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예언, 예언가에 대해 본문

세상이 변한다./현실로 다가오는 예언

예언, 예언가에 대해

세덕 2012. 8. 8. 11:25

예언, 예언가...예언은 무엇이며 예언가는 어떤 사람인가?


예언의 비밀을 시원하게 설명해 보려고, 오늘날의 많은 사람은 시간이라는 것을, 마치 콘베이어 벨트위에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는, 그리고 시시각각으로 우리들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그 무엇처럼 파악해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미래는 아직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득히 먼 뒤에서 조금씩 접근해 오기 때문에 긴 행렬 끝의 사람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아직은 눈에 띄지 않고 있지만 그 모습과 그 사실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언자는 흔히 높은 고층빌딩 꼭대기에 우뚝 서 있는 사람과 같다고 비유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지상에 있는 사람보다 훨씬 먼 전방을 훤히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를 살고 있는 대예언가>,  S. 오스트 랜더, L. 슈러더 지음.

과학문명은 극치에 이르렀지만 극치에 이르면 다시 돌아나와야 하는 법이다. 과학문명이 인류에게 큰 공헌을 했지만 그 이상으로 많은 휴유증과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과학, 즉 3차원적인 물질문명은 이제 그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예지는 이 절망을 넘어 새로운 활로를 찾는 또하나의 돌파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세상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검색사이트에는 유명한 예언가들의 이름이 뜨고 고대예언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예언 내용의 잘못된 해석으로 오류를 범하는 일들도 많다.

에언에서 말하는 어느 시간,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은 예언들에서 공통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왜 그런 일들을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가, 그 원인과 결과, 그 뒤에 이어질 일들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예언가의 정의와 예언에 대한 짧은 고찰


예언가는 신의 영감을 받은 계시자·해석자·대변자라고 한다.

서양 문화에서는 예언 현상을 분석할 때 고대 이스라엘의 예언 시기를 주요배경으로 삼는 경향이 있지만, 예언자 상(像)은 전세계 역사를 통해 나타난 수많은 계시에서 볼 수 있다.

예언자는 개인적인 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종교사역자들이나 종교지도자들과 다르다.

그는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고 '밖으로부터 온' 계시를 말한다.

예레미야처럼 '영감'(靈感)을 받아 메시지를 전할 수도 있고,

아이스킬로스가 묘사한 〈아가멤논 Agamemnon〉의 카산드라와 〈유메니데스 Eumenides〉의 예언자 아폴로처럼 자신을 도구로 삼아 말하려는 영적인 세력(신·영·성령)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플라톤은 예언자를 가리켜 무아지경에서 말하는 사람이라고 했고,

헬레니즘 시대에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도 이와 비슷하게 예언자란 '자신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연주하는 수금(竪琴)과 같다고 했다.

예언이나 카리스마(그리스어로 '신이 부여한 은사'라는 뜻) 상태는 자연적으로 생길 수도 있고, 명상, 신비주의적인 주문과 몸짓(예를 들면 밀교의 '만트라'와 '무드라'), 음악(〈열왕기하〉 3장 15절의 "그래서 수금을 뜯는 사람이 와서 수금을 뜯는 동안……야훼의 힘에 사로잡혀"), 북연주, 춤, 마취제 섭취 등 다양한 방법에 의해 생길 수도 있다.

예언자들은 자기들을 도구로 쓰고자 하는 더 큰 세력에 압도될 때까지 부름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히브리 예언자들 중 아모스·예레미야 및 무당이 되기 전의 많은 사람들).

점쟁이가 주로 사사로운 필요와 걱정거리에 대해 말하기 위해 객관적인 방법과 상징을 사용하거나 조작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영에 압도된 예언자는 보다 일반적이고 근본적인 뜻을 담은 메시지를 설명하면서 파괴적이든 개혁적이든 현실비판적 원칙과 규범을 외친다.

그는 자기가 속한 집단 전체(부족·민족)를 향해 외칠 수도 있고, 자기 메시지를 실현할 새로운 사회를 세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예언자는 종교창시자·개혁자, 분파 지도자(조로아스터, 마호메트, 그외 사람들)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막스 베버에 따르면 '이상적인' 예언자는 새로운 종교를 세우거나 혁명적 개혁을 도입하기보다는, 자기가 속한 사회 내부에서 신이 그 사회의 존립근거로 내려주었다고 스스로 믿는 규범에 비추어서 사회를 비판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갖는다. 그가 혁명가라 하더라도 자신이 혁명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결과 '예언적'이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바는 매우 넓다. 어디에 강조점이 있는가에 따라 신에게 사로잡힘, 무아지경, 영감을 받은 상태에서 하는 말, 앞날을 예언함, 환상을 봄, 윤리적인 열정, 열정적인 사회비평, 절대의무감, 천년왕국과 묵시적인 기대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 대부분의 현상과 인물들을 가리켜 예언현상과 예언자들이라고 불러왔으며, 그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는 몬타누스주의자들·오순절파·조로아스터·마호메트, 피오레의 요아킴, 사보나롤라, 토마스 뮌처, 야코프 뵈메, 조지 폭스, 조지프 스미스 등이 있다.

고대 중국의 현자(賢者)들의 도덕적 진실성과 하늘의 이법(理法)에 대한 심오한 존중에는 히브리인들의 예언과 비슷한 점들이 있으며, 〈농부의 불평 Peasant's Complaint〉으로 알려진 이집트 문서는 고대 이집트에 예언운동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간주되어왔다.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조차도 때로는 사회불의에 대한 열정적인 저항과 마르크스주의 자체의 종말론적 구조 때문에 예언적이라고 평가받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