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2005-08-18 13:53]
동서양 막론 끊임없는 귀신 탐구 … 氣·파동 등 이용한 과학적 접근 잇따라
해마다 여름이면 호사가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귀신. 최근엔 가수 MC몽, 연예인 신정환 등이 ‘귀신을 봤다’고 주장해 관심을 끌기도 했고, 쓰나미가 몰아쳐 폐허가 됐던 태국 푸껫 등지에선 ‘해변·리조트 등에 귀신이 떠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귀신은 정말 있는 것일까?
▶▶▶동양의 귀신 탐구
용재총화(齋叢話), 추강냉화(秋江掠話),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어우야담(於于野譚) 등 우리 선조는 귀신에 관해 여러 문헌을 남겼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조선전기의 학자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 쓴 ‘금오신화(金鰲新話)’다. 이 글에서 김시습은 “산에 사는 요물을 '속'이라 하고, 물에 사는 괴물을 '역'이라 하며, 계곡에 사는 괴물은 용망상(龍芒象)이라 하고, 나무와 돌에 사는 귀신을 기망량(夔)이라 한다”며 귀신의 종류를 밝혔다. 이어 “만물을 해치는 요물을 '여'라 하고, 만물을 괴롭히는 요물은 마(魔)라 하며, 만물에 붙어사는 요물을 요(妖)라 하고, 만물을 유혹하는 요물은 매(魅)라 하는데, 이들을 모두 귀(鬼)라 한다”며 귀신을 분류했다. 그는 귀신의 특성에 대해 “산, 물, 계곡, 나무, 돌 등 곳곳에 존재하며 만물을 유혹하고 괴롭힐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개념은 조선후기의 이익(李瀷·1681~1763)으로 이어진다. 이익은 저서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귀(鬼)는 지각을 가지고 있으니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고, 귀는 기(氣)이므로 어디든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며 “귀의 성질은 사람을 현혹시키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 나타나 사람을 깜짝 놀라게도 하고 속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익은 “귀(鬼)는 음(陰)의 영(靈)이고 신(神)은 양(陽)의 영(靈)이며, 정령(精靈)은 백(魄)으로 되어 있고 신명(神明)은 혼(魂)으로 되어 있다”며 “먼저 정령이 있고 그 다음에 신명이 있으니, 이 두 가지 영(靈)이 물체를 떠났을 때 혼(魂)·백(魄) 또는 귀신(鬼神)이 된다”고 적었다. 그는 귀신의 특성에 대해 “영원히 존재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속멸된다”고 했다.
귀신에 관한 우리의 사상은 중국의 사상과도 상통한다. 귀신의 존재를 언급한 최초의 중국 문헌으로 알려진 것은 주나라 때 지어졌다는 유가(儒家) 최고의 경전 ‘상서(尙書=서경·書經)’다. 이 책은 죽은 사람을 ‘신(神)’이라 표현, ‘사람이 죽으면 신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이 당시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이후 법가(法家)의 기틀을 다진 제(齊)나라의 정치가 관자(管子·?∼BC 645)가 ‘내업(內業)’에서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하늘이 정기(精氣)를 주고 땅이 지기(地氣)를 내줘 이뤄지는 것이니,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면 살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살지 못한다(凡人之生也 天出其精 地出其形 合此以爲人 和湍生 不和不生)”라며 “사람이 생명을 다하겐 되면 신(神)은 하늘로 돌아가고 백(魄)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귀신의 성질을 기록했다.
이러한 귀신을 사람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기술한 학자는 묵자(墨子·BC 480~BC 390)다. 그는 ‘명귀(明鬼)’라는 글에서 “선현이나 성왕들은 귀신을 공경하고 제사를 중시했다”며 귀신의 영명합(鬼神之明)에 주목했고, 도가(道家)의 기틀을 다진 장자(莊子·BC 369~BC 289?)는 “정(精)·기(氣)·신(神), 세 가지가 모여 인간의 몸을 이룬다”며 신(神)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후 송나라 때의 ‘태평광기(太平廣記)’, 청나라 때의 ‘요재지이(聊齋志異)’ 등은 귀신·요괴 등과 관련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채집·수록해 전했다. 이 문헌들은 모두 ‘사람이 죽고 나면 이후 귀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귀신의 존재를 조망했다.
▶▶▶서양의 귀신 탐구
심령학계에선 1848년 3월 31일을 주목한다. ‘뉴욕 하이즈빌(Hydesville)에 살던 폭스(K. Fox)란 여성이 살해된 사람의 영혼과 교신하는 데 성공한 날’이란 것이다. 이를 계기로 심령학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양 여러나라로 퍼져갔고, 심령학자들은 이날을 근대 심령학이 탄생한 날로 기리고 있다.
이후 서양에선 영혼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이뤄지기 시작한다. 작업의 선두에 섰던 사람은 적자생존론을 주장했던 생태학자 알프레드 러셀 왈러스(Alfred Russel Wallace·1823~1913) 박사였다. 심령주의(spiritualism)에 관심을 가진 왈러스 박사는 ‘심령주의와 과학(Spiritualism and Science)’ ‘심령주의와 사회적 책무(Spiritualism and Social Duty)’ 등의 저술을 발표하면서 영(靈)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켰다. ‘셜록 홈스’의 작가 코넌 도일(Doyle, Arthur Conan·1859~1930)도 대열에 합류했다. 말년에 심령학에 심취한 그는 세계심령학회 회장을 지내며 인세수익 상당액을 심령학 연구에 투자했다.
방사성 물질의 스펙트럼을 분석해 1861년 탈륨(thallium)을 발견하고 원자량을 측정했던 과학자 윌리엄 크룩스(William Crookes·1832~1919)경도 심령학에 심취한 학자다. 그는 공중부양(levitation)에 관심을 갖고 탐구, 연구결과를 학술 계간지 ‘과학 저널(Quarterly Journal of Science)’에 싣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 덕으로 서양학계에선 “심령현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같은 배경을 깔고 태어난 것이 영국 심령연구협회(The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SPR)다. 1882년 케임브리지대학 학자 중심으로 런던서 창립된 이 협회는 미국학계에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1885년 미국에서도 심령연구협회(American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ASPR)가 발족된다. 하버드대학 교수 중심으로 뉴욕서 발족한 이 학회는 인간의식과 영혼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그 결과의 하나가 유명한 ‘영혼의 무겐는 21g’이란 주장이다. 던컨 맥두걸( Duncan MacDougall·1866~1920) 박사가 1907년 과학저널에 발표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 실험은 ‘인간의 영혼 역시 하나의 물질’이란 가설에서 시작한다. 맥두걸 박사는 ‘사람이 죽은 뒤 정말로 영혼이 육체를 떠난다면, 물리적으로 그 실재(physical presence)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의문을 품었다. 박사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초정밀 저울을 이용해 임종 환자의 무게를 측정했다. 그 결과 사람이 숨을 거둘 때 반드시 체중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땀·소변 등의 수분과 폐에 들어있던 공기가 신체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이란 것이다. 박사가 주목한 것은 이 부분이었다. 6명의 환자 몸무게를 정밀 측정한 결과 “수분과 공기를 합한 무게보다 21g이 더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맥두걸 박사는 “이 21g이 바로 영혼의 무게”라고 주장했다. 그는 “숨진 환자의 몸에 인위적으로 숨을 불어넣어 봤지만 한번 줄어든 의문의 21g은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며 “떠나간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어떻겐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개 15마리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했다. 하지만 “사람과 달리 개는 죽을 때 몸무게 차이를 보이지 않앙다”고 주장했다. 박사는 그 이유에 대해 “사람에겐 영혼이 있지만, 개에겐 영혼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그 해 3월 11일자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와 미국 의약학회지(American Medicine) 4월호에 소개되면서 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하지만 “실험에 사용된 샘플 규모가 너무 작은 데다, 임종환자 몸무겐 변화치의 신뢰도가 크지 않다”는 반론이 힘을 얻게 되면서 박사의 연구는 점차 잊혀져갔다. 하지만 이 연구결과는 2003년 ‘21그램’이란 제목의 영화로 제작돼 다시 한번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후 서양의 심령학 연구는 체계를 갖춰 초능력을 탐구하는 초심리학(parapsychology)으로 발전했다. 1969년 세계 최대의 과학단체인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The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는 초심리학을 과학으로 인정, 미국 초심리학회(PA; Parapsychological Association)를 협회의 정식회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후 미국에선 초심리학회를 중심으로 정신감응(telepathy), 투시(clairvoyance), 염력(psychokinesis), 심령요법(psychic healing), 예지(precognition) 등에 관한 연구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의 귀신 탐구
기(氣)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체계적인 방법을 통해 혼(魂)과 영(靈)의 문제에 접근해 보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 정신과학학회, 초능력학회 등 관련 학회들이 발족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과학적’이란 표현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실증적인 연구는 이뤄지지 못했다.
정신과학학회의 김종업 박사(기학·氣學)는 “영혼에 대한 서양의 탐구가 물질적이라면 동양의 탐구는 상대적으로 관념적이며 체험적이라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귀신과 영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 본다”며 귀신에 대해 “형체는 없지만 의식을 가진 에너지”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경험을 통해 영(靈)에 접근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영의 존재를 밝히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연세대학교 박민용 교수(전자공학)는 “서양에선 킬리언 사진과 같은 여러가지 장치를 고안해 영(靈)의 존재를 살펴보려는 시도가 있었다”며 “하지만 관측의 정확도에 의문이 있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이를 입증하진 못했다”고 말했다. 킬리언 사진이란 세묜 킬리언(Semyon Kirlian)이란 러시아인이 1939년 고안한 방식으로 젤라틴에 할로겐 화은을 섞어 만든 감광제를 이용해 전압이나 습도 온도 등을 화상에 나타내는 기술을 말한다. 일부에선 킬리언 사진을 이용하면 귀신을 촬영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중앙대학교의 이종원 교수(기계공학)는 “개인적으로 영이 있다고 본다”면서 “하지만 증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대의학으로 봤을 때 육체적으로는 정상인데도 정신상태가 비정상적인 사람을, 소위 퇴마사(退魔徙)란 사람이 치료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김재수 박사(재료공학)는 “사람의 몸은 존재하는 파동대에 따라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세팅(setting)돼 있다”며 “따라서 세팅이 돼 있지 않은 파동은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마찬가지로 전파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정신과학학회의 설영상 이사는 “나무가 불에 타서 없어질 경우 형체는 사라지지만 그 에너지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오래 전 입증됐다”며 “귀신 역시 마찬가지로, 사람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에너지”라고 말했다. 그는 “종교는 영(靈)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며 “영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종교는 어떻겐 존재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범진 주간조선 기자(bom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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