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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과 명상/영혼의 세계

<영혼>귀신이 살고 있다

세덕 2013. 7. 3. 12:59

<영혼>귀신이 살고 있다
  <영혼>귀신이 살고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나요

어린 시절부터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차원의 세계나 과학적으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때론 장난처럼 아이들과 당시 유행하는 귀신 이야기나 태어난 해를 물어 닭띠 아이들만 데려간다는 할머니 이야기 등을 하며 놀았고, 전래동화에 많이 등장했던 도깨비들을 좋아했다.

시공간을 초월한 외계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귀가 솔깃했고, 의문의 실종사건이 발생한다는 마의 삼각지대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해 동안 나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내심 무서움을 느끼면서도, 나중에 크면 마의 삼각지대에 가서 무언가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될 거라는 기대를 가졌다. 현재의 지구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좋았다.

귀신이나 도깨비, 혼령, 정령과 요정, 마녀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나 관심은 당시 내가 믿고 있던 종교관(개신교)과는 상반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머리가 크면서 나는 다양한 신들의 존재와 더욱 다양한 생명체의 영적 가능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유일신앙을 버리게 됐다. 대신 여러 문화권의 신화에 대해선 더 많이 알아가리라 마음을 열어뒀다.

 

내가 들은 귀신 이야기

십대 중반의 나는 이미 주위 사람들로부터 들은 사차원 세계 혹은 귀신에 얽힌 체험담들을 차곡차곡 머리에 주워담고 있었다. 특히 귀신 이야기는 재미가 있었다. 친구들은 모여서 발대신 머리통을 바닥에 대고 튀어 다니는 ‘통통통 귀신’이나 ‘내가 네 엄마처럼 보이니?’ 등의 유행 공포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내가 직접 들은 귀신 이야기를 풀어놓아서 친구들에게 색다른 공포감을 선사했다.

그 이야기들 중에는 어머니와 증조할머니가 겪은 굿판에 얽힌 이야기와 귀신 들릴 뻔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빗자루 도깨비와 밤새도록 다투다가 실어증에 걸렸다는 동네 할아버지 이야기, 그리고 실제로 다섯이나 되는 귀신이 들어와서 하루 아침에 딴 사람이 되었다는 먼 친척 이야기도 있었다.

당시에 언니가 다니던 학교는 100년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여자고등학교였는데, 그 학교에선 한 학기가 머다 하고 귀신이 나타나거나 학생들이 영적인 체험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여고에선 원래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많기 때문에 다 믿을 수는 없지만, 학교 측이 대낮에 방송을 해서 전교생을 집에 돌려보낼 정도면 꽤 신뢰할 만했다.

어느덧 나는 귀신 이야기를 잘 하는, 그러니까 귀신 이야기를 실감나도록 무섭게 하는 아이로 통하게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귀신의 존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친구들에게 귀신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공포가 커져서 잠 못 이루거나 제발 귀신이 내 앞에 직접 나타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마음 속으로 빌었다.

왜냐하면 주위에서 들은 귀신 이야기들은 대부분 귀신이 사람을 깜짝 놀라게 만들거나 고의로 괴롭히거나, 심지어 사람에게 들러붙어 영혼을 지배하는 내용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귀신의 지배를 당하는 거나 다른 유명한 신의 지배를 당하는 거나 큰 테두리에서 보면 그게 그거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내가 먼저 손을 뻗지 않는데도 나의 영혼을 탐하는 귀신의 존재를 떠올리는 건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본 귀신 이야기

17살이 된 어느 날, 그러니까 토요일 오후 2시경이었다. 학교에서 파하고 집에 들어와 방문을 열었을 때, 창문 밖으로 주황색 오후의 빛이 새어 들어 침대를 비추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제일 먼저 가방을 책상 위에 확 던져놓고, 교복도 벗지 않은 채 딱딱한 나무침대에 제멋대로 드러누웠다. 잠시 한숨을 쉬고 난 다음에 천천히 일어나 교복을 벗고 화장실에 가서 세면을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 순서였다.

그 날도 몸을 눕히면서 ‘휘유~’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라디오를 켤까 말까 망설였다. 잠시 고개를 돌린 사이 내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키가 크고 마른 여자였다. 귀신이라고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누구라도 보면 귀신인 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비중이랄까, 무게감 같은 게 없었다. 하얀 옷을 입고 있었고 다리 부위는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공중에 떠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나의 머리 속은 복잡하게 회전했다. 왜 여기에?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나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이사올 때 내 방에 붙어있던 부적과 관련이 있을까 등등. 나는 그녀를 보고 놀랐지만, 사람들이 귀신을 보고 놀랐다고 말할 때의 그 놀라움과는 차이가 있었다. 무섭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그녀의 표정을 보며 뭔가 애처롭고 안타까운 느낌을 받았다. 그녀가 훌쩍 내 몸 가까이로 뜀뛰기를 하듯 다가왔을 때에도, 나는 움찔 하면서도 왠지 나를 해칠 것 같지 않다는 안도감 같은 걸 느꼈다. 귀신의 몸체가 누워있는 내 몸에 잠시 의지한 상황이었지만 전혀 무겁지 않았고, 정말 구름 같은 무게가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사라졌다.

눈깜짝할 사이에 어디로 간 것인지,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침대 밑을 찾아보고 문도 열어보았지만 간 곳 없었다. 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지, 다시 나를 찾아올 것인지 알지 못한 채, 한 마디 말도 나누지 못한 채, 그렇게 잠깐의 인연으로 만나고 헤어진 것이다.

그 날 그 시간 이후로, 더 이상 귀신은 내게 있어서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다.


글쓴이: 이소 -출처: 일다(여성주의 저널) 2007.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