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강감찬장군>대거란전,고려를 지켜낸 영웅 강감찬장군,강민첨장군-귀주대첩 본문

역사 이야기/잊혀진 역사

<강감찬장군>대거란전,고려를 지켜낸 영웅 강감찬장군,강민첨장군-귀주대첩

세덕 2017. 8. 8. 11:04

<강감찬장군>대거란전,고려를 지켜낸 영웅 강감찬장군,강민첨장군-귀주대첩

<강감찬장군>대거란전,고려를 지켜낸 영웅 강감찬장군,강민첨장군-귀주대첩



강감찬은 유난히 키가 작고 얼굴에 곰보 자국까지 있었지만 재주가 뛰어나고 용맹스러웠다.


983년에 과거에 급제해 나라의 교육과 외교일을 맡았으며 능력이 뛰어나 높은 벼슬에까지 올랐다.


강감찬이 지금의 평양인 서경 시장으로 갔을 때, 거란의 장군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에 쳐들어왔다. 강감찬은 일흔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군사를 이끌고 거란군에 맞섰다.

정면으로 맞서면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강감찬은 전투가 예상되는 곳의 지형을 관찰하고 거란군이 올 만한 길목을 살폈다.

“적은 흥화진을 건너올 것이야. 그러니 강의 상류를 막아 적이 강을 건널 때 공격하자.”

강감찬은 장수들을 불러 쇠가죽을 엮도록 했다. 그리고 엮은 쇠가죽으로 강물을 막았다. 그리고 곳곳에 군사를 숨겨 두었다.

쇠가죽으로 강을 막았기 때문에 강물은 평소보다 훨씬 적은 양이 흘렀다. 거란군이 흥화진에 이르렀을 때는 강의 수심이 얕아 보였다.

거란군이 안심을 하고 강을 건너는 순간, 강감찬은 둑을 무너뜨렸다. 그러자 거란군은 순식간에 물길에 휩쓸려 떠내려갔고, 많은 거란군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소배압은 살아남은 군사들을 정비해 개경 가까이까지 밀고 내려왔다. 강감찬도 포기하지 않고 전략을 세워 끈질기게 맞섰다.

강감찬은 적군이 달아나는 길목에 숨어 있다가 총공격을 벌였다. 남은 적군들은 앞다투어 달아나기 시작해 귀주에 이르렀다.

“한 놈도 남김없이 쳐라! 적군은 지칠 대로 지쳐 있다!”

강감찬의 명령에 귀주 벌판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결국 소배압은 10만 대군 가운데 2,000여 명만 데리고 달아났다.

이것이 바로 귀주 대첩으로, 고구려 장군 을지문덕의 살수 대첩과 조선 장군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과 더불어 우리 나라의 ‘3대 대첩’으로 불린다.

겉보기에 강감찬은 매우 보잘것 없었다. 의복도 검소했고 겉치장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나라일을 할 때는 앞서서 열심을 다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모으던 여느 관리들과 달리 자신의 토지마저 부하 가족에게 나누어 줄 정도였다.

워낙 청렴 결백하여 많은 백성들이 따랐던 강감찬은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자연과 벗삼아 책을 읽으면서 조용히 살다가 여생을 마쳤다.

[네이버 지식백과] 강감찬


대거란전,고려를 지켜낸 영웅 강감찬장군,강민첨장군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