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고조선, 산동성.강소성 차지... 은나라에 음악과 춤 전수 본문
고조선, 산동성.강소성 차지... 은나라에 음악과 춤 전수
- 서언왕을 아십니까,
고조선, 산동성.강소성 차지... 은나라에 음악과 춤 전수
하지만 서언왕은 “세상에 인(仁)과 의(義)로써 정사를 널리 펼쳐 행하니 36개의 나라가 조공을 하였다.”라는 기록에서 서이(徐夷) 즉 서언왕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서언왕의 설화를 보면 우리의 고구려나 신라의 건국설화와 마찬가지로 서언왕도 알에서 태어난 천손민족임을 밝히고 있다. 서언왕이 활약하던 지역은 지금의 산동성 남부와 하남성 일부 그리고 강소성 일부 지역이었다. 주나라 때의 또 다른 기록을 보면 “여왕(厲王)이 무도하여 회이(淮夷, 강소성 지역에 있던 고조선의 제후국)가 침략을 하였다. 왕이 괵중(虢仲)에게 회이(淮夷)를 정벌하도록 명을 내렸지만 이기지 못 하였다. 선왕(宣王)이 다시 소공(召公)에게 명을 내려 정벌하고 회이(淮夷)를 평정하였다. 유왕(幽王)이 음란하여 사이(四夷)가 번갈아 침략을 하였다.”라고 하여 끊임없는 서토와 동이 간의 세력 다툼이 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조선의 해체 과정에 대하여는 “진(秦)나라가 6국을 병합하자 회(淮, 강소성)와 사(泗, 산동성)지역에 있던 이(夷)들이 모두 흩어져 민호(民戶)를 이루었다.”고 하여 기원전 2333년에 건국이 되어 기원전 238년까지 2096년 동안 존속하였던 고조선이 중원에 있던 전국시대 7웅들의 피비린내 나는 전화 속에서 몰락을 하였으며 진나라 시절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며 “진섭(陳涉)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천하가 붕궤(崩潰)되었다. 연(燕)나라 사람 위만(衛滿)이 전쟁을 피해 조선으로 갔다.”고 하여 고조선의 일부가 위만조선으로 이어진 것을 기술하고 있다.
▲ 고조선의 구이분포지역-구이가 단군의 고조선으로 이어진다.
<후한서 동이전>은 고조선의 건국시기부터 몰락하기까지를 서토의 요임금과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춘추전국 시대까지 혹은 반란을 하고 혹은 복속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고조선에 이어 위만조선과 부여, 고구려, 예, 삼한, 왜가 그 뒤를 이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고조선 즉 단군조선이라는 하나의 나라가 존속되는 동안에 서토는 요와 순 그리고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와 춘추전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국가가 명멸을 한 것이다. 이는 고조선이 천하의 주인이 아니고 강력한 국가가 아니었던들 가능한 일이었겠는가?
<후한서 동이전>에 분명하게 고조선은 군자불사국이며 아홉 개의 국가를 거느린 강력한 나라였기 때문에 “그런 까닭에 공자(孔子)가 구이(九夷)에 살고 싶어 한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또한 “동이(東夷)는 대체로 모두 토착(土著)생활을 하며 음주와 가무를 좋아한다. 혹은 변(弁, 고깔 형태의 모자)을 쓰고 비단 옷을 입으며 그릇은 조두(俎豆, 제사용기)를 사용한다. 이른바 중국이 예를 잃으면 사이(四夷)에서 구한다는 것이 그것이다.”라고 하여 고조선의 높은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부여와 고구려의 제천행사 그리고 분쟁을 조절하고 해결하는 현재의 유엔 안보리와 같은 책화(責禍)제도와 장례 때 사용하는 옥갑(玉匣)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후한서 동이전>은 이러한 것들을 잘 설명하고 있다.
고조선 제후 서언왕에게 36개 나라가 조공
고조선을 이어 부여와 고구려가 강성하였다는 것은 전한이 망하고 들어선 왕망(王莽)의 신(新)나라 때의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왕망이 고구려의 군사를 징발하여 흉노를 치려하였는데 고구려가 말을 듣지 않아 고구려를 ‘하구려(下句驪)’라 했다는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중원을 지배한 강력한 나라였다면 군사를 내라 마라 할 것도 없으며 고구려를 ‘하구려’라 할 필요도 없는 것이 국제관계의 질서이다. 고구려가 한나라나 신나라보다 강력하였기 때문에 자격지심에 그런 것이며 고구려를 맹수를 뜻하는 맥(貊)이라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우리가 중국의 변방에 존재하였던 오랑캐 정도로 알고 있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까울 뿐이다. 그 단적인 예가 동방의 사람 즉 조선 사람을 뜻하는 글자인 이(夷)를 우리는 ‘오랑캐 이’라고 훈독하고 있으며 <후한서 동이전>에 나오는 동이는 우리하고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자기 조상을 오랑캐라고 스스로 비하하여 부르는 민족이 세상에 우리 민족 외에 또 있는지 개탄스럽다. 근대 중국이나 일본의 일부 역사학자들이 이(夷)의 개념을 나누어 춘추전국 시대까지의 동이를 선진동이(先秦東夷)라 하고 후대의 동이는 현 중국 바깥에 있는 것으로 양자 간에 역사적 연관성이 별로 없다고 한 것을 일부 우리의 학자들이 이에 편승하여 스스로 동이의 역사를 팽개쳐버림으로써 중원을 호령하였던 단군조선 즉 고조선의 역사를 지워버린 것이다.
중국의 25사는 분명하게 동이 항목에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삼한 등의 역사가 다 들어있다.부여나 고구려가 우리의 역사라는 것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면 그 선대인 고조선의 역사인 동이의 역사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후한서 동이전>에 기록된 내용은 저들도 인정하는 고조선을 비롯한 동이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음에도 이를 애써 부정하려 한다든가 우리와 상관없는 외계인처럼 보는 시각을 지양하고 그 속에 담긴 역사의 진실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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