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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와불과 천불천탑

세덕 2012. 6. 14. 13:29

 

 

운주사 와불과 천불천탑

 

 

운주사 와불과 천불천탑

 

운주사하면 천개의 불상과 천개의 탑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석탑과 석불을 합쳐 100여개 남짓밖에 안 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마도 11세기 초반 운주사 창건 이후 수많은 전란과 재난에 의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80년대만 해도 이 운주사 돌탑과 돌부처 바로 앞까지 논밭이 있어서 이곳이 훼손될 수밖에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인근의 노인들에 의하면 인근 마을 사람들 중에 자기 집을 고치거나 새로 지을 때 이곳 돌부처와 돌탑을 가져다 쓰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이니 옛기록이 그저 허황된 것만은 아닌 듯 싶다.


석불좌상의 높이는 12.73m이고 석불입상의 높이는 10.30m인데 이 두 석불은 대체로 북쪽 다리 부분이 남쪽 머리 부분보다 약 5도 높고 입상쪽이 좌상쪽보다 약 5도 높게 경사져 있다. 이 와불은 다른 곳에서 만들어 이곳에 옮긴 것이 아니라 산 정상에 있는 암반에 그대로 조각한 것이다. 문제는 고려 초기 당시에 어떻게 이 무거운 불상을 일으킬 생각을 했었느냐는 것이다. 아니면 이곳의 다른 불상들처럼 파격적인 모습을 구상하여 처음부터 하늘을 보고 누워 있는 불상을 조각했는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석가모니가 열반할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측와불은 인도나 스리랑카 쪽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형태는 운주사의 와불과 현격한 차이가 있다. 인도나 스리랑카의 측와불은 석가모니가 누워서 손으로 턱을 괴거나 받친 상태인데 운주사의 와불은 그저 정면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또 좌상과 입상의 다리 부분에는 떼어 내려고 했던 흔적으로 보이는 틈이 있다. 암반에 불상을 조각하고 떼어 내는 공정을 마치지 못한 미완성 불상으로 일부에서는 추측하기도 하지만 처음 불상을 조각한 후 생긴 흔적인지, 아니면 후대에 사람들이 나름대로 의미를 두면서 세워 보려고 만든 흔적인지는 단정지을 수 없다.


운주사에는 천개의 불상과 천개의 탑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 석탑은 모양을 제대로 갖춘 것이 18기 가량밖에 남아 있지 않다. 운주사 입구에 보이는 구층석탑, 칠층석탑, 특이하게 생긴 원형다층석탑(연화탑), 원형석탑(실패탑), 오층석탑(거지탑), 원구형석탑(항아리탑) 등이 있다. 이 석탑들은 몇가지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먼저 전형적인 우리나라 석탑형식으로 탑신과 옥개석이 네모 반듯한 모양을 이룬 것과 탑신이나 옥개석이 원형을 이룬 것, 벽돌로 쌓아서 만들어진 전탑 형식, 지대석 위에 기둥 형태의 거친 석재를 얹어 놓은 형식 등이 있다. 운주사의 이 탑들이 이렇게 모양이 제각각인 이유는 무엇일까? 운주사는 창건에서 폐사까지 3~4차례의 중수가 있었는데 이 시기마다 새로운 석탑들이 세워지면서 모습이 서로 달라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운주사에 또 하나의 수수께끼는 칠성석(七星石)이다. 운주사 입구에서 바라보면 운주사 서편 산 중턱에 놓여져 있는 칠성석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일곱 개의 자연석을 원형으로 다듬어 배치했는데 그 모양은 북두칠성의 형태와 똑같다. 그래서 운주사는 일반 불교사찰이 아니라 칠성신앙과 관련된 도교사찰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주장이 제기되어 왔었다. 이 칠성석의 직경, 원반끼리의 중심각, 각 원반 중심간의 거리, 돌의 위치와 두께 등이 현재 북두칠성의 밝기나 위치와 똑같은 비례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칠성석의 이러한 천문학적 가치를 인정하더라도 누가, 왜, 하필 운주사 서편 산 중턱에 만들었는지, 또 천불천탑과의 관계 등 궁극적인 의문에 대한 대답은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어느 블로거의 글을 대략 편집했습니다.




1482 동국여지승람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다. 절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이 각 1000개 있고


또 석실이 있는데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

1942년 : 석탑30기, 석불 213기

지금 : 석탑 12기, 석불 70여기





 

와불이 일어섰다면 운주사를 내려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큰 분이 주인공인 것 같고

왼편에 있는 작은 분이 협시 하시는 분인 것 같다.

모양은 역시 판석板石형이다.

 

 

 

모양은 물론 두 분을 따로 세울 조치까지 다 했는데  

게다가 머리에 씌울 까지 준비해

가지런하게 옆에 두었는데


 

그만 몸이 바닥에 그대로 붙어 있으니

이를 어쩌란 말이냐.

혹시나 하고

손으로 밑을 긁어 보았는데 역시나 암반에 붙어 있었다.


 

 

 

 

가늘게 뜬 눈매는 누워 선정에 들어 계신다.

암반에 붙어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도

그러기를 벌써 수 백 년이 지났다는 것도

문제가 되지 못한다.

 


 

큰 분 왼편 얼굴에는 채석의 흔적까지 선명한데

그 것 역시 문제가 되지 못한다.


 

부처님의 상징인 크고 길게 늘어진 귀와


 

길게 내려온 코에 가늘게 내리 감은 눈은

인중에 파인 가는 선과 더불어 간결함을 보여준다.


 

두드러진 것은 코 뿐이다.


 

두툼한 입술선도 가늘기 매 한가지고


 

흘러 내리는 옷을 잡아 올린 왼손과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오른손은

평안하다.


 

암반에서 떼어내려고 시도했던 흔적이 있다.

이렇게 조금만 더 했으면

와불이라는 별호를 갖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석불들

 

 

칠성바위는 하늘의 북두칠성을 말하며

고래로 칠성은 인간의 생사를 관할한다고 전해진다.

직경이 2자에서 5자 이상 되는 동그란 돌들이다.

망자망자가 눕게 되는 관 바닥에 일곱 개의 점을 찍어 칠성을 만드는데

이를 칠성판이라고 한다. 칠성판이라면 곧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운주사 산 기슭에는 이런 칠성 돌이 있다. 그냥 돌이 아니라

동그랗게 잘 다듬어진 돌이다. 그 것도 크기를 달리해서

일각에서는 하늘에 있는 칠성의 밝기까지 반영했다고 한다.

 

석탑..

 

 

 

운주사의 유적을 찾아보면서..

장정 여럿잡았을 듯한 이 석탑과 석불. 그저 일반사람으로는 하기 힘든 작업이 아니었을까.?

저의 전공이 도자기 디자인 인데..

어떤 작품을 만드는 사람의 경우 그것을 천직으로 생각하거나 특별한 목적이 있지않고서는 어렵습니다.

운주사 앞으로 보이는 산 모두에 걸쳐 대형 석탑석불들이 산적해있는데

과연 이걸 만든 사람은 "어떤생각으로 왜 이걸 만들었을까?" 하는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이 든것은 마이산 이갑룡 처사의 석탑이 생각났습니다.

자신의 천명을 생각하고 즉 계시를 받은건데요.

 

이 운주사의 석불석탑 또한

어느 누군가 큰 계시를 받고 그 지휘하에 만들어진게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 계시는 무엇이고 뜻하는게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