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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증산 상제님>강증산 실제사진의 진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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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증산 상제님>강증산 실제사진의 진실!!!

세덕 2018. 2. 3. 12:27

<강증산 상제님>강증산 실제사진의 진실!!!

<강증산 상제님>강증산 실제사진의 진실!!!



강증산 실제사진의 진실이라고 인터넷에서 어떤 한 사진이 올라오고 있는데요.

실과 거짓이 난무하는 인터넷에서 이 사진이 진짜 그분의 사진인가 아니면 거짓으로 올린 사진인가?


그것을 한번 알아봅시다.

먼저 강증산 상제님의 말씀이 들어있는 도전3219(3:219) 을 살펴보시면


도전3219

내가 천지일월과 같거늘

5 공신이 평소에 상제님과 함께 사진을 찍어 간직하고 싶어하다가 하루는 기회를 보아 사진 찍으시기를 여쭈니

6 상제님께서 마다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천지일월(天地日月)과 같거늘 무슨 사진이 필요하더냐.” 하시고

7 또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 삼층전 미륵불을 보소.” 하시니라.

8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사진을 많이 찍지 마라. 정기가 모손되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3:219)


라고 하시면서 직접 사진을 찍기를 거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ㅇㅇ 실제사진' 이라는 검색에는 정면사진으로 딱 사진이 찍혀있는데요.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많이 찍지말라하셨지 한장이라도 찍을 수 있지 않냐'


그렇게 생각 하신다면 증산 상제님의 부인되시며 상제님으로부터 종통을 전수받은 태모 고수부님이 상제님의 어진을 그리시던 일화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태모 고수부님의 기록은 증산도 도전에 증언되어 있습니다.


도전11183

상제님의 어진 첫 봉안식

1 무진(戊辰 : 道紀 58, 1928)년 정월 초사흗날 태모님께서 치성을 봉행하신 뒤에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다가

2 서너 시간 후에 깨어나시어 아무 말씀도 없이 손을 들어 당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두르시므로

3 고민환과 박종오 등이 뜻을 알지 못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문득 한 성도가 아뢰기를

4 “상제님의 영정(影幀)을 그리라 하십니까?” 하니 태모님께서 머리를 끄덕이시며 성화같이 재촉하시니라.

5 이에 가전 마을에 사는 화백(畵伯) 김옥현(金玉鉉)을 불러 어진(御眞)을 그리게 하니 옥현이 화법(畵法)이 졸렬하여 잘 그리지 못하는지라

6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선 그대로 봉안(奉安)하고 이 뒤에 다시 그리는 것이 무방하리라.” 하시므로 그대로 봉안하니라.

(증산도 道典 11:183)

주석) 183:5 김옥현(金玉鉉, 1878~1960), 본관 청도(淸道). 김제군 백구면 부용리 가전 마을에 살았으며, 그가 그렸던 첫번째 어진은 같은 동네에 살던 유일태 성도가 보관하였다고 한다.

 

도전11184

채용신에게 어진을 다시 그리게 하심

1 2월에 태모님께서 주요 간부들을 소집하시어 상제님 영정을 다시 그려 봉안하라.” 명하시거늘

2 간부들이 의논하여 이름난 화백에게 의뢰하고자 조동희(曺東熙)로 하여금 뛰어난 화백을 물색하게 하니

3 당시 조선에서 유명한 화백은 정산(定山) 채용신(蔡龍臣)이라.

4 정산이 사는 곳을 알아보니 정읍군 용북면 육리(龍北面 六里)라 하므로

5 동희가 곧바로 정산을 만나 상제님 어진에 관한 일을 논의한 후 그 길로 동행하여 31일에 조종리 도장에 도착하니라.

6 이에 정산으로 하여금 목욕재계하고 어진을 그리게 하니 정산이 상제님을 친견한 일이 없어 어떻게 그릴 것인지 여쭈거늘

7 태모님께서 상제님 재세 시의 모습을 일일이 가르쳐 주시고 정산에게 당부하시기를 돈은 얼마든지 줄 터이니 영정을 잘 모셔라.” 하시니라.

8 이 날부터 정산이 어진을 그리기 시작하여 거의 다 그려갈 무렵 태모님께서 오시어 그림을 보시더니 담뱃대로 휙 걷어 젖히시고

9 이어 담뱃대로 정산의 등을 내려치시며 이놈아! 증산(甑山)을 그리라 했거늘.” 하고 나가시니

10 정산이 기가 막혀 말을 못하고 있으므로 고민환을 비롯한 간부들이 잘 달래어 어진을 다시 그리게 하니라.

 

(증산도 道典 11:184)

 

주석) 184:3 채용신(蔡龍臣, 1850~1941), 초명은 동근(東根), 호는 정산.석지(石芝). 조선말기의 화가. 화법의 특징은 극세필을 사용하고 얼굴에 백광(白光)을 주는 점이다. 고종황제의 영정을 잘 그려 정산 군수에 제수되었다 하여 채정산(蔡定山)이라 불렸다. 고종의 영정외에 흥선대원군, 최익현, 최치원, 김영상 등의 초상화를 그렸다.


도전11185

세 번을 그려서 어진을 봉안함

1 수일이 지나 어진을 거의 다 그려 갈 무렵, 태모님께서 또 들어오시더니 대번에 정산의 등을 담뱃대로 내려치며 호통하시기를

2 “증산을 그리라 했지, 누가 미륵을 그리라 했더냐!” 하시고 담뱃대로 휙 걷어 젖혀 휘두르시니 이번에도 그림이 못쓰게 되니라.

3 정산이 심한 모욕감에 화를 내며 그림 그리는 도구 일체를 수습하여 돌아가려 하니

4 고민환이 만류하여 말하기를 저분은 보통 사람이 아닌 신인(神人)이시라. 큰 기운을 내려 잘 그리도록 하심이니 참으면 복이 있을 것이오.” 하며 겨우 진정시키니라.

5 정산이 다시 그리기 시작하여 24일까지 세 번째로 그리기를 마치매 민환이 여쭈기를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하니

6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만하면 너희 아버지와 비슷하다.” 하시니라.

7 정산이 상제님의 용안(龍顔)은 흡사하게 얻었으나 의관범절(衣冠凡節)을 어떤 식으로 갖추어 그려야 할지 난감한지라

8 태모님께 그 형식을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상제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옥황상제(玉皇上帝)니라.’ 하셨으니 황제식(皇帝式)이 옳다.” 하시거늘

9 정성껏 그려서 올리매 326일 태모님 성탄절에 어진을 봉안하니라.

(증산도 道典 11:185)

주석) 185:8 나는 옥황상제님라. 대순진리회에서는 상제님을 일개신도였던 조철제를 옥황상제라고 하며 천권(天權)을 조작하여 증산 상제님의 신권과 종통을 날조해 왔다. 삼계대권의 주재자이신 상제님을 48()의 첫 번째 신장인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으로 전락시킨 이 사건은 하늘 땅이 열린 이래 동서 인류 문화사에 있어 상제님에 대한 가장 큰 모욕이며, 환부역조요 배사율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진짜 사진이 있었다면 상제님을 직접 뵈었던 부인이신 태모님께서

실제모습을 왜 그림으로 남기려 하셨으며 그것도 실존 모습과 다르다 하여 여러번 고쳤겠습니까?  


그리고 인터넷에 나돌아 다니는 그 사진이 강증산 상제님이다 하고 주장하는 곳은 구글링을 해봤을 때도 '대순진리회'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이미지 검색을 했을 때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 이라고 나옵니다.) 

즉 이 사진은 신뢰성이 떨어지는 사진입니다.

https://blog.naver.com/kaymi308/221187418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