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민간신앙(가정신앙)
조왕신-부엌을 지키는 신
조왕신은 부엌의 아궁이와 부뚜막을 맡고 있는 신으로서 조왕님 · 조왕신 · 조왕할매 등으로 불리며 한국의 전통에서 화신(火神) · 재물신(財物神)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조왕신이 화신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장작불을 때는 아궁이를 맡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또한 재물신으로도 인식되고 있는 것은, 한국의 전통적인 가옥구조상 아궁이에 불을 때서, 음식을 만들고 방을 덥히는 등 가정 생활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뜻하며, 불을 제대로 때지 못함은 생활의 빈궁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서민생활이 어려웠던 옛날에는 그 집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보아서 끼니를 잇고 걸름을 판단하였습니다.
아궁이는 이와 같이 불을 때어 음식을 만들고 방을 따뜻이 해서 잠을 잘 자게 하는 문제 등 생활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조왕에 대해서 불경스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또한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아궁이에 관계되는 나쁜 말을 사용하지 않으며 아궁이에 걸터앉거나 발을 디디는 것 등은 철저한 금기사항입니다.
그리고 아궁이를 개조하거나 수리하는 일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또한 조왕을 화신으로 인식하면서 정성을 들여 중하게 모시는 것은 불은 물과 더불어 종교적인 정화력(淨化力)을 갖는다는 데에도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부엌은 불을 사용하여 음식을 만드는 곳이기도 하고 음식을 만들 때 자연히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불과 물을 동시에 사용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조왕신이 물로 상징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왕신은 원칙적으로는 불을 모시는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에서, 불씨를 신성시하여 이사를 갈 때 불을 꺼뜨리지 않고 가지고 가는 풍습이나 이사간 집에 성냥을 가지고 가는 풍습은 모두 불을 숭배하던 신앙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성주신-모든 가택신을 대표하며 그들을 거느리는 최고의 신
성주신(成造神)은 가내의 평안과 부귀를 관장하는 최고의 가택신입니다.
성주를 모시는 형태는 성주단지와 종이성주가 있습니다. 성주단지는 안방에 놓고, 종이성주는 상량대 밑의 동자기둥에 매다는 것이 보통입니다.
마루 상기둥 중간에 작은 선반을 매고 성주단지를 모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주단지 안에 담는 쌀은 햅쌀을 쓰고 동전을 넣는 수도 있습니다.
곡식을 넣는 이유는 농사가 잘 되고 무병을 기원하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사를 가는 경우에는 쌀은 먹고 단지는 산에 묻으며, 종이성주는 나무에 매달고 갑니다. 그리고 이사간 새집에는 성주단지와 종이 성주를 다시 만들어 놓습니다.
터주신-집터를 지키는 신
터주는 집터를 지키는 일을 맡은 지신(地神)으로, 일명 토주(土主)·대주(垈主)·터줏대감·후토주임(后土主任)이라고도 합니다.
집안의 액운을 걷어 주고 재복(財福)도 점지하는 신입니다.
신체는 서너 되 들이의 옹기나 질그릇 단지에 벼를 담고 뚜껑을 덮은 다음 그 위에 짚으로 엮어서 원추형 모양을 만들어 집의 뒤뜰 장독대 옆에 모셨습니다.
이를 터주가리라 하는데, 이 터주가리는 매년 새로운 벼가 날 때마다 갈아넣습니다.
이 때 갈아 낸 묵은 벼는 남을 주지 않고 반드시 가족들이 먹는데, 남을 주면 복이 달아난다고 해서 엄격하게 금했습니다.
터주에게 올리는 제의는 특별히 지신제를 올리는 경우도 있고, 다례 때 떡을 한 접시 받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쇠구영신(외양간 신)
농촌에서 가장 중요한 재산인 소를 수호하는 신이 쇠구영신입니다. 마부신ㆍ군웅신ㆍ마구간신 등으로도 부르는 신에 대한 제사는 안택제를 지낼 때 함께 지냅니다.
그때는 마구간에다 백설기떡이나 쇠고기 한 묶음을 매달아 놓는다. 새 옷감이 들어오거나, 베를 짜면 말코 옆을 조금 끊어서 역시 마구간 평에 매단다. 소가 새끼를 잘 낳고 무병을 위해서 구멍이 뚫린 돌을 주어다가 마구간에 걸어 놓습니다.
쇠구영신에 대한 유사한 기록이 《東京雜記》에 있습니다.
"10월 오일(午日)을 속칭 말날이라 하고 팥시루떡을 쪄서 마구간에 놓고 말의 건강을 빈다. 그러나 병오일(丙午日)에는 하지 않는데, 병(丙)과 병(病)이 서로 같은 소리이기 때문이다."고 하였습니다. <東京雜記: 경주시 지역의 풍습에 대해 기록한 책>
조상신-선대의 조상이 신이 된 것
얼마전까지만 해도, 추석을 전후해 햇곡식으로 떡과 밥을 지어 조상에 올리는 '올계심니'(일명, 올벼차례(茶禮)', 올벼심리, 오리심리, 올기심리)를 했습니다. 이는 조령(祖靈), 농신 숭배 사상(農神崇拜思想)의 실례이며, 지금도 간간이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조상신은 4대조 이상의 선영(先塋)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나, 조신(祖神), 농신(農神), 산신(産神), 수신(壽神) 등 다양한 성격을 띤 곡신 혹은 삼신과 서로 중복을 이루고 있어서, 이들과 때로는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우물신-우물에 사는 신
우물에 있어 물이 마르지 않게 한다고 믿어지는 신. 좋은 물이 솟아나야 그것을 먹은 사람들이 건강하다고 믿어서 우물의 신을 모십니다.
가뭄이 들어 물이 귀할 때나, 산간 지역처럼 물이 귀한 곳에서는 우물을 매우 중시해서 우물신에게 제사를 자주 지냅니다.
대개 집에 있는 우물과 마을 공동우물의 두 가지로 나뉘는데, 마을 본당에 제사를 드리고 나서, 풍물패들이 반드시 공동우물에 몰려가서 우물신에게 제사를 드립니다. 우물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전에는 반드시 우물에서 오물을 제거하고 지붕을 씌우거나 금줄을 쳐서 당분간 물을 먹지 못하게 합니다.
겨울 뿐 아니라 여름에도 우물을 마을 공동으로 함께 청소하고, 소나 돼지를 잡아서 성대하게 우물신에게 제사를 올리는데 이것은 위생상으로 좋은 것이라 여겨지고 있습니다.
측간신-변소에 살며 잘 놀라는 신
칙신은 뒷간을 담당하는 신인데, 변소각시·정낭각시·변소장군·됫간신 등으로 부릅니다. 대체로 젊은 여성신이라는 관념이 많고, 귀신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 여신은 머리카락이 길어 그것을 세는 것이 일인데, 사람이 변소에 올 때 갑자기 자기를 놀라게 하면 깜짝 놀라서 그 머리카락을 씌워 죽게 한다는 설화가 전해 옵니다.
이러한 관념은 어두운 밤 멀리 떨어져 있는 변소가 공포의 대상이 된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칙신이 놀라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은 재래식 변소를 갈 때 지켜야 하는 인기척을 유도하려는 방편에서 생긴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옛날 노인들이 변소에 갈 때면 반드시 "에헴"하고 가래를 돋구어 기침을 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 신은 늘 뒷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월 6일·16일·26일 등 6자가 든 날에 한해서만 있고, 그 외의 날에는 외출해서 없는 것으로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6자가 든 날에는 아예 칙간에 가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뒷간에서 아이들이 신발을 빠뜨리거나 사람이 빠졌을 때는 칙신이 노해 탈이 생긴다는 징조이므로 떡과 메를 장만하여 빌기도 하였습니다.
삼신-아기를 점지하는 일과 산모와 생아(生兒)를 맡아보며 수호한다는 세 신령(神靈).
한국에서는 친근하게 '삼신 할머니'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삼신에 대한 기원은 아기를 점지해 달라는 기자(祈子)의 형태로 시작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아기를 낳은 후부터 이루어집니다.
한국에서는 아기를 낳으면 곧 흰밥과 미역국을 각각 한 그릇씩 장만해서, 삼신상(三神床)을 차려 신에게 바치고 새로 태어난 아기의 명복과 산모의 건강 회복을 기원한 후 산모가 먹습니다.
삼신은 아기의 출생에만 관계된 신이 아니고 육아에도 관련된 신이기 때문에 젖이 부족할 때는 젖이 풍족하게 나오게 해달라고 삼신에게 빌고, 첫이레, 두이레, 세이레 때는 아기의 무병장수를 비는 뜻에서 삼신에게 흰밥과 미역국을 올린 다음 산모가 먹습니다.
또 백일날 아침과 돌날 아침에도 삼신상을 차려 삼신께 먼저 빌고, 그 음식을 산모가 먹습니다.
이때는 흰밥과 미역국 외에 정화수(井華水)와 애기시루(삼신시루:시루떡)가 추가됩니다.
칠성신-북두칠성의 일곱 별을 인격화한 신
칠성신(七星神)은 사람의 수명과 부귀, 농사와 생사 그리고 화복 등의 사항을 관장하는 신입니다.
남자도 제사를 지냈으나 요즈음에는 여자들만이 지내는데,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지내기도 하며, 산이나 냇가 등 청결한 곳을 택하여 지냅니다. 각처의 절에 가보면 지금도 산신각(山神閣)과 나란히 칠성당을 모신 곳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북두칠성을 가르켜서 칠성신, 칠원성군, 칠성여래 등 다양하게 부릅니다.
요즘에는 별도로 가신을 모시는 집은 거의 없으나, 제사를 모실 때 성주상을 따로 보아 놓는다든지, 동짓날 팥죽을 쑤어서 집안 구석구석에 뿌리는 행위, 아이를 낳았을 때 몸을 푼 안방에다 미역국으로 삼신상을 차려 놓은 것 등은 모두 그 실례들입니다.
이러한 민간의 신앙은 서울과 대도시보다는 오히려 지방 소도시, 특히 시골 농촌에 더 많이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시골 농촌의 곳곳에서는 安宅祭라는 것을 지내고 있습니다.
안택제는 집안의 여러 신들에게 풀어 먹이는 제사로, 가족의 무사안녕과 가운의 번창을 기원합니다.
안택제는 지금도 지내는 집이 많이 있다. 농촌에서는 농사가 끝난 10월부터 다음해 정월까지 사이에 택일하여 지내며, 상가는 새해를 맞이하여 가게의 번영을 위하는 뜻에서 주로 정월에 지냅니다.
안택일이 일관(日官)에 의해 잡혀지면 온 가족이 부정을 가리는 일련의 작업을 합니다. 집주인은 가급적 집밖 출입을 삼가고 근신하며, 집안의 청소를 하고,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하기 위하여 안택일 3-4일 전에 대문에다 왼새끼에 백지를 끼운 금줄을 칩니다.
이외에도 대문 앞에 금기 표시로 황토무지를 만들어 군데군데 놓아두기도 합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상가 출입은 물론 상주의 출입도 금하며, 집에서 제수로 쓰기 위한 것 외에는 살생을 금하고, 동물의 사체를 보는 것도 피합니다. 제사 시간은 초저녁에 지내는 집도 있고, 새벽에 지내는 집도 있어 일정하지는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