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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한다./전염병의 횡포

고 이종욱 WHO 사무총장의 안타까운 글

세덕 2012. 5. 15. 15:59

[TODAY] “AI 심각성 수차례 경고했었는데 한국은…”
기사입력 2008-04-15 13:16 


 
故이종욱 WHO사무총장 충고 다시 경각심…치료제 비축량도 2.6% 불과 사실상 무방비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제 이름을 따서 ‘이종욱 기념상’을 제정하기로 결정한 것은 과분하고도 쑥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지난 2005년 5월 뇌졸중으로 여러분과 작별한 뒤 언론에서 제가 존경해 마지 않는 슈바이처 박사의 이름을 빌려 ‘아시아의 슈바이처’라는 호칭을 붙여준 것도 겸연쩍은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저는 누구나 역할 모델로 삼을 만한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 그저 봉사를 소임으로 알고 앞만 보고 걸어온 한 사람의 의사였을 뿐입니다.

 

제 육십 평생(이 총장은 만 63세 나이로 타계)은 질병과의 싸움이었습니다. 70년대에 서울대 의대를 다니던 시절 경기도 안양의 나환자촌에서 봉사 활동을 시작했고 76년에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하와이대학교에서 전염병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남태평양의 사모아에서 봉사 활동을 하던 중 WHO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WHO에서는 나병과 전염병, 에이즈 등의 질병과 싸우는 직책을 거쳐오다가 2003년에 사무총장에 당선된 뒤부터는 조류인플루엔자(AI)와의 싸움에 주력했습니다.

 

저는 WHO 사무총장 시절에도 지갑에 항상 주민등록증을 넣고 다니며 늘 조국에 감사하고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안타깝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달 들어 전북과 전남에서 AI가 확산되었으며 치명적인 H5N1 바이러스로 확인된 곳도 벌써 6군데나 나타났다니요. 15일에는 AI 방역 지대에 있는 오리 수백마리가 방역선을 넘어갔다는 사실에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AI의 치사율은 60%가 넘습니다.

 

AI에 대항해 현존하는 유일한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정부 비축량도 국민의 2.6%인 140만명분에 불과하다지요. 변이가 급격한 RNA형 바이러스인 H5N1은 언제든 조류 대 인간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감염될 수 있게 변이할 수 있습니다.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700억달러가량이었지만 AI가 확산되면 인류는 이를 훨씬 넘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WHO 사무총장시절 저는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이 같은 전망을 내놓고 국가 간 공조체제 구축을 역설했습니다.

 

일부에서는 WHO가 사태를 과장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했지만 저는 판데믹(전 세계적으로 퍼지는 전염병)이 오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믿으며 그 생각은 지금도 변치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일교차가 10여도가 넘는 환절기라 감기 발병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더욱 우려가 됩니다.

 

2005년 10월에 잠시 귀국했을 때는 지금보다는 걱정이 덜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사스와 AI 문제에 대해 적극 대처한 국가로 평가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선진국이 꾸준히 AI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비축량을 늘려가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의 AI대책은 그때와 비교해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힘을 쓸 수 없는 먼 세상에 있는 저를 대신해 정부 당국자뿐만 아니라 정치인과 국민 여러분들도 심각성을 깨닫고 합심해 대처해주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이문환 기자(mh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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