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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주 천지조화

사악함 이미지는 오해… 재생·불사 상징으로 수호신 역할 본문

역사 이야기/한민족 X파일

사악함 이미지는 오해… 재생·불사 상징으로 수호신 역할

세덕 2013. 1. 1. 08:02

 

  • 사악함 이미지는 오해… 재생·불사 상징으로 수호신 역할

    사악함 이미지는 오해… 재생·불사 상징으로 수호신 역할

    癸巳年, 동서양 문화 속의 뱀모습은
    이집트, 왕권 의미로 추앙… 유럽 신화에선 정력 뜻해
    겨울잠 자고 허물 벗는 생태… 환생·회복의 영물로 대우

     

    한국일보|권대익기자|입력2012.12.31 21:03
    • 2013년 새해는 계사년(癸巳年), 뱀의 해다. 뱀(巳)은 12지(十二支)의 6번째 동물이고, 10간(十干)의 마지막을 차지하는 계(癸)는 수(水)의 성질로 검은 색을 뜻한다. 따라서 계사년은 '검은 뱀'의 해다.

      중국 창조신화는 인류의 조상인 복희와 여와를 사람 얼굴에 뱀의 몸을 지닌 형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뱀만큼 문화적 호오(好惡)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동물은 없다. 뱀은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는데다가 두 갈래로 갈라져 날름거리는 혀와 사람을 노려보는 듯한 섬뜩한 눈초리로 보는 이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뱀 하면 십중팔구 '사악하고 징그러운' 존재를 떠올린다.

      ↑ 석가탄신일이나 영산재, 수륙재, 예수재 등 불교의 야외 법회 때 사용하는 불화인 십이지번(十.支幡) 속의 뱀 모습. 통도사 성보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기독교 <성경>에서는 아담과 이브를 꾀어 금단의 열매를 따먹게 해 원죄를 짓게 한 사탄으로 묘사한다. 불경 <법화경>에서는 뱀을 꽃나무 밑에 숨어 사람을 미혹하는 유혹과 애욕의 상징으로 그렸다. 이 불경은 '뱀은 악업이 깊은 동물이라 그의 일생이 매우 괴롭다'고 적었다. <백유경>에서는 교만심을 경계하라며 뱀 머리와 꼬리가 서로 앞장서겠다고 다투다 불구덩이로 떨어져 죽은 이야기를 소개했다. <삼세인과경>, <보생경> 등도 뱀을 간사함과 배신 등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반대로 뱀을 신성시하기도 한다. 고대 농경문화권에서는 뱀을 불사(不死)와 재생(再生)의 상징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으로 떠받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집과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모셨고,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는 조상신으로 섬겼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뱀을 왕권을 의미하는 상징물로 추앙했다. 투탕카멘 왕의 황금마스크 정면을 뱀으로 장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묘사하는 그림이나 영화, 연극 등에도 예외 없이 뱀이 등장한다.

      유럽에서 뱀은 치유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의술의 신',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는 뱀 한 마리가 둘둘 감겨 있는 지팡이를 들고 다닌다. 이 뱀은 의술의 신을 보필하는 신성한 하인이자, 해마다 탈피함으로써 새로운 힘을 소생시키는 정력의 상징이다. 지금도 군의관 배지에는 뱀 두 마리가 십자가 나무를 감고 있는 문양이 들어 있고, 유럽의 병원과 약국을 상징하는 문장에도 뱀 도안을 쓰고 있다. 제우스 전령인 헤르메스가 들고 다니는 지팡이, 카두케우스도 두 마리의 뱀이 엉켜 있는 모습이다. 이 때 뱀은 대립되는 양극을 하나로 융합하는 초월적인 힘을 지닌 존재다.

      우리나라도 예부터 뱀은 수호신이나 죽은 사람의 환생을 기원하는 영물로 대우받았다. 특히 고구려 고분벽화에 뱀이 자주 눈에 띈다. 사신총 현무도에는 뱀과 거북이 서로 얽힌 채 눈길을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현무의 뱀은 양기를 지닌 수컷을, 거북은 음기를 지닌 암컷 역할을 한다. 때문에 뱀과 거북이 얽힌 채 머리를 돌려 서로 눈길을 마주하고 입에서 뿜어낸 기운이 허공에서 만나 어우러지는 현무의 모습은'재생'이라는 종교적 상징성과 우주 질서의'회복'을 의미한다.

      국보 제195호 '토우장식장경호(土偶裝飾長頸壺)' 등 신라시대 토우와 조선시대 민화에도 뱀이 자주 등장한다. 토우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개구리를 쫓거나 잡아 먹는 뱀의 모습이다. 여기서 뱀은 불사와 재생을 기원하는 종교적 의미가 있다. 겨우내 자취를 감췄다 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또 주기적으로 껍질을 벗는 뱀의 생태가 이런 관념을 낳은 것이다.

      또한 <삼국유사> 중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가야국 김수로 왕에 관한 기록에도 뱀이 나온다. '혁거세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62년 만에 하늘로 올라가더니, 그 후 7일 만에 유체(遺體)가 흩어져 땅에 떨어지며 왕후도 따라 세상을 떠났다. 나라 사람들이 합장(合葬)하고자 하니, 큰 뱀이 쫓아 방해하므로 오체(五體)를 각각 장사 지냈다. 그래서 오릉(五陵) 또는 사릉(蛇陵)이라 한다'거나, '신라 통일 후 문무왕 때, 전 가야국 김수로왕 왕묘(王廟)에 금옥(金玉)이 많이 있다 해 도적들이 이를 훔치려고 했다. 이 때 30여 척이나 되는 큰 뱀이 번개 같은 안광(眼光)으로 사당 곁에서 나와 8, 9명의 도적을 물어 죽였다. 지금도 능원(陵園) 안팎에는 신물(神物)이 있어 보호한다는 믿음이 있다'등이다. 뱀이 죽은 이의 사후 삶을 지켜주고 환생과 영생을 기원하는 신수(神獸)로 형상화한 것이다.

      민속 전문가인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우리의 전통문화와 민족정서가 담긴 12지(支)에서 뱀은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며 "계사년 새해에는 뱀이 허물을 벗듯이 자기 발전과 혁신의 해가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