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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太極旗 휘날리며

세덕 2012. 5. 23. 14:50

태극기太極旗 휘날리며

이수만 / 자유기고가

 


올림픽과 시상식
세 번에 걸쳐 올림픽 유치에 도전해 결국 그 꿈을 이룬 2018 평창 동계올림픽.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은 세계인들의 화합과 평화의 제전이다. 젊은이들이 모여 그간의 기량과 실력을 뽐내며 경쟁을 하고, 우승이 확정되면 언제나 그렇듯 시상식이 열린다. 그런데 가장 영광스러운 시간인 시상식이 예나 마찬가지의 모습으로 다소 소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명색이 세계 1위인데 그에 대한 의식(儀式)은 남들보다 조금 높은 단상위에 올라가고 국가가 연주될 뿐, 여기에는 그 나라 ‘국기’가 게양되는 단 몇 분의 의식이 고작이다(물론 금메달획득에 따르는 여러 가지 부가적인 혜택은 논외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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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을 비롯한 세계적인 대회를 지켜보면서 왜 저렇게 초라한(?) 의식에 우리는 많은 의미부여를 하고, 특히 국기를 게양할 때는 어떤 엄숙한 기쁨까지도 함께 맛보고 있는 것일까? 타국의 하늘에 게양되는 태극기를 보고 애국가를 들으며 우리는 왜 한없는 자긍심을 느끼는 것일까? 잘 알지 못하는 태극기의 상징체계들을 보면서 나는 왜 이리도 가슴이 뭉클할까?

이 글에서 우리는 국기가 상징하는 의미와 태극기를 구성하는 흰색 바탕, 태극, 사괘의 세 가지 상징체계들을 통해 우리민족의 생활 속에서 함께 숨쉬어왔던 우주원리적인 지혜를 함께 엿보려고 한다.1)

 

기旗는 권위, 승리의 상징이자 집단의 자존심
현재 지구상에는 200여개의 나라가 있다. 나라마다 그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國旗)들이 있다. 국기는 일정한 형식을 통하여 한 나라의 역사, 국민성, 이상 따위를 상징하여 정한 기(旗)로, 국제사회에 한 국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공식적 징표이기도하다. 대부분 국기를 보면 그 나라가 추구하는 바를 알 수 있는데, 대체로 일월성신을 비롯한 자연물을 추상화 하거나 그 나라가 지향하는 가치관을 색이나 도형들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 태극기는 어떨까? 우주변화원리와 인간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천지일월, 우리민족이 본래부터 지닌 광명 사상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기(旗, 깃발)는 동양에서 예로부터 상제님이나 천지신명의 권위를 빌려 제왕의 지위와 권위, 종교적인 위의(威儀) 및 군사적 지휘권 등을 상징했다. 『주례周禮』를 보면, 대대적인 군사행동을 하거나 나라의 제사 등 큰일을 할 때에는 ‘기(旗)로써 대중을 모으고, 그들의 질서를 바로잡고 다스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나라 왕실에서는 왕권의 모든 속성을 기에 부여하여 기수와 접촉만 해도 죄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기(깃발)에 대한 인식은 서양에서도 비슷하다. 로마제국은 토템과 유사한 상징적 의미로 황금독수리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서양의 여러 제국들의 상징적 체계로 이어져오고 있다. 이런 기(깃발)에 대한 인식에서 유래한 국기는 그 나라 국민들의 자존심, 애국심, 명예의 상징이다. 때문에 국기에 경의를 표하고 이를 존엄하게 취급하여 왔다.

 

내 마음 속 태극기
대한민국의 국기는 태극기다. 우리는 태극기가 전 국토에 휘날리는 경험을 두 번 했다. 바로 일제강점기 아래 3.1독립운동과 2002년 한일월드컵! 다 같이 하나가 되었던 시기였다. 일제의 폭압에 맞서 평화적인 만세시위운동으로 광복의 염원과 민족의 의기를 보여준 3.1독립운동 현장에서, 그리고 IMF라는 국가적 경제위기를 극복한 국민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주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이름을 세계에 더 널리 알린 2002한일월드컵 현장에서. 우리민족이 자발적으로 하나 되는 신바람 현장에는 늘 태극기가 있었다.

태극기는 1882년 고종 19년 5월 22일 조미수호통상조약 당시 태극문양의 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미국 해군부 항해국에서 제작한 ‘해상국가들의 깃발(Flag of Maritime Nations)’에 ‘Ensign’기가 조인식에 사용되었는데 이게 태극기의 원형으로 보인다. 당시 조선 왕실에서는 오방기(五方旗), 규성기(奎星旗), 삼족오가 변형된 주작기(朱雀旗), 일월기(日月旗), 교룡기(交龍旗) 등의 다양한 기가 있었으며, 또한 영조 책봉례 <봉사도>2)에 나타나듯 태극이 그려진 기 등도 사용되고 있었다. 이후 1882년 9월 고종의 명을 받은 박영효는 특명 전권대사 겸 제3차 수신사로 가는 선상(船上)에서 ‘태극 4괘 도안’을 하고 25일부터 사용하여 최초의 근대적 태극기가 일본 하늘에 나부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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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고종은 기존의 태극문양이 담긴 기를 표본으로 한 국기를 만들어 사용하도록 지시하였다고 한다. 이에 10월 3일 본국에 보고하고, 이듬해 1883년 3월 6일 왕명으로 제정 공포하게 되었다. 당시 국기 제작에 대한 구체적 방법이 명시되지 않아 훗날 여러 가지 다양한 모양의 태극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는 우리민족 생활공간에서 태극문양은 이미 일상화되어 있었기에, 생활에 체화(體化)된 태극문양이 있는데 이를 굳이 법제화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대한민국 국기법 및 동법 시행령으로 규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태극기에는 태극문양 뿐 아니라 우주변화원리에서 가장 중요한 괘상인 건곤감리(乾坤坎離)가 들어있다. 이에 대해서 조목조목 검토해 보기로 한다.3)

 

광명, 가을을 상징하는 흰색白
태극기의 바탕색은 흰색이다. 흰색은 하늘을 상징하면서 광명, 밝음, 순수함을 함께 상징하고 있다. 또한 흰 바탕은 가을세상을 상징하는 색이다(동양사상에서 흰색은 가을 금金, 서쪽을 상징한다). 한여름의 치열했던 과정을 거친 뒤 오는 성숙함과 풍요로움이 함께하는 성숙의 시간대인 가을. 하나로 통일되는 그 과정을 상징하는 색으로, 하늘이 유리와 같이 맑고 투명해지는 때를 상징하는 색이다. 우리민족을 백의민족이라하는 이유도 본래 광명을 숭상하는 우리민족 본연의 덕성과 함께 가을을 준비하는 민족이라는 의미도 함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민족과 함께 해온 태극문양
태극문양은 우리민족과 늘 함께 해왔다. 사실 태극은 음양이 조화되어 있고 끊임없이 변화, 창조, 성숙하는 대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모습인데, 우리는 이런 상징을 삶속에서 보았고 사용해 왔다. 눈을 들어 주위를 들러보면 태극이 아닌 것이 없다.4) 내 몸도 태극체인데 하물며.

태극문양의 자연적 기원은 물에서 엿볼 수 있다. 쌍둥이 태풍, 바람, 물방울, 소용돌이에서 보듯 생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필요한 물에 대한 신비성이 태극문양으로 형상화된 게 아닌가 싶다. 고대 토기에서 보이는 파상문, 와문 등의 물결 모양이 태극모양이라는 점도 눈여겨봐야할 것 같다.

태극에 대한 개념 중 가장 정치(精緻)하면서 정확한정의는 『우주변화의 원리』에 나온다.

“태극이란 개념은 한 마디로 말하면 극히 클 수 있는 바탕을 지니면서도 극히 작은 상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우주가 음양을 생성하는 상은 양이 생하려고 할 때에는 그 상은 극히 작은 것이지만 이것이 장차 큰 양을 나타낼 수 있는 본질을 지니고 있으며, 음이 성하려 할 때에 그 상은 극히 작으면서도 장차 큰 음을 형성할 수 있는 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즉 양의 극단(極端)과 음의 극단은 각각 그 태극의 운동현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작용은 반드시 본체가 있을 것인바 그 본체를 가리켜서 태극이라고 한다.” (본문 371~372쪽)

태극의 모습은 우주가 음양의 대립적인 원리로 갈리기 이전 원초적 상태를 표상하고 있어, 천지개벽 직전의 혼돈(混沌)과 무정형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태극기는 이러한 음양의 상대성, 순환하는 시간적 질서에 의해 만물이 생성(生成)해 가는 것을 도상(圖上)화한 것을 국기에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천지일월을 담고 있는 사괘
그리고 우리 태극기의 사방 귀퉁이에는 철학적 상징물이 있다. 역학(易學)을 공부한 이라면 알 수 있을 주역의 괘상이 담겨 있다. 주역의 처음과 두 번째는 천지를 상징하는 건곤(乾坤) 괘가 있다. 그리고 『주역 상,하경』에서 맨 끝의 두 괘는 물과 불로 상징되는 감리(坎離)괘가 결합되어 있다(수화기제水火旣濟, 화수미제火水未濟). 즉 주역의 머리와 꼬리가 건곤감리로 되어 있다. 이 감리 괘는 자연적인 형상체로는 해와 달, 즉 일월을 상징한다. 물[坎]은 달을 형상화한 것으로, 신교(神敎)에서 물을 다스리는 영물(靈物)로서는 용(龍)이 상징화되었다. 불[離]은 해를 형상화한 것으로, 불을 다스리는 영물로서는 봉(鳳凰)이 상징화되었다.

140건곤은 천지를 상징하는데 이는 음양운동의 가장 큰 주체이다. 하늘은 생명을 내려주고 땅은 생명을 낳고 길러내는 존재이다. 대자연 속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인간을 비롯한 만물은 그 누구도 하늘과 땅의 거대한 품속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하늘과 땅, 즉 건곤은 만물생명의 근원이자 진리의 원형이다.

바로 이 천지를 대행하는 조화기운이 해와 달, 일월이다. 즉 천지는 생명의 근본이고 그 천지를 대행하여 음양변화를 일으켜 만물을 낳아 기르는 것은 일월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 태극기의 모습은 만물의 창조도(創造圖), 음양이 이상적으로 배합된 복희 팔괘도의 모습으로 되어 있다.

복희 팔괘도를 그은 태호 복희씨는 동방 한민족의 나라인 배달국 5세 태우의(太虞儀) 환웅(桓雄)의 12번째 막내 아드님이다. 『환단고기』「태백일사」 ‘신시본기’를 보면 꿈속에서 삼신 상제님께서 강림하셔서 세상만사의 이치를 통달했다고 되어 있다. 이에 삼신상제님께 보은의 치성을 드리기 위해 삼신산(백두산)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 천하(天河: 지금의 쑹화강松花江)에서 용마가 지고나온 그림을 보고 하도(河圖)를 그렸고, 시획팔괘(처음으로 팔괘를 그었다)를 통해 우주원리를 열어주셨다고 한다[得卦圖].

선천문명의 뿌리인 음양오행과 우주원리를 모두 열어주신 분이 바로 태호 복희씨이다. 이 분이 그은 복희 팔괘도는 음과 양이 잘 교호하는 이른바 음양소장지도(陰陽消長之道)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 모습은 그대로 우리 태극기로 이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현재 우리는 많은 문제들을 갖고 있다. 매일 매일 터지는 여러 사건 사고와 이상기후, 경제적 어려움, 여기에 우리민족이 안고 있는 남북분단이라는 상황들까지. 우리 삶은 참 조화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대립과 상극의 과정을 거친 후 다같이 하나 되는 화합의 장이 열리는 것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 장이 올림픽과 같은 큰 잔치의장이지 않을까 싶다.

나라를 상징하고 민족의 자긍심이 한껏 배여 있는 우리 국기 태극기는 서로 대립되는 기운을 음양으로 인정하면서 이를 통합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생명의 바탕인 건곤감리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 가야하는 밝은 미래, 모두가 하나 되는[大同世界] 맑고 푸른 가을세상까지도 담고 있다.

이 한 폭에 그림 속에 이렇듯 많은 의미를 함축하는 국기를 가진 나라가 지구상 어디에 있을까?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내고 소화해내는 문화적 소양과 자질을 지닌 민족이 또 누가 있을까?

눈이 시리게 파란 가을하늘,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서’ 모든 대립과 갈등이 조화롭게 해결돼 통합과 공존, 포용 그리고 상생으로 열리는 새 날이 어서 오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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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각에서 태극기에 상징된 태극이나 괘가 우리민족 고유의 상징체계가 아니라는 비판이 있으나 이는 편협한 시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현재의 태극기가 잘못 그려져 있으며 태극의 운동방향이 활동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각계 전문가와 국민들의 합의를 통해 조정해 볼 수 있지않을까 한다.

2) 청 사신단 부사 아극돈(阿克敦 1685~1756)의 작품으로 1998년 중국에서 발견된 총 20장으로 되어 있는 그림으로, 태극과 감리 괘가 같이 있
는 그림과 삼각 태극 깃발 등이 보인다. 자세한 사항은 〈조선일보〉 1998년 7월 11,14일자 기사 참조.
3) 조선시대 전쟁의 신인 치우천황, 즉 배달국 자오지 환웅께 올리는 둑제纛祭가 있었다. 둑제는 국가제사로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세 번에
걸친 기록이 보인다. 이 둑제를 지낸 둑신사가 현재 서울 뚝섬지구에 있었다. 이 둑신을 상징한 기로 둑신기가 있는데 이 모습은 태극문양에 복
희 팔괘가 위치해 있는 게 좀 상이할 뿐 현재 태극기와 비슷하다. 『삼신민고』 참조

4) 고려 범종이나 좀묘 문아래 기단에 새겨진 태극문양이나 종묘대제 때 사용하는 북에 새겨진 태극, 삼극문(경남 하동 쌍계사), 미추왕릉 지구에서 출토된 신라 보검에 장식한 태극 감은사지 기단에서 발견한 태극, 덕수궁 중화전 돌계단의 태극문양, 독립문에 그려진 태극기 등 너무나 다양하다. 주변을 둘러보시기 바란다.

 



〈참고문헌〉
『우주변화의 원리』, 대원출판, 한동석, 2010
『환단고기』, 상생출판, 안경전 역주, 2010
『하도낙서와 삼역괘도』, 상생출판, 윤창열 지음,2010
『태극기』, 행정안전부 의전담당관실 발행, 2010.3
『라캉^장자^태극기』, 민음사, 권택영, 2003
『태극기의 정체』, 동아시아, 김상섭, 2001
『문박사의 태극기 이야기』, 미술문화, 문룡호, 2000
『정재서 교수의 이야기 동양신화-중국편』, 황금부엉이, 정재서, 2004
『한국문화상징사전1』, 동아일보사, 편찬위원,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