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이러한 예지적 능력은 특히 역사 속에서 자신이나 주변인물 혹은 국가적인 사건으로 현실화됨으로써 여전히 흥미로운 화제가 되고 있다. 역사적인 사건과 맞물린 선인들의 꿈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국가적 변란을 계시한 예지몽
‘고려사절요’에 보면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한 무장 유금필(?~941)이 지금의 충남 아산시의 옛 이름인 탕정군에서 성을 쌓던 중 꿈에 신이 나타나 “내일 서원(지금의 청주)에서 변란이 있을 것이니 빨리 가보라”는 말에 군사들을 황급히 이동시켜 위기에 빠진 왕건을 구하고 급습해온 후백제 군사를 패퇴시킨 기록이 있다. 왕건에 대한 충성과 국가 안위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계시적 성격의 꿈으로 표출된 경우로 꿈의 다양한 상징기법 중 하나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고려 왕족인 왕씨들을 물에 빠뜨려 죽인 다음 꿈에 고려 태조 왕건이 나타나 분을 품고 말하기를 “내가 삼한을 통일해 이 백성들에게 공이 있거늘 네가 내 자손들은 멸하였으니 곧 오래지 않아 도리어 보복이 있을 것이다. 너는 알아두어라”하는 말을 듣고 놀라 잠에서 깬 적이 있다. 이후 이성계의 장남 방우가 병으로 죽고 1,2차 왕자의 난을 통해 방번, 방석과 방간, 방원이 차례로 죽는 비운을 맞는다.
‘연려실기술’에 나오는 이야기로 단종왕위를 찬탈한 세조의 꿈에 단종 어머니 현덕왕후 혼령이 나타나 “죄 없는 자식을 죽였으니 네 자식도 죽이겠다”고 했는데 꿈에서 깨자마자 당시 세자의 운명소식이 전해졌다는 꿈 이야기와 비슷하다.
한 야사에 따르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 가을 선조는 남쪽에서 짚단을 인 계집아이가 궁으로 달려들자 궁궐이 불타는 꿈을 꾼다. 이에 선조는 꿈 풀이를 청하는데 이 자리에서 해몽가는 ‘계집아이(女人)가 짚단(禾)을 이고 궁궐을 범하는 것은 왜(倭)의 침범을 예시하는 것’이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소위 한자의 파자를 이용한 꿈 풀이법이다.
서애 유성룡도 임진왜란의 발발과 왜적 격퇴를 예지한 꿈을 꾼 적이 있다. 임란발발 5개월 전인 신묘년 겨울 서애는 경복궁 연추문이 불타 잿더미가 되는 꿈을 꾼다. 꿈에서 그 밑을 배회하던 서애에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궁궐은 처음 자리를 정할 때 지나치게 아래로 내려갔으나, 지금 만약 고쳐 짓는다면 마땅히 약간 높은 산 쪽에 가깝게 자리를 정해야 할 것이요”라고 했다.
당시는 놀라서 꿈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나 이듬해 왜란이 생겨 모두들 나라의 회복이 가망 없다고 의심할 때 서애는 꿈 이야기를 하며 “그 때 꿈 속에서 이미 경복궁을 고쳐 지을 일을 의논하였으니 이는 곧 나라가 회복될 징조”라고 했고 결국 왜적은 패했고 임금은 도성으로 돌아오게 됐다. ‘서애집’에 적힌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