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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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는./증산도 입도 수기

<증산도>삼변성도로 마침내 입도식을 올리고

세덕 2013. 4. 4. 14:11

삼변성도로 마침내 입도식을 올리고

 

<증산도>삼변성도로 마침내 입도식을 올리고

<증산도>삼변성도로 마침내 입도식을 올리고

최순임
목포용당 도장
도기 128년 6월 4일 입도


죽음에 대해 고민했던 어린 시절

 저는 어려서부터 내성적이고 겁쟁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해 고민했었고, 죽음을 두려워했고, 죽음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 가족이 죽으면 어떻게 하나, 죽지 않고 오래 살 수는 없을까?’ 하는 등의 고민을 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밤에 잠을 잔다고 누워 있었지만, 아직 잠이 채 들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제가 자는 줄 알고 얘기를 나누시던 중, ‘순임이는 사주에 명이 짧다고 나온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너무나 슬펐습니다. 그렇잖아도 유달리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던 저였는데…. 하지만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냥 모른 척하며 누워 있었습니다. 일어나서 어머니께 그게 사실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면 어머니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생각하니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밤새 저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울면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초등학교 때, 학교 가는 길에 남의 집에 상여 나가는 것만 보아도 너무 슬퍼서 그 옆을 지나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엉엉 울다가 친구들이 모두 가 버린 뒤에 혼자 집에 돌아왔던 일도 있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저에게 정말 커다란 숙제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오빠의 자전거에 치어 다쳤을 때, 오빠가 부모님께 혼날까봐 제 잘못이라고 거짓말해서 무사히 넘어간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때 다친 발 때문에 한 달간이나 신발도 못 신고 맨발로 다니다시피 했지만 한번도 원망을 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고운 심성이 있었나 봅니다.

 그러다가 학창 시절, 윤리 시간에 선생님께서 우리의 도맥(道脈)은 아무도 모르게 이어지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내가 그것을 만나면 반드시 그 일을 해야지.’ 하면서 멋도 모르면서 은근히 마음먹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납니다.

 

가게에서 시작되었던 증산도와의 인연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허전함이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어서 단전호흡을 배우면 괜찮아질까 싶어 책을 사서 혼자서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 후 결혼을 하고 나니, 마음이 불안해지고, 괜히 조급해지면서 욕심도 늘어갔습니다. 그리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그저 그렇게 지내면서 긴장감도 잃어버리면서 그냥 평범하게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1993년, 시골에 계시던 시부모님께서 가게를 하시려고 목포로 올라 오셨는데 갑자기 시어머님의 암이 재발했습니다. 시어머니는 가게를 제게 맡기시고 서울로 치료를 받으러 다니시고, 저는 가게를 맡아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95년 새해가 되기 10일 전에 시어머니는 결국 운명을 달리하시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가 남기고 가신 조그마한 가게를 보면서 저는 시간 날 때마다 신문과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 저를 눈여겨보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상제님 진리를 만날 수 있도록 해주신 서의자 성도님이십니다. 그 분은 저의 가게에 손님으로 오신 분이지만, 지금은 저의 은인이 되시는 분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서의자 성도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가게를 하다보면 교회 전도사, 대순진리회, 보험사 직원 등 별의별 사람들이 다 찾아옵니다. 서의자 성도님을 만나기 전에도 이미 ‘증산도를 아십니까?’ 하고 찾아오신 분도 있었는데, 그 때는 생판 처음 듣는 낯선 단체라 정중히 거절했었습니다.

 그런데 서의자 성도님께는 『충격대예언』, 『개벽 다이제스트』, 테이프 등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가게에 오셔서 여러 가지 말씀들을 해주셨습니다. 가게 일 때문에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잠깐씩 나누는 도담을 통해서 저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증산도라는 생소한 단체에 대해 가슴 한편에서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도장에서 성도님들이 찾아와서 인사도 나누고 하다보니 좀더 마음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증산도라는 그 자체에서 저는 너무나 신선함을 느꼈기에 모든 것이 새로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심고문과 태을주 주문을 외우고, 『도전』을 끝까지 읽고 나니 확신이 섰습니다. 그래서 저는 입도를 하기로 결심하고 새벽수행을 시작했습니다.

 

계속되는 복마발동

 수행을 시작한 지 3일째 되던 날, 서의자 성도님께서 얼음판에 미끄러지셔서 약간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그 날은 괜찮았는데 그 다음 날부터 도장에 못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틀동안 교육을 쉬었다가 3일 후 새벽 수행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5일 정도 도장에 다니다가 또다시 도장에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왜냐면, 그 때 제가 다니던 증산도 도장의 건물주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도장을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 때가 97년이었습니다.

 도장 살림이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도장을 다시 마련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그 곳이 낯설어서 이상했지만 그 곳에서 다시 새벽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21일간의 새벽 수행을 끝내고, 3월 16일 일요일에 대전 본부도장에서 거행되는 입도식에 참석하기 했습니다. 대전에 가기 위해서 저는 일주일 동안이나 남편을 설득해서 겨우 허락을 받았습니다.

 애들은 남편이 가게에서 데리고 있기로 하고 저는 16일 새벽에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입도식 전날, 저는 너무나 설레었습니다. 증산도를 신앙하려면 반드시 먼저 복마가 발동한다는 얘기를 여러 성도님들 통해 들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고 염려하고 있었는데 무사히 토요일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자고 나면 대전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 들떠 있었습니다. 내 사전에 척신발동이란 없다고 자만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토요일 저녁, 해남 거불도에 계시는 시아버님께서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아주버니께서 아버님을 모시고 우리 집으로 올라오셨습니다. 뜻밖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버님께서 의식이 있으셨기에 저는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대전에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다녀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쓰러지신 아버님을 두고 차마 대전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아버님은 밤새 상태가 더욱 악화되셨습니다.

 저는 ‘아, 이거구나! 상제님께서 “나를 따르는 자에게는 모든 마(魔)가 먼저 발동하나니 능히 시련을 받고 나야 복이 이르느니라.(道典 4:18:2)” 하신 말씀이 사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내 감격스런 입도식을 올리고

 그 후 아버님은 1년 동안 저희 집에서 요양을 하시다가 다시 시골로 내려 가셨습니다. 그 무렵 도장이 새롭게 바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성도님들께서는 저에게 삼변성도를 말씀하시며, 이번에는 꼭 입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을 심어주셨습니다.

 목포용당 도장이 새로 생기고 저는 1년이라는 공백을 깨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도장에 처음 나간 날, 새로 오신 문일권 포감님의 지도로 저는 일주일간 새벽 수행과 정성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6월 4일 화창한 일요일 아침, 마침내 저는 입도식을 올렸습니다.

 태을주를 전수 받던 날, 너무나 감격했던 저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복받친 눈물 때문에 입도소감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두 번의 실패가 있은 후에 겨우 올려진 입도식이었기에 그 감흥이 남달랐습니다. 그리고 도장 가족들도 목포용당 도장이 생긴 이래로 제가 첫 입도자였기에 정말 축하해 주었습니다.

 지금은 목포용당 도장에 입도자가 날로 늘어나 도장은 나날이 활기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상제님의 일꾼으로 서서히 발을 내디디며

 상제님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가족 신앙을 해야 하는데, 아직도 그것이 제게는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추석날, 친정에 갔을 때, 남편이 가족들 앞에서 증산도 때문에 못 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언니, 동생, 부모님께서는 저 보고 ‘조심해라, 너무 빠지지 마라, 그냥 집에서 적당히 해라.’ 등등의 말씀들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씩 전화를 하거나 만나면 아직도 잘 다니고 있느냐며 묻곤 합니다. 한번은 남동생이 ‘나도 도를 닦아야 하는데…’ 하길래 얼른 『개벽』 책을 주기도 했습니다. 상황을 봐서 본격적으로 가족들에게도 증산도에 대해 알려나갈 것입니다.

 무엇보다 남편을 상제님께로 인도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예전의 완강했던 태도는 많이 누그러졌지만 아무래도 제일 어려운 상대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남편을 비롯해서 저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증산도 일꾼이 될 수 있도록 해주십사 하고 심고를 드립니다.

 연초에 저는 올해의 계획을 이렇게 세웠습니다.

 첫째, 남편과 아이들 입도시키기.

 둘째, 조상님 천도식 해드리기.

 셋째, 장사하면서 증산도 알려나가기.

 그리고 지난 3월에는 우리 아이들 셋을 입도시켰습니다. 지금은 수행도 열심히 시키고, 도장 치성에도 데리고 옵니다. 아이들이 아직은 미숙하지만 미래의 증산도 일꾼이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장사하면서 조금씩 증산도를 알려나가다 보면 의로운 사람, 천심(天心) 가진 사람을 반드시 만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힘들 때마다 『도전』에 있는 상제님의 말씀을 자주 떠올립니다.

"이제 천지신명들이 운수자리를 찾으려고 각 사람의 가정에 들어가서 기국(器局)을 시험하나니 만일 가정에서 솔성이 용착하여 화기(和氣)를 잃으면 신명들이 웃고 손가락질하며 ‘기국이 하잘것없으니 어찌 큰일을 맡기리요.’ 하며 서로 이끌고 떠나가나니 일에 뜻하는 자 어찌 한시라도 소홀하리요." 하시니라. (道典 8:35:1∼6)

 아침상에서 아이들의 식고 소리에 웃음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소리내서 식고 드리기를 좋아하는데, 이런 아이들을 보며 ‘허허’ 웃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저는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저는 상제님의 말씀 테이프를 들으며 밝은 하루를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