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환단고기>환국-배달-단군조선의 국통계승과정3 본문
<환단고기>환국-배달-단군조선의 국통계승과정
<환단고기>환국-배달-단군조선의 국통계승과정
배달국으로 국통계승
◎ 그러면 배달국倍達國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앞서 이 역시환국에서 나왔다, 하셨는데 어떤 과정을 통해 국통國統이 계승됐습니까.
▶무엇보다 배달을 세운 환웅이 환국의 마지막 환인으로부터 환국의 정통 계승자로 지명됐습니다. 3,300여년간 지속된 한 시대(환국)가 저물고 또 하나의 거대한 새 시대(배달)가 시작된 것입니다.
6천년 전 기후변화 및 인구증가와 물자부족으로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지자 환국 가운데 서자부庶子部부족의 환웅이 새로운 터전을 개척해야겠다, 갈망했습니다. 이에 삼위산과 백두산을 두루 살펴본 환국의 마지막 통치자 지위리智爲利 환인께서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 곳’이라면서 백두산을 새 삶의 터전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는 환웅을 동방개척의 선봉장으로 세우셨습니다. 백두산을 향해 떠나는 그에게 환인은 국통계승의 상징으로 천부天符와 인印을 내려주시고 문명개척단 3천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삼성기 하』,『 태백일사』
부족을 이끌어 백두산에 도착한 환웅은 도읍을 신시神市에 정하고 백두산 신단수에서 삼신상제三神上帝님께 천제를 올려 나라세움을 고했습니다. 이렇게 거발환居發桓 환웅이 세운 동북아 한민족의 나라, 배달시대가 시작됐습니다.
환국의 마지막 환인께서 환웅을 환국의 정통 계승자로 지목하였는데, 그 증표가 바로 천부와 인입니다. 천부는 태고의 문서로, 환인은 이것을 환웅에게 ‘세상을 다스리는 권한의 표증’으로 내려주셨습니다. 인은 ‘환국의 종통宗統을 전한다’는 것을 인증하는 도장으로 왕의 옥새와 같은 것입니다.
환국의 마지막 환인 천제로부터 천부와 인을 내려받은 거발환 환웅은 이 증표와 함께 장차 국가를 다스려 나갈 ‘통치이념’도 전수받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 곧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이념이었습니다.
◎ 앞서 환국에 대해 질문했던 것처럼,『 환단고기』 이외에 배달국의 존재를 보여주고 알게 하는 그 밖의 기록이나 사료, 유물 같은 것이 있을까요?
▶많지요. 오늘은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 두 가지만 이야기한다면 하나는 치우천왕의 행적,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천부경」입니다.
먼저, 치우에 대해서는 중국의 25사史 가운데 첫 번째 사서인 사마천의 『사기』 첫 부분 「오제본기五帝本紀」에 비교적 자세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사마천은 「오제본기」에서 헌원과 치우 사이에 벌어진 탁록대전을“ 치우가 난을 일으키며 황제의 명을 듣지 않자 이에 황제는 제후들로 군대를 징집하여 탁록의 들에서 싸워 드디어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고 서술했습니다. 이 기록의 핵심은 ‘금살치우禽殺蚩尤’(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는 네 글자입니다. 헌원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면서 치우에 대해 왜곡된 기록을 한 것입니다.
그후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진서晉書』 『송서宋書』 『양서梁書』 『진서陳書』 『북제서北齊書』 『주서周書』 『수서隋書』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송서宋史』 『명사明史』 『청사고淸史稿』 등의 정사와『 장자莊子』 『한비자韓非子』 『여씨춘추呂氏春秋』 『관자管子』 『포박자抱朴子』『일주서逸周書』 『태평어람太平御覽』 등 제자백가서에도 치우에 대한 기록이 보입니다.
우리 사서로는『 환단고기』 외에『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규원사화揆園史話』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동사강목東史綱目』 등이 치우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 그러면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이 모두 배달시대 인물이었다는 말씀인가요?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은 약 4700년 전 동시대에 공존한 인물입니다. 배달국의 임금 치우천왕은 재위 초기 인접한 신농국이 제8대 유망楡罔에 이르러 쇠퇴하자 서방으로 출정해 지금의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을 배달의 영내로 흡수했습니다. 그런데 이 틈을 타서 서토 지역의 일개 제후였던 헌원이 치우천왕을 밀어내고 동북아의 천자가 되겠다고 일어났습니다. 이에 급히 말머리를 돌린 치우천왕은, 탁록 벌판에서 헌원의 군대와 맞서 10년 동안 73회에 걸친 접전을 치러 마침내 헌원을 굴복시켰습니다.
◎ 치우는 금속무기를 쓴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렇다면 배달족이 동아시아에서 금속무기를 처음 썼다, 그렇게 볼 수 있나요?
▶『환단고기』 가운데 「삼성기」 하권에는“ 다시 몇 세를 내려와 14세 자오지 환웅(치우천왕)이 계셨는데, 이 분은 신이한 용맹이 매우 뛰어났다. 구리와 철로 투구를 만들어 쓰고(=동두철액銅頭鐵額) 능히 안개를 일으키며 구치九治를 제작해 광석을 캐내고 철을 주조해 무기를 만드시니 천하가 크게 두려워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동두철액은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가졌다’는 것이지만 구리와 철로 투구를 만든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이를 통해 치우의 시대가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이어지는, 금속무기를 사용하던 시대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마천 『사기』의 해설서인 『사기정의』에도 보면 ‘치우 군대가 금속투구를 머리에 쓰고 큰 쇠뇌(=太弩)와 같은 병장기를 갖추고 출전하여 그 위엄을 천하에 떨쳤다’고 했습니다. 또 『관자』에서도 “갈로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물에는 철이 섞여 있다. 치우가 이를 받아 제련하여 칼, 갑옷, 창 등을 만들었다.”(葛盧之山發而出水, 金從之, 送尤受而制之以爲劍鎧矛戟)고 상세히 서술했습니다. 중국 사서들이 이처럼 치우의 무기를 세밀히 묘사한 것을 뒤집어 보면, 헌원의 군대는 그만한 무기를 가지지 못했던 것을 은연 중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치우천황은 동북아에서 가장 먼저 청동무기를 썼으며 금속문명의 선진 주자였습니다.
◎ 배달국 시대를 드러내주는「 천부경」이란 무엇입니까.
▶한민족과 인류의 시원 모체종교를 신교神敎라 합니다. 신교는 삼신상제님과 그 가르침을 받드는 우리고유 종교이자 생활문화입니다. 이 신교의 3대 경전이 있는데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와 「참전계경參佺戒經」입니다.
「천부경」은 한민족의 우주론이라 할 수 있고,「 삼일신고」는 신교의 세계관과 신관, 상제관, 인간관, 수행관의 정수를 담은 글입니다.「 참전계경」은 사람이 하늘과 하나 되어 완전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 연마해야 할 생활실천의 계율을 기록한 것입니다.『 환단고기』의 『태백일사』에 「천부경」 전문全文과 그 유래가 쓰여 있습니다. 물론 『환단고기』에는 「삼일신고」의 유래와 그 전문 그리고 「참전계경」의 유래도 실려 있습니다. [완역본 환단고기 505, 513, 545쪽 참조]
이 가운데 특히 「천부경」은 인류사 최초의 경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부경」에서‘ 천부’는‘ 하늘의 섭리를 나타낸 부호’라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천부경」은 하늘의 이치와 법칙을 인간 세상에 드러내고 하늘의 꿈을 전하는 경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부경」은 경학經學(경학 연구)의 역사상 네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인류 시원국가인 환국에서 선언되었기 때문에 인류 최초의 경전입니다. 둘째, 하늘의 신권神權을 드러내는 권위의 상징체계로 상제님께서 하늘의 이치와 섭리를 인류에게 선포한 계시록입니다. 셋째, 우주 변화의 신비를 수數로써 선언하고 수로써 깨닫게 하는, 무궁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넷째, 인류 역사상 수많은 우주론들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우주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부경」은 81글자로 된 짧은 글입니다. 하지만 「천부경」은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로 시작해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로 끝나는 그 81글자에 태고시대, 아니 오늘까지도 절대적인 우주론의 핵심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태백일사」에는 “「삼일신고」의 5가지 근본사상도 「천부경」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 궁극적인 정신도 「천부경」의 중일中一 정신의 이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실로 「천부경」은 신의 가르침을 받아 적은 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아가 「태백일사」는 고려 때 목은 이색과 복애 범세동「( 북부여기」의 저자인 복애거사)이「 천부경 주해」를 남겼다고도 전합니다. 이로 미루어 고려시대만해도 「천부경」이 학계에서 지식인들 사이에 소통되거나 연구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오늘날에도 뜻있는 학자들이 「천부경」의 가치를 알고 그 해석과 연구에 진력하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 그처럼 귀중한「 천부경」이 배달국 시대에 생겨났다는 것인가요?
▶사실 『환단고기』에 따르면 「천부경」은 배달국 이전 환국시대부터 구전돼 왔습니다. 그러다 거발한 환웅께서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배달국을 세운 뒤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해서 구전되던 것을 당시 상형문자인 녹도문鹿圖文으로 기록하게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천부경」 원본입니다.
그후 고조선 때 와서 신지(※앞의 배달국 때 신지와는 다른이)가 돌에 전서篆書로 「천부경」을 새겨 태백산에 세웠습니다. 이를 전고비篆古碑라 합니다. 다시 후에 신라의 석학 최치원 선생이 전고비를 보고 이를 한문으로 해석해서 첩帖으로 만들어 세상에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렵게 전해진「 천부경」은 유학을 숭상한 조선에 와서 등한시되거나 부정되어 대중화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최치원의 한문「 천부경」이 나중에 행촌 이암을 거쳐 이맥의 「태백일사」에 기록되고 이것이 『환단고기』에 수록되면서 대중에 전해지게 됩니다. 이 한문「천부경」은 누가 새겼는지는 모르지만 묘향산 석벽石壁에도 새겨졌는데 나중에 계연수 선생이 이를 발견하고는 탁본했다고 합니다.
환국시대 이래 계연수 선생까지 수천년 세월입니다. 그것이 『환단고기』를 거쳐 마침내 오늘까지 전해진 것은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천부경」이 우리에게 알려지고 그 가치가 전해진 것은 『환단고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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