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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잊혀진 역사

사라진 고종의 국새, 한 세기만에 빛보다

세덕 2012. 4. 13. 15:32

사라진 고종의 국새, 한 세기만에 빛보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경향신문-2009.3.18)

     
    “극동 만주지역에서 러·일전쟁이 일어나려 합니다. ~ 우리는 국력이 미치지 못하니 ~ 전쟁을 예방할 수 없습니다. 원컨대 우리는 전적으로 중립을 지킬 것입니다.”

    고종황제가 사용한 국새(왼쪽_ 사진 앞쪽)와 비슷한 시기 제작된 의례용 어보. 국새를 찍은 인영(오른쪽). <김문석기자>

     

    고종황제가 이탈리아 황제에게 “러·일전쟁에서 중립을 지킬 것이니 도와달라”는 친서를 쓰고 날인한 대한제국시기 국새(國璽)가 확인됐다. 이것은 고종황제가 친서에 사용한 현존하는 유일한 국새라는 점으로도 획기적인 발견이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17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해 12월 고종황제가 소지했던 실무형 도장인 국새를 한 재미동포로부터 구입했다”며 실물을 공개했다. 대한제국기 이전의 조선왕조 시대에 국새라는 실무용 도장이 무수히 제작됐지만, 실물은 확인된 바 없었다.

     

    이 청장은 “유물 구입 이후 3개월 동안 전문가 10명이 심도 있는 진위 감정을 펼친 결과 이 유물이 바로 식민지시대 유리원판 사진(국사편찬위 소장자료)으로만 전해지던 사라진 고종황제의 국새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계옥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장은 “이 국새의 제작기록이 보이진 않지만 ‘문화각(文華閣)의 옥새와 책문(冊文) 등을 보수하도록 하다’라는 고종실록(광무 5년 11월16일)의 기록 등으로 미뤄 1901~1903년 무렵에 제작된 것 같다”고 말했다.

    국새는 외함은 분실되고 보통(寶筒)이라 일컫는 내함과 함께 입수됐다. 국새는 전체 높이 4.8㎝에 무게는 794g이다. 손잡이는 거북 모양이며 비단실로 짠 끈이 달렸다. 정사각형 인장면(도장을 찍는 면)에는 ‘황제어새’(皇帝御璽)라는 글자를 양각(陽刻·돋을새김)했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