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역사적 사실을 탐구할 때 기본적으로 사료를 바탕으로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역사는 누가 어떤 관점에서 어떤 자료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건도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따라서 대립되는 양측이 있다면, 그 둘을 편견없이 바라볼 때 보다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역사인식이 가능하다. 그리고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있으니, 그것은 현실역사 이면에 숨겨진 신도(神道)세계의 문제다. 선천 역사를 바탕으로, 역사 속 신명들과 더불어 천지공사를 보신 상제님께서는 현실역사 이면에 작용하는 신도의 문제를 크게 강조하셨다. 그 중 ‘구한말 의병운동과 임진란’에 대해 상제님께서 새롭게 밝혀주신 역사이야기 한편을 소개한다.
 |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천지도수가 정리되어 각 신명의 자리가 잡히는 때라. 일본 사람이 효(孝)줄을 띠고 조선에 건너와서 임진란 때에 각 오지(奧地)에 들어가 죽은 저의 선령신들을 찾아가려하므로 이제 조선의 의병들이 그 일을 이루어 주려고 산중 깊숙한 곳까지 그들을 이끌고 들어가느니라.”하시니라. (道典 5:287) 일본 사람이 효(孝)줄을 띠고 왔는데 의병이 길 안내를 해주다니, 상식적으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말씀이다. 여기에는 ‘구한말 의병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 뒤에 숨겨진 또 하나의 진실이 숨어있다. 1592년 조일전쟁의 비극 신도(神道)세계와 인간계를 주재하시는 증산 상제님은, 구한말 이 땅에서 천지공사를 보시면서 ‘의병운동’의 의미를 임진란과 관련하여 신도적 차원에서 새롭게 밝혀주셨다. 1592년 조일전쟁(임진왜란)은 일본 위정자들의 자기과시와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를 정벌하고 나아가 인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조선인들은 일본의 침략으로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이는 KBS드라마 『이순신』에서도 생생히 그려진 바 있다. 조일전쟁은 한·중·일이 모두 참여한 동북아 국제전이었다. 이 전쟁에서 가장 피해를 크게 입은 나라가 바로 조선이다. 그렇다면 침략당사자인 일본은 어떠했을까? 조일전쟁 당시 일본의 국내사정을 살펴보자.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내정을 안정시키고, 자신의 정복욕을 충족하기 위해 조선정벌에 나서는데, 그 결과는 실로 참담했다. 전쟁 1년 전부터 토요토미 정권은 다이묘(영주)들에게 영지 규모에 따라 100석당 6명의 병사를 동원하도록 명령했다. 또한 큐슈의 직할지에 직접 관료를 파견하는 등 조세징수를 강화했는데, 이 두 정책은 내정의 안정과 전쟁준비를 위해 실시되었다. 당시 일본의 주요씨족인 모리(毛利)씨의 문서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할당인원에서 3만명이 모자란다고 탄식하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 전쟁에 동원된 일본군의 절반이 강제 징발된 농민·어민·장인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선원이나 뱃사공, 인부 등으로 조선에 끌려왔다. 전쟁상황이 악화되면서 일본 국내의 토지 또한 황폐해졌고, 저항과 도망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전쟁은 젊은 남성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일부 지역에는 남자씨가 말라 과부촌이 들어설 정도였다. 몇몇 일본 위정자들의 야심과 과욕이 일본 민중의 삶을 끝없는 벼랑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본의 아니게 전쟁에 끌려간 농민들은 낯선 조선 땅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항왜(抗倭)로 불리며 자국정부에 대항한 일본인들이 적지 않았음은 당시 일본의 실상을 짐작케 한다. 대한제국기 의병운동의 신도적(神道的) 의미 상제님께서는 바로 이 일본인 원혼들이 조선 땅 구석구석, 오지에서 절규하고 있음을 지적하셨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수백년간 방치된 이들의 한을 풀어주는 가교역할을 맡은 것이 ‘한국의 의병들’이라며 의병의 신도적 역할을 말씀해주셨다. 구한말 전국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운동은 일본의 압제로부터 한국의 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헌데 상제님께서는 이 ‘의병운동’이 일본군졸들의 수백년 동안 누적된 원한의 응어리를 해소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씀해주셨다. 상제님은 “지금은 천지도수가 정리되어 각 신명의 자리가 잡히는 때”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것이 뿌리로 돌아가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의 가을개벽 시운을 맞아, 이국땅에서 떠돌던 일본인 원혼들이 의병 진압을 위해 들어온 후손들을 따라 비로소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말씀이다. 이를 볼진대, 신도(神道)를 체득할 때만이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으며, 현실역사의 방향 또한 제대로 볼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일본의 3대 원한을 해원시켜 주심'
1 지난 임진란에 일본사람이 조선에 와서 성공치 못하여 세가지 한이 맺혀 삼한당이 있다 하나니
2 먼저 도성에 들지 못하였음이 일한이요
3 인명을 많이 죽였음이 이한이요
4 수종을 가르쳤음이 삼한이라
5 그러므로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여 먼저 도성에 들게됨에 일한이 풀리고
6 인명을 많이 죽이지 않게 됨에 이한이 풀리고
7 3년가뭄으로 백지강산에 백성들이 추수하지 못하게 됨에 삼한이 풀리리라.
도전 5편 28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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