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환단고기>환국에서 배달, 단군조선까지 6,962년의 우리 역사 국통맥1 본문
<환단고기>환국에서 배달, 단군조선까지 6,962년의 우리 역사 국통맥
<환단고기>환국에서 배달, 단군조선까지 6,962년의 우리 역사 국통맥
환국-배달-단군조선의 국통계승과정
9천년 한민족사의 위대한 증언
안경전 종도사님의『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 환국에서 배달, 단군조선까지 6,962년의 우리 역사 국통맥
“우리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보다 중대하게, 시급하게 달려들어야 하는 역사 쪽 주제는 사실 온통 왜곡되고 잃어버린 한민족의 본래 역사부터 되찾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단군조선 건국 연대인 기원전 2333년부터 지금까지 따져서 흔히 우리 역사가 반만년 역사다, 그렇게들 말하는데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 환국은 역대 일곱 분의 환인들이 기원전 7197년부터 기원전 3897년까지 3,301년간 다스렸고, 배달국은 역대 열여덟 분의 환웅들이 기원전 3897년부터 기원전 2333년까지 1,565년간 다스렸습니다.”
“환국에서 시작해 단국檀國(배달)과 단군조선을 거쳐 대한민국까지 9천년 한민족사라고 해야 맞습니다.”
안경전 종도사님은 『환단고기』의 기록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 나아가 인류 역사가 중앙아시아 대륙의 환국에서 시작됐으며 그것이 배달국으로, 그리고 다시 단군조선으로 계승되었음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한국에서 초―중―고 교육과정을 거친 대다수 국민에게, 종도사님이 힘주어 말하는 환국과 배달국이란 이름도 아주 낯설 터. 우리 국사교과서는 그저 단군조선(교과서에서는 고조선)을‘ 찔끔’ 소개하는 것으로 한민족사의 시작을 설명한다. 환국, 배달국에 대해서는 그 역사는커녕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는다.
환단 시대의 사료
◎ 방금 환국과 단국檀國이라고 하셨는데, 단국이란 명칭이 아주 낯섭니다.
▶단국이 곧 배달국입니다. 배달이란 말은 밝은 땅, 광명한 땅이란 뜻이거든요. 앞서 ‘환단’의 뜻을 말하면서 환은 하늘의 광명, 단은 땅의 광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배달이다 하면 곧 단과 그 뜻이 같고, 배달국은 단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환단고기』 외에 기존 우리 사서들 가운데 환국 그리고 ‘단국’이라 표현된 사례가 있습니까.
▶먼저 고려 때 일연 스님(1206~1289)이 지은 『삼국유사』를 들 수 있습니다.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가 중국 사마천의 『사기』를 모방한 기전체紀傳體형식의 정사正史라면 『삼국유사』는 야사野史에 가깝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야사에 가깝다고 해서 이 책의 저자가 자기 입맛에 따라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거나 있는 사실을 왜곡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민간에 전해오던 여러 사서나 비문 등의 기록을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또 민간의 설화와 전설도 많이 채록했기 때문에 사료史料 가치는 『삼국사기』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삼국유사』는 아홉 편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제1편은 「왕력편王曆篇」으로 삼국의 연대표입니다. 제2편은 「기이편紀異篇」으로 상고시대 여러 나라, 그리고 삼국과 가야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고, 3편 「흥법편興法篇」에서 9편 「효선편孝善篇」까지는 불교 역사에 관한 기록입니다.
왕력편은 연대표이므로 실제 본문은 기이편부터 시작되는데 그 첫 부분이 바로 단군조선에 관한 기록입니다. 바로 여기에 『고기古記』라는 책이 등장합니다. 일연 스님은 환국과 단국을 거쳐 단군조선까지,『 고기』에 실렸던 기록이라며 그 내용을 옮겨 적었습니다.
그 부분을 번역하면 “『고기』에 이르기를,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 서자부 환웅이 천하에 자주 뜻이 있어 인간 세상을 탐내어 구했다. 아버지(환인)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 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였다.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보내고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명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밑에 내려왔다.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였다. 이 분이 환웅천왕이다.”라는 내용입니다.
우리 사서들 가운데 직접 단국이란 표현으로 배달을 기록한 예가 아직은 발견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고려시대 사서인 이승휴의 『제왕운기帝王韻紀』에 환웅을‘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 했습니다. 또 신라의 고승 안함로가 지은 『삼성기』에도 환웅이 세운 나라 이름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환웅이 신시에 도읍을 정하여 나라 이름을 배달倍達이라 하였다”는 대목입니다. 배달은 곧 단檀, 그러니까 ‘광명의 땅’을 뜻하는 ‘달’을 한자로 옮긴 것입니다. 이런 여러 측면에서 볼 때 환웅이 세운 나라, 배달을 단국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 고기』라는 책 이름도 저는 처음 듣습니다.
▶『고기』라는 책이 언제 지어지고 누가 쓴 책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책 이름을 언급하거나 그 내용을 인용한 사례들로 미루어 고려말까지 세간에는 널리 알려졌던 책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를 직접 언급한 일연 스님 뿐 아니라 김부식도 이 책을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가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는 이를 전혀 인용하지 않았지만….
공민왕 때 재상을 지낸 행촌 이암도 『단군세기』 서두를 『고기』 가운데 일부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환단고기』 가운데 원동중의 『삼성기』에도 『고기』의 기록이 인용되어 있는데“ 파내류산 아래 환인씨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의 동쪽 땅을 또한 파내류국이라 한다. 그 땅의 넓이는 남북으로 5만리요, 동서로 2만여리이니 통틀어 환국이라 했다.”는 대목이 그것입니다.
이처럼 간접적인 정황들을 통해 『고기』에는 우리 시원역사에 대한 소중한 내용들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그 책이 지금까지 전해오지 않는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계연수 선생이 1911년 우리 사서들을 묶어 내면서『 환단고기』라 이름붙인 것도 그『 고기』라는 책을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 고기』가 우리 시원역사의 내용을 담고 있고 또 김부식이 그 책을 알고 있었다면, 그가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어째서 그 책의 내용을 인용하거나 혹은 참고하지 않았을까요?
▶김부식이 삼국사 편찬을 마치고 임금에게 그것을 진상하면서 「진삼국사표進三國史表」라는 글을 붙여 올렸습니다. 이 글은 그 문장이 훌륭하다 해서 나중에 15세기, 조선 성종 때 간행된 문선집文選集인 『동문선東文選』에도 실렸습니다(제44권).
여기서 김부식은 『삼국사기』 편찬의 이유들을 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로 『고기』의 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고기』는 문자가 거칠고 졸렬하며 사적事跡의 빠진 부분이 많아 임금의 착함과 악함, 신하의 충직함과 간사함, 국가의 편안함과 위태함, 인민의 다스려짐과 어지러워짐을 모두 드러내어 후대의 권계勸戒로 삼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나는 『고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김부식의 주관적인 평가입니다. 특히‘ 문자가 거칠고 졸렬하다’(文字蕪拙)는 표현은 김부식이 이 책에 대해 반감까지 갖고 있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우리 상고사를 기록한 『고기』의 내용이 유학자의 사대주의 사관으로 볼 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고기』의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삼국사기』 편찬에 참고하지 않은 것이죠.
◎ 지금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를 놓고 좌우이념논쟁이 뜨거운데, 오래 전『 고기』라는 책에 대한 지식인들의 평가도 적잖이 달랐나 봅니다.
▶그렇지요. 사대주의 사관을 갖고 있었던 김부식은 『고기』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반면 우리 건국과 관련한 설화나 전설까지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수집하는 데 정성을 들였던 일연 스님은 김부식과 생각이 전연 달랐습니다.『 삼국유사』의「 기이편」 서문에 그런 그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제왕이 일어날 때는 부명符命과 도록圖○을 받게되므로 반드시 남보다 다른 점이 있었다. 그래야만 능히 큰 변화를 타서 제왕의 지위를 얻고 큰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황하에서 하도河圖가, 낙수에서 낙서洛書가 나오고 성인이 일어났던 것이다. …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비스러운 데서 탄생했다는 것이 무엇이 괴이하랴. 이것이 (『삼국유사』의) 책머리에 기이편이 실린 까닭이며…”
여기서 하도는 태호복희씨가 황하에서 얻은 그림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복희가 팔괘八卦를 만들었습니다. 낙서는 하나라를 세운 우禹 임금이 낙수에서 얻은 글로, 역시 이를 바탕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규범인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제왕이 일어나 나라를 세울 때 하늘이 내리는 신비한 일들은 당연하다, 그것이 일연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비한 일들에 대한 기록도 존중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고기』의 기록에 대해 김부식과 일연은 상반된 태도를 가졌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시원역사의 기록들이 한 사서에는 실린 반면 다른 사서에서는 배제됐던 것입니다. 사실史實을 취사선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과거를 재구성하는 역사가의 사관史觀이 얼마나 중요한가, 절감하게 됩니다.
『고기』의 내용은 일연 스님보다 더 자주적自主的 역사관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행촌 이암과 원동중에게는 더더욱 귀한 기록이었을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행촌 이암은 고려 때 재상을 역임했고 단군조선의 역사를 담은 『단군세기』를 편찬했습니다. 원동중은 한민족의 상고사, 환단桓檀 시대를 다룬 『삼성기』를 쓴 인물입니다. 이들의 글에 『고기』가 인용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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