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 Essay] “유관순은 여자깡패” 이렇게 가르치겠다는 건가
친일파 빼고, 박정희 빼고... 어쩌다 이 지경까지
반역사적 교과부 ‘집필기준’... 교과서 거부운동 벌여야
[출처] 오마이뉴스 2011-11-10 정운현의 역사 에세이
친일ㆍ독재 눈감은 ‘반역의 역사’를 통탄한다
김관복 교육과학기술부 학교지원국장이 8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새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집필기준을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어쩌다가 이 나라가 이 지경이 됐는가
오늘(9일) 아침에 조간신문을 펴드는 순간 숨이 턱 막혔습니다. 내후년부터 사용될 중학교 역사교과서에 이승만ㆍ박정희의 독재정치를 쏙 뺀다고 합니다. 게다가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 정권에 항거해 일어난 광주 5ㆍ18 민주화운동도 삭제한다고 합니다. 20세기 후반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욕으로 기록될 주요 사건들이 역사교과서에서 아예 사라질 전망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배울 역사교과서가 어떤 개인이 제 입맛대로 내깔겨 쓴 자서전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어제(8일) 교육과학기술부는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교육과정 적용을 위한 역사ㆍ국어ㆍ도덕ㆍ경제 등 4개 과목의 중학 교과서 집필기준을 확정, 발표했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문제가 큰 부분은 ‘역사’ 교과서입니다. 앞서 수차례에 걸쳐 역사학계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역사교과서 개악에 대한 문젯점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역사 기술의 형평성은 물론 정확한 사실(fact)과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이는 ‘쇠귀에 경 읽기’가 되고 만 셈입니다. 결국 이는 역사가 권력의 이데올로기 홍보수단으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발표된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은 이승만ㆍ박정희의 ‘독재’ 부분을 ‘자유민주주의가 장기집권 등에 따른 독재화로 시련을 겪기도 하였으나 이를 극복하였으며 (중략) 역대 정부의 공과를 서술할 경우에는 균형 있게 다루도록 유의한다’고 얼버무리고 넘어갔습니다. 아니, 얼버무린 정도가 아니라 궤변을 늘어놓은 것입니다. 이는 ‘5ㆍ16 군사쿠데타’를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둘러댄 것과 하등 다를 바 없으며, 이미 역사적 사실로 판명이 난 사안을 뒤집는 폭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5ㆍ18 민주화운동, 친일파 청산’ 사라진 교과서... 후세에 미칠 영향 걱정
2011.8.27 경북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성역화사업 준공식에
참석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이날 제막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을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흔히 한국을 두고 경제성장과 민주화 성공한 나라라고들 합니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20세기에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나라는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는 특정 정치지도자 한 두 사람의 지도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한국 민중들이 힘을 합쳐 일궈낸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자에 튀니지발(發) '재스민혁명'을 시작으로 아프리카와 중동의 독재자들이 권좌에서 쫓겨나는 현실을 우리는 목도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그같은 독재자를 이미 50년 전에 역사의 무대에서 끌어내린, 민주 역량이 우수한 민족입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5ㆍ18 민주화운동’은 전두환 신군부의 불법적 권력 찬탈과 폭압통치에 맞서 일어난 것입니다. 멀리는 1919년 일제의 무력통치에 맞서 일어난 3ㆍ1만세의거, 가깝게는 1960년 이승만 독재에 항거해 일어난 4ㆍ19혁명의 맥을 이은 것으로, 7년 뒤 ‘6월항쟁’의 밑거름이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같은 역사성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아 금년 5월 5ㆍ18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정식으로 등재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 ‘5ㆍ18 민주화운동’의 역사도 새 역사교과서에서 빠지고 말았습니다.
더욱 문제인 것은 해방 후 친일파 청산 노력도 제외됐다는 사실입니다. 기존 집필기준에는 ‘대한민국은 (해방)이후 농지개혁을 추진하고 친일파 청산에 노력하였음을 서술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새 집필기준에는 이 부분이 고스란히 빠졌습니다. 이는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을 위한 각계의 노력을 외면함은 물론 친일파 문제 자체를 덮어버리려는 술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장차 역사교과서에서 반민특위, 반민법, 친일파 등의 용어 자체가 사라지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필기준 개발에 참여한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친일파 청산 관련내용은) 교과서에서까지 다룰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고 봤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 실지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신문사에서 3ㆍ1절을 맞아 중고생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했더니 ‘8ㆍ15 광복’과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헷갈려 하는 학생들이 절반에 가까웠다고 해서 화제가 됐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학생들은 ‘안중근 의사’를 ‘안과 의사’냐고 묻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 이번 집필기준대로 역사책이 만들어진다면 우리 후세들의 근현대사 무지는 극에 달하게 될 것입니다. 또 어쩌면 뒤틀린 역사관을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백범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유관순 열사를 ‘여자깡패’라고 쓴 어떤 정신병자 같은 작가처럼 말입니다.
교과부 스스로 ‘편향적 교과서’ 만들고 있는 상황
8일 교과부가 밝힌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보도자료 일부(교과부 홈피 화면캡쳐)
신문에 실린 기사를 읽은 후 교육과학기술부 홈페이지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보도자료’ 항목을 들어가 봤더니 어제 언론에 공개한 보도자료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이번에 만든 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은 ‘편향성이 우려되는 4개 교과목’에 대해 ‘관점의 균형성과 내용·표현상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하여’ 마련한 집필지침이라고 밝혔더군요.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보면 ‘편향성을 우려’한 교과부가 스스로 편향적인 교과서를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게다가 ‘관점의 균형성과 내용·표현상의 정확성’조차 지키지 않고 있는 셈입니다. 그 구체적인 사례 하나를 아래 소개하자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 대목입니다.
오늘의 대한민국 정부는 해방 후 미군정 3년 이 끝난 후 유엔의 결의에 따른 총선거를 통해 수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 유엔으로부터 합법정부로 승인받았습니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의 전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집필기준에서는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받은 사실에 유의한다’는 문구를 별도로 추가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역사학계에서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뉴라이트 진영에서 고집한 끝에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바뀌더니 이번에는 없는 사실까지 끼워넣어 역사책을 엉터리로 만들려고 획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골적으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 교과서에
이제 우리는 뭐라고 할 수 있을까(연합뉴스)
충남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은 지난 80년대 중반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사태에 대한 국민적 각성 차원에서 세운 것입니다. 또 수 년 전에는 중국의 소위 ‘동북공정’에 대해 전 국민적으로 분노를 떨친 바 있습니다. 그 때마다 언론은 연일 이를 대서특필하였고, 대중집회는 물론 어떤 이는 혈서를 쓰기조차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것도 후세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과부가 나서서 정권의 이데올로그 역할을 자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사 편찬을 책임지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나 교과부 관계자 가운데 이에 항거하여 사표를 쓰는 자 하나도 없는 지경입니다.
지난 8월 25일 남산 자유총연맹 광장에 건립된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
이제 결론을 내릴까 합니다. 대체 이런 작태를 도모하는 자들은 누구이며, 또 어떤 목적에서일까요? 그 정답은 이미 오래 전에 드러났습니다. ‘뉴라이트’로 상징되는 일단의 수구 정치세력과 이에 동조하는 한국현대사학회 등 친일성향의 관변 역사학자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외치며 친일을 찬양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이승만·박정희 미화에 앞장서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지난 8월 남산에 이승만 동상을 세웠고, 조만간 개관될 ‘박정희기념관’을 학수고대하고 있기도 합니다. 결국 이들의 최종 목표는 다가올 내년 대선에서 보수정권 재창출일 것입니다. <한겨레>가 9일자 사설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 의원일 것”이라고 한 대목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예정대로라면 이번에 교과부가 밝힌 집필기준은 2013년도 역사교과서 집필에 직접 반영될 것이 분명합니다. 교과부와 출판사가 공급자라면 학생들은 소비자인 셈입니다. 흔히 소비자들이 불량상품에 대해 불매운동으로 대항하듯이 전국민 차원에서 역사왜곡 교과서 불매운동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항일투쟁 선열과 민주화 영령들에게 사죄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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