 끊임없이 생명을 낳으며,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궁극에는 변화를 주재하여 다스리는 통치자 하늘님(天帝)이 있습니다. 주자朱子는 그 분을 ‘옥황대제’곧 ‘옥황상제’라고 했습니다.

‘옥황’은 중국 송나라 때 도교에서 쓰인 말입니다. 또 ‘대제’는 유교에서 나온 말로서, ‘옥황대제’는 ‘옥황玉皇(Jade Emperor)’과 ‘대제大帝(Heavenly Emperor)’가 합쳐진 말입니다. 이 말은 상제님이 계시는 하늘의 수도인 옥경玉京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 곳은 북극 하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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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옥황대제’, ‘옥황상제’는, 서양 문화에서처럼 우주를 빚어내는 창조주가 아닙니다. 옥황대제는, 우주 속에 내재되어 있는 생명의 변화 원리를 신도神道로써 다스리는 인격신입니다.

이 옥황대제, 곧 상제님의 화권으로 하늘의 신의 세계가 구체적인 조직과 질서를 갖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제님은 천상 신명 세계의 최고신(The High God)인 것입니다.

상제님은 인간과 신도神道 문명의 공덕을 성취하도록 우주 역사를 다스리는 인격신입니다. 천지의 근원 질서(생·장·염·장)를 다스려, 우주의 꿈과 우주의 궁극 목적을 실현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증산 상제님은 도통을 하시고 나서, ‘내가 옥황상제다’ 라고, 당신의 신원身元을 밝혀 주셨습니다. 『도전』2편 12장을 보세요.

내가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장생의 선경 세계를 건설하려 하노라.

나는 옥황상제玉皇上帝니라. (道典 2:12:2∼3)

사실 이 ‘삼계 대권’과 ‘주재’란 말은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대우주 주재자인 상제님 세계는 주자가 얘기했듯이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 차원에서 이해되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체험해서 깨져야만 알 수 있는 신비롭고 오묘한 신의 세계이며, 우주 신도神道 세계의 최정상에 있는 통치자의 문제입니다.

이 증산 상제님의 세계를, 여러분 모두 상제님의 참 일꾼이 되어 직접 사무치게 체험해 보기 바랍니다.

 

증산 상제님은 우주의 최고신最高神

동과 서의 신의 가르침, 신의 세계란 결국 이 우주가 생겨난 시원始源, 내가 보는 저 아름다운 산과 들, 무한의 저 은하계 별들, 이 모든 것이 생겨난 어떤 근원이 있지 않느냐 하는 데 대한 인류의 신앙 고백이며, 체험입니다.

서양에서는 유일신 하나님을 외쳤습니다. 오직 한 분의 신이 있다는 것이죠. 그들의 신은 철저한 초월자입니다. 때문에 대단히 강력한 신입니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신이 많다고 합니다. 그 신들의 인격성도 각기 다릅니다. 신들이 독립하여 있는 하늘도 다천多天 구조이며, 그 많은 하늘을 다스리는 신들 또한 많습니다.

‘신은 무엇인가’에 대한 증산 상제님의 말씀을 읽어 봅시다. 『도전』2편 45장을 펴 보세요.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이 신神이니 신이 없는 곳이 없고 신이 하지 않는 일이 없느니라. (道典 2:45:1)

신에 대한 가르침으로는 이 이상 명쾌한 게 없습니다. 이 말씀은 신에 대한 모든 문제의 근본을 깨칠 수 있는 도언道言입니다. 신도神道에 대해 도통이 나오는 깨달음의 말씀이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이 이 천지에 가득 들어 차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때, ‘신’은 어떤 신을 말하는 걸까요?

그것은 적어도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의 신은, 우리가 언어나 논리로써 말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것은 텅 빈 이 시공간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체험의 문제입니다. 우주와 만물의 본성에 대한 문제죠. 우리가 수행 생활을 통해 신안이 열려서 보면, 우주는 ‘신적 존재’입니다. 이 때 신은 처음에 영기靈氣로 느껴집니다.
순수 인격을 갖고 있는 장엄한 기령氣靈, 성령입니다. 이 경우 신은 우주에, 만물 속에 꽉 들어 찬 살아있는 생령生靈입니다. 우리가 수행 중에 그것을 보면, 대광명으로 출몰하여 너무도 아름답고 신비스런 느낌을 줍니다.

두 번째 의미의 신은, 태초 이래 인간이 생명의 질서[生·長·斂·藏]를 마치고 죽은 사후적 존재로서의 영, 살아있는 영적 존재를 말합니다. 만물의 영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상제님은 파리 죽은 귀신의 존재도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두 가지 기본 뜻이 이 ‘신’에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영대가 크게 트이면 구체적인 ‘신’의 경계가 열릴 것입니다. 그 때 이 말씀의 참된 뜻을 전부 깨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수천 년 세월 동안, 모든 천지신명들을 받들고 그분들께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신들 가운데 지존의 최고신이 있다. 그 분이 상제님이다.” 이렇게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므로, 동서 신관의 궁극은, 서양도 유일신 문화이고, 동양도 유일신 문화입니다. 최고신의 관점에서 볼 땐 그렇습니다.

동양에서도 최고신은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 많은 신들 가운데 최고의 신, 지배자, 통치자, 그 분이 바로 증산 상제님입니다.

증산 상제님은 우주의 삼계 대권을 쓰시는 분입니다. 삼계 대권, 화권化權, 신권神權을 쓰시는, 그런 절대 권능을 가지신 신은 오직 주재자 한 분뿐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초월신인 기독교 창조주 하나님보다 더 절대적이죠. 상제님은 한량없는 자비의 하나님이지만, 천지의 기강을 잡으시는 위의威儀를 떨치실 땐 그 강력한 신권 때문에 천지와 만물이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상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천하에 예의상 둘째가 될 수 없느니라.
(道典 9:40:4)

『도전』에, 그것을 알려 주는 좋은 예화가 있죠.

증산 상제님이 도통하시고 나서, 개벽공사 보실 때였습니다. 상제님이 도통문을 여실 때(신축년, 道紀31, 1901), 그 기운을 받아 도통한 자가 몇 있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이가 전주의 고송암高松庵, 장흥의 안제암安濟庵, 함열의 함석태咸錫兌, 하동의 문화재文華齋 등 다섯 명이라고 전해집니다.

상제님께서 서양 열강에 떠넘어가던 동양 약소국을 건져 주시기 위해 서양 제국주의를 몰아내려고, 서양에 대전쟁을 일으키는 공사를 집행하시던 때였습니다.

고송암이란 사람이 도통을 하고는 상제님과는 정반대로 동양을 서양에 넘겨 새 세상을 꾸미려고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역적질을 한 거죠.

정미(1907)년 어느 날, 박공우 성도가 우연히 자기 친구집으로 상제님을 모시고 갔습니다. 그 친구는 바로 고송암의 제자였습니다.

공우가 상제님께 점심상을 올렸더니, 상제님이 갑자기 젓가락으로 밥상을 탁 치시면서, “서양 기운을 몰아내어도 다시 몰려드는 기미가 있음을 이상히 여겼더니 뒷골방에서 딴전 보는 자가 있는 것을 몰랐도다. (道典 5:135:3)”라고 하십니다. 그 순간 고송암이 죽습니다. 상제님께서 그의 명줄을 거두신 것이죠.

상제님은 박공우 성도에게 “고송암에게 가서 문상問喪하고 오라.”고 보내십니다.

그 이후 이 지구상에는 도통이란 없습니다. 상제님이 그 기운을 모두 거두셨기 때문입니다.

상제님께서 일찍이 정읍 통사동 이씨 재실에 행차하시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허부虛符공사를 보노라.” 하시고 부符를 많이 그리신 후에 불사르시니라.

이 허부공사로 일체의 도통 기운을 거두시니라. (道典 11:45:1∼3)

최고신은 오직 증산 상제님 한 분뿐입니다. 상제님 행세를 하는 자는 천지에서 용서치 않습니다.

이 도권道權의 기강을 파괴하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대순진리회에서는 조철제가 옥황상제이고 강증산은 구천상제라고 합니다. 상제가 둘이라는 거죠. 참으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말이죠. 이것은 이 우주에 삼계대권의 주재자는 오직 한 분이라는 상제님 말씀을 거스르는 삿된 말입니다.

이 난도 난법자들에 대해 경고하신 공사 내용을 보십시오.

대흥리에 계실 때 하루는 상제님께서 양지 몇 조각에 각기 옥황상제玉皇上帝라 쓰시고 측간에 가시어 후지后紙로 사용하시니라.

한 성도가 여쭈기를 “지금 옥황상제라 쓰시어 후지后紙로 쓰시니 어인 연고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천지에 감히 누가 이와 같이 할 수 있겠느냐? 만일 옥황상제라 자칭하는 자가 나타나면 천지신명이 그 목을 베고 몸을 찢어 죽일 것이니라. 이 뒤에 대도를 거스르고 패역하는 자가 있어 세상을 그르치며 백성을 상하게 할 것을 경계하는 것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6:59)

최근에도 그들은 거리에서나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증산도에서 나왔다’고 증산도를 사칭하면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난 20여 년 동안, 내가 쓴 『이것이 개벽이다』, 『증산도의 진리』 등 우리 증산도 서적을 모두 가져다가 그들 신도용 교육 자료, 포교 자료로 사용해 왔습니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한때 그들은 내가 본래 대순에서 쫓겨난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닌 적도 있습니다. 또 상제님의 판은 음양판이 있는데, 대순은 음판, 증산도는 양판으로, 자기네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필요한 책을 증산도에서 다 써 주게 돼 있다고 별의별 고약한 말을 다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상제님 말씀의 핵심을 그릇되게 왜곡, 조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본래의 상제님 말씀과는 전혀 다르게 꾸며낸 상제관과 개벽관, 수행관, 대두목관, 엉터리 종통관을 가지고, 순진한 세상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 전직 대통령의 딸이 그들로부터 당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루는 포천 지역 대순진리회의 간부가 찾아와서, 그녀의 남동생이 척에 걸려 이삼 개월 안으로 참혹하게 죽게 되어 있으니, 성금 사백만 원을 가져다 내고 치성을 드려야 한다고 하더랍니다. 크게 충격을 받은 그녀는 동생을 위하는 순수한 마음에 곧장 성금을 내고 치성을 모시려 하다가, 좀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 증산도 간부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절대 그런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켰죠. 그리고 서울에 있는 우리 간부들에게, 가서 그 마음을 위로해 주고 함께 치성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지금 전국 각지에서 날마다 벌이고 있는 일들이 다 이와 같은 일입니다. 치성이나 조상 천도를 빙자하여 돈을 뜯어냅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건물을 크게 지어 놓고 위세 자랑을 합니다. 상제님의 도법을 철저히 악용하고 있습니다. 상제님 말씀을 자기들의 삿된 생각에다 이리저리 짜 맞추어, 선량한 사람들을 난도 난법의 구렁으로 빠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가엾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개벽의 목줄로 들어서는 이 때, 이런 건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머지않아 모든 허구와 거짓이 다 도려내질 것입니다.

 

 

상제님은 오직 한 분뿐인 대우주 통치자 하나님

상제님은 대우주를 다스리는 분입니다.

상제님은 범어梵語로 지족천知足天이라 불리는 투시타(Tushita) 하늘, 도솔천兜率天에서 오셨습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도솔천의 ‘도兜’는 머리에 쓰는 ‘투구’란 뜻이고, ‘솔率’은 ‘거느린다’는 뜻입니다. 도솔천은 모든 것을 다스리는 통일의 하늘이란 뜻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이 도솔천의 ‘도솔’을 인류 문명의 대통일 논리로 쓰셨습니다.

수천지지허무 선지포태
受天地之虛無하여 仙之胞胎하고

수천지지적멸 불지양생
受天地之寂滅하여 佛之養生하고

수천지지이조 유지욕대
受天地之以詔하여 儒之浴帶하고

관왕
冠旺은

도솔 허무적멸이조
兜率 虛無寂滅以詔니라

천지의 허무의 도를 받아 선도가 포태되고, 천지의 적멸의 도를 받아 불도가 양생(낳고 기름)되고, 천지에서 인간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 주는 이조의 도를 받아 유도가 욕대(목욕하고 띠를 두름)하니,

이제 인류가 맞이한 성숙의 관왕冠旺도수는 도솔천의 천주가 선(허무) 불(적멸) 유(이조)를 모두 통일하느니라. (道典 2:118:7∼11)

상제님은 하늘과 땅과 인간, 모든 것을 다스리는 통치자 하나님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동학 신도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나니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각기 저의 스승이라’ 하여 따르리라. (道典 2:43:1∼4)

이 말씀에는 ‘그 한 분만 오시면, 각 종교에서 각기 달리 부르짖음으로써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근원적인 요소가 없어진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각 종교에서 부르짖는 구원의 메시아는 같은 분입니다. 그 분은 한 분입니다. 예수가 말한 아버지, 석가가 말한 미래의 부처 미륵불彌勒佛, 상제님으로부터 도통받은 최수운이 말한 대선생大先生은 같은 분을 가리킵니다. 그 분이 바로 상제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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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부분 다른 분으로 알고 서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말장난에 가려서 못 보는 거죠. 달은 못 보고 손가락을 쳐다보는 격입니다. 참 유치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장 참담한 비극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서 잠시 자기들이 섬기고 있는 신의 이름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인정 못 하고 싸우고 죽이는 종교 분쟁 문제를 깨부수기 위해, 우주의 주재자이신 상제님이 행하신 공사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하루는 상제님이 인삼으로 유명한 금산의, 한 예배당엘 가셨어요.

“전능하신 여호와 하느님이 진흙으로 아담을 빚어 입김을 불어넣으시고 아담의 갈빗대로 이브를 만들었으니 아담과 이브는 인류의 조상입니다.………자, 다 함께 따라 읽읍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이렇게 목사가 한참 설교하고 있는데 상제님께서 잠시 설교를 들으시더니 단상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추상같은 목소리로 “그렇게 가르쳐서는 안 되느니라.…… 올바른 길이 아니면 가르치지 말라.” 하시고, “목사가 믿는 하느님이나 중들이 가르치는 부처가 본래는 하나로되, 중생들을 그릇 인도하면 천지의 원 주인도 자리를 잡지 못하느니라. (道典 5:10:4)” 하시며 냅다 벼락을 치십니다.

이 ‘천지의 원 주인도 자리를 못 잡는다’고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것은 목사나 중들이 중생을 잘못 인도하고 있으므로, 중생들이 천지의 원 주인인 상제님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주재자인 상제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겁니다. 서양의 기독교는 예수를 아버지로만 보고, 동양의 불교도는 오직 ‘부처’ 논리에만 빠져 있어, 상제님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상제님이 천지의 주재자로서, 왜곡된 관념에 찌든 인간들을 응징하고, 인류 역사의 심장부에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새로운 신화가 필요한 때

지구촌의 각색 종교, 신화를 체계적으로 해석하여 인류에게 큰 지적 유산을 남겨 준 신화의 아버지 죠셉 켐벨(Joseph Campbell)이 있습니다. 그가 미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빌 모이어(Bill Moyers)와 대화한 것을 기록한 『신화의 힘 The Power of Myth』은 우리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해 줍니다.

여기서 그는 신에 대한 근본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인류가 갖고 있는 편협한 신관의 울타리를 깨고 나올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보는 새로운 눈을 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켐벨은 구약의 창조신이 어느 정도 모순이 있는 신인지를 꼬집고 있습니다. 십계를 내려줄 땐, 모세에게 ‘살인을 하지 말라’고 해 놓고서, 그 다음 장에는 ‘가나안에 들어가면 모든 이들을 다 죽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또 그는 베이루트에서 서양의 3대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회교가 똑같은 신을 믿으면서 이름이 다르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서로를 못 받아들이고 대가리 터지도록 싸우고 있는 걸 비판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지역, 하나의 부족이라는 경계 안에 갇힌 채, 단순히 자기들 신과 약속한 그들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 다른 민족을 마구 죽이는, 이것이 선천 종교의 한계라는 겁니다.

여러분, 같은 신을 믿으면서도, 그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서로 화합을 못 하고 싸우고 죽이고 있는 뿌리 깊은 갈등 문제를 생각해 보십시오. 유일신 문화의 사고는 이토록 배타적 절대주의를 고집합니다.

일찍이 노벨상 수상자인 아이작 싱어는 “인류의 미래를 알고 싶거든 레바논의 거리를 걸어 보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폭탄 테러를 일삼고 있는 저들을 보십시오. 우리는 지금도 천추의 한을 남기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원한의 절규를 듣고 있습니다.

이렇게 독선적이며 서로를 배척하고 생명을 가차없이 죽이는 신화는 이제 버려야 합니다. 이제는 켐벨이 지적한 대로 사회주의자, 민주주의자, 기독교도, 회교도, 불교도, 무신론자 지구촌의 어느 누구에게도 두루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새로운 신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증산 상제님이 인존시대의 인간으로 오시어 대개벽 세계를 여신 것, 이것이 바로 인류의 새로운 신화입니다.

상제님은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하여 내려 보냈노라. (道典 2:43:5)”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펄쩍 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륵이 석가모니의 제자였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예수님은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빛 속에서 스스로 오셨는데, 예수님 위에 또 누가 있느냐?’고 말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아버지의 온전한 실상을 못 보는 삼위일체三位一體설의 반쪽 논리 때문에, 예수가 하나님인 줄로만 알고 있습니다. 체體·상相·용用의 논리로 볼 때, 성부(아버지)와 성자(아들)와 성령은 다릅니다. 다르지만 그 본질이 같고, 또한 일체됨의 관계에서 보면 하나이지만, 실제 변화 작용 역할이 각기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선천의 성장 시간대에서는 그 신권, 위격이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같다는 것만을 수용하고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본래 예수는 아버지에 대해 양면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며 구체적 개별적 형상이 없는 신적 존재로 아버지를 인식하고 있죠. 신약에서 아버지에 대한 모든 가르침이 사실 이런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전하는, 아버지에 대한 보다 결정적인 메시지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그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개벽하는 때 : 우주가 새로 태어나는 때)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마태복음 24:36)

이 때의 아버지는 성서 전체의 주제가 되는 음적 이미지의 아버지가 아닌, 우주 질서를 현실 역사 속에서 다스리는 인격신으로 인식하고 해석을 해도 전혀 무리가 아닙니다.

여기서 그 날 그 때를 모른다는 예수의 말은 그 말 그대로 가감없이, 선천 하늘 아래 그가 성취한 깨달음의 한계에 대한 그의 고백일 수도 있죠.

실제로 성서 전체 내용 가운데 새 우주로 태어나는 대개벽의 상황에 대해 실감나게 그려져 있는 곳은, 오직 <계시록> 한 편뿐입니다.

그것도 개벽을 극복하는 길이나 후천 선경의 신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과 생활상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용이 없습니다.

구약의 <다니엘서>에도 개벽 상황에 대한 것이 있다고는 하지만 너무 단편적이고 상징적이죠.

나는 동서고금의 모든 성인과 영능력자들이 전한 내용을 오랫동안 구체적으로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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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메시지의 공통점은, 개벽 후 전 지구촌에 펼쳐지는 21세기 신문명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의 시간대가 끊어져서, 새로운 시간대로 가는 가을 대개벽의 비밀을 그들이 인식할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 우주의 참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직 상제님만의 소관입니다. 그것은 오직 이 땅에 인간으로 강세하신 상제님의 우주 개조, 우주 갱생의 9년 천지공사에서만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날’과 ‘그 때’는 바로 ‘개벽의 날’입니다. 하늘과 땅에 새 기운이 도는 날, 우주에 가을 시간대의 새 역사가 전개되는 그 날 그 때의 모든 변혁의 비밀은, 예수 자신도 모르고 하늘의 신명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이신 상제님만이 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이중적 존재 의미로 아버지를 인식하면서 성경의 이 구절을 제대로 읽어 보세요.

 

신이 보낸, 인간의 아들 예수

예수는 늘 자신이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임을 강조하고 있죠.

이 ‘인자’란 말은 예수의 복음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가장 강력한 호소력을 가진 말입니다.

그의 소박하고 진실한 가르침은 항상 ‘인자가 말하노니’ 곧 사무치게 깨어있는 인간이 되어 전하는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예수는 피와 살, 눈물과 웃음, 사랑과 슬픔을 가진 인간으로서 인간 생명의 근본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죠. 과연 인간의 삶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가 희생과 사랑의 실천을 통해 보여 준 인간이 가야 할 삶의 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버지에게로 가는 길입니다. 신과 하나 되는 신인합일의 길이죠.

예수의 가르침이 우리 가슴에 깊이 와 닿는 것은, 이처럼 그가 인간의 아들로서 영원한 생명의 근원인 아버지의 복음을 전하고, 온 인류가 머지않아 도래하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릴 것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그 상징의 이중성!! 우리는 언제나 아버지란 말이 가진 이중적 성격, 이중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는 아버지와 자기는 하나이지만 엄연히 다른 실존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다.”, “너희는 그를 모르나 나는 그를 안다. 그가 나를 보내셨다.”고.

상제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죠.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하여 내려 보냈노라. (道典 2:43:5)”고.

그는 상제님의 천명을 받고 ‘아버지 나라’의 복음을 전하러 인간으로 온 것입니다. 이것이 성자 예수를 이해하는 가장 핵심되는 메시지입니다.

 

개벽장 하나님이신 상제님

상제님은 천지의 질서까지 만들어 낸 창조주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주의 근원 질서(로고스)는 본래 주어져 있는 겁니다. 상제님은 그 본성을 ‘생장염장’이라고 하셨죠.

상제님은 그 질서를 열어 가시는 개벽장 하나님입니다. 자, 『도전』4편 4장을 봅시다.

시속에 어린아이에게 개벽쟁이라고 희롱하나니 이는 ‘개벽장開闢長’이 날 것을 이름이라. 내가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천지를 개벽하고 무궁한 선경의 운수를 정하리라. (道典 4:4:2∼3)

이 말씀을 우리가 좀더 쉽게 받아 들이기 위해, 이천 년 전 요한에 의해 선언된 개벽 소식을 들어 보겠습니다. <계시록> 20∼21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And I saw a great white throne, and him that sat on it, from whose face the earth and the heaven fled away; and there was found no place for them. (Holy bible, 계시록 20: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And I saw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for the first heaven and the first earth were passed away; and there was no more sea. (계시록 21:1)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니라.

And he that sat upon the throne said, ‘Behold, I make all things new.’ (계시록 21:5)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한다.” 이것이 이천 년 전 요한을 통해 선언한 상제님의 개벽 메시지입니다. 개벽 상황이 전개될 때, 그 세계를 열어 주시는 ‘크고 흰 보좌 위에 앉으신 하나님’, 그 분이 상제님입니다.

예수가 말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분이 바로 기독교 탄생 이전 수천 년 전부터 동방 신교 문화에서 신앙해 온 호천금궐 상제님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 신도들은 조건반사적으로 예수를 아버지로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타성에 젖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가 곧 아버지’라는 삼위일체의 그릇된 해석 때문입니다.

하늘 궁궐에서 상제님을 친견한 요한조차도, 개벽 상황을 신교神敎, 신의 가르침대로 잘 받아쓰기 하다가, <계시록>의 마지막에 가서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예수 재림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삼천포로 빠진 겁니다. 한마디로 계시만 받았을 뿐, 우주의 통치자로서 하나님, 최고신이신 상제님에 대한 인식을 구체적으로 못 한 것입니다.
이것은 신을 궁극의 실재로서만 인식하고 아버지 신의 이중성을 전혀 생각지 못하는 서구적 신관의 한계 때문이죠.

그는 명화明化된 순수의식으로, 직접 도통 차원에서 상제님을 본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에 취해 하늘에서 보여 준 것을 잠시 정성껏 본 겁니다. 계시를 받는 그의 의식이 미성숙하고 불완전하여, 판단의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다음 말씀을 들여다 보면, 개벽장 하나님(Renewing God)이신 상제님의 면모를 구체적으로 감 잡을 수 있습니다.

이제 혼란키 짝이 없는 말대의 천지를 뜯어고쳐 새 세상을 열고 비겁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널리 건져 각기 안정을 누리게 하리니 이것이 곧 천지개벽이라. (道典 2:24:1∼3)

증산 상제님은 개벽의 도로써 천지의 새 질서를 열어 인간과 신명을 함께 건져내십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는 하늘과 땅의 질서를, 선천의 상극 질서로부터 상생으로 바꾸십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우주 만물의 성장 시대에서 성숙의 계절로, 축원蓄寃의 운수를 해원解寃의 운수로 바꾸십니다.
지금은 하늘과 땅과 인간과 신명이 우주의 가을철을 맞이하여 상제님의 도道로써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만물이 가을의 생명으로 재탄생(rebirth)해야 합니다. 이 우주의 재조정(restructuring) 개조(reconstruction) 공사가 곧 9년 동안 상제님이 인간 세상에서 집행하신 천지공사입니다.

따라서 천지공사 도수의 줄기를 모르고는 결코 상제님을 알 수 없습니다.

증산 상제님은 “태초 이래 이것은 오직 내가 처음 짓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상제님은 한마디로 우주의 주재자요, 천상의 통치자요, 최고신이며, 개벽장 하나님이십니다.

선천 성자들 깨달음의 최종 결론은, 이 우주 질서가 근본적으로 새롭게 바뀌고, 개벽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개벽을 성취하는 분이 인간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늘의 최고신, 통치자로서, 이 우주의 궁극의 꿈을 성취하는 유일신을 말합니다. 어떤 종교든, 종교들 사이에 놓인 장벽을 허물어뜨리고 보면, 그들이 전하는 공통된 메시지는, 이 땅에 인간이 그토록 염원해 온 지상 천국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 대개벽이 있습니다. 상제님이 바로 그 주인공이십니다.

이 대개벽 상황에 대해서는 『이것이 개벽이다』를 2∼3회 정독해 보세요. 금년부터는 개벽 상황이 피부로 느껴지는 변혁의 시간대로 들어서기 때문에, 이 책에서 여러분은 동서 개벽에 대한 메시지를 새롭게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