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환단고기>광개토대왕이 일본 열도를 정벌한 사실은 “환단고기”에만 기록되어 있다. 본문
<환단고기>광개토대왕이 일본 열도를 정벌한 사실은 “환단고기”에만 기록되어 있다.
<환단고기>광개토대왕이 일본 열도를 정벌한 사실은 “환단고기”에만 기록되어 있다.
“한번은 바다를 건너 이르는 곳마다 왜인을 쳐서 깨뜨렸는데, 왜인은 백제를 돕고 있었다. 백제가 먼저 왜와 은밀히 내통하여 그들로 하여금 신라의 국경을 연달아 침범하게 하니, 열제(광개토대왕)가 몸소 수군을 이끌고 웅진, 임천, 와산, 괴구, 복사매, 우술산, 진을례, 노사지 등의 성을 공격하여 취하였다. 속리산을 지나다가 이른 아침에 천제를 지내고 개선하였다. 이때 백제와 신라, 가락 제국이 모두 끊임없이 조공하고, 거란과 평량이 전부 평정되어 귀복하였으며, 임나와 이, 왜의 무리가 신하로 칭하지 않음이 없었다.
” -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영락 10(400)년에 세 가라가 모두 우리(고구려)에게 귀복하니, 이로부터 바다와 뭍의 모든 왜를 전부 임나에서 통제하여, 열 나라로 나누어 다스리며 연정이라 이름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에서 직접 관할하여 열제가 내리는 명이 아니면 제멋대로 하지 못하였다.” -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첫 번째 기사에서 왜인을 격파하였다는 기록은 영락 10(400)년의 일을 가리킨 것이고, 백제의 웅진 등을 깨뜨렸다는 기록은 6(396)년의 일을 가리킨 것이다. 임나는 두 곳으로 광개토대왕비의 임나가라(금관가야)이고, “환단고기”의 대마도이다. 이는 왜와 접한 일본 열도의 국가이다. 왜도 두 곳으로 광개토대왕비의 한반도 왜이고, “환단고기”의 열도 왜이다. 위 기사에 나오는 임나, 이, 왜는 모두 열도의 세력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일본 열도 전체가 광개토대왕의 통제 아래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광개토대왕 당시 일본 열도의 왜는 100여 개가 넘는 소국이 난립하였다.
두 번째 기사에서 가라는 임나(대마도)의 큰 고을이다. 대마도는 세 가라로 나뉘어 좌호가라는 신라에, 인위가라는 고구려에, 계지가라는 백제에 속해 있었다. 이후 영락 10년에 세 가라가 모두 고구려에 속하고, 이때부터 대마도, 규슈를 비롯하여 일본 열도 전체가 광개토대왕의 통제 아래 들어갔다. 광개토대왕비의 영락 10년 기사에서는 한반도 왜의 군대를 격퇴하고 임나가라(금관가야)를 복속한 사실만이 기재되어 있고, 일본 열도를 정벌한 사건은 생략되었다. 영락 10년부터 대마도가 일본 열도를 통치하여 열 나라로 나누어 다스리면서 ‘임나 연정’이라 일컬었다. 임나 연정의 열 나라는 가라, 안라, 사이기, 다라, 졸마, 고차, 자타, 산반하, 걸찬, 염례 등으로, 모두 대마도와 이키 섬, 규슈에 분포해 있었다.
결론적으로 광개토왕이 백제의 하수인이던 일본을 고구려의 식민지로 만들어 일본 열도를 지배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임나일본부설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 비록 광개토왕대비에서 왜가 백제와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고 하지만, 이때의 왜는 일본이 아니라 한반도 남부 세력을 가리키는 것이다. “삼국사기”가 광개토왕비에서 생략된 후연 정벌 기사를 보완해 주는 것처럼, “환단고기”는 광개토왕대비에서 생략된 평량 복속 기사와 일본 정벌 기사를 보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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