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풍과 홍수, 폭설, 화산 폭발 같은 지구의 자연재해 앞에서 나약한 존재다. 하지만 인간의 삶을 쥐락펴락하는 지구도 우주의 재해 앞에서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다. 태양의 재채기 하나에도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동안 깊은 잠을 자던 태양이 일어나 기지개를 펴고 있다. 흑점이 관측되지 않는 태양활동 극소기를 마치고 태양폭풍이 활발한 태양활동 극대기로 접어들었다. 고비는 2013년 5월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태양에서 강력한 태양폭풍이 몰려와 대규모 정전사태와 함께 각종 통신 시스템이 마비되는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구 가장 바깥쪽에 있는 열권의 대기 밀도는 관측 역사 43년 이래 최저를 기록해 우려를 낳고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열권이 사라지는 이유도, 열권이 사라질 때 일어날 일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범인인 이산화탄소가 이번에도 말썽을 피운 건 아닌가 하고 짐작할 뿐이다.하늘의 재앙 앞에서 피할 곳은 없다. 하지만 담담한 마음으로 머리 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마주보면 하늘의 변화에 대처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8월 1일 새벽 2시 26분, 미 해양대기청(NOAA)의 우주날씨예보센터(Space Weather Prediction Center)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태양 표면에서 폭발(플레어)이 일어나면서 강한 X선이 방출되는 것이 관측됐기 때문이다. 곧이어 폭발 지점에서 발생한 플라스마 상태의 고에너지 입자가 지구로 향하고 있음이 파악됐다. NOAA는 바로 위성관제센터와 전력회사, 통신회사, 항공사 등에 이 소식을 알렸다. 위성은 계획된 스케줄을 취소하고 ‘안전모드’로 운영하라고 지시하고, 우주 비행사들에게는 안전한 장소로 대피할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지구로 닥칠 위험을 기다렸다.
3일 뒤인 4일 오전 2시 40분(세계시 기준 3일 오후 5시 40분), 초속 400km가 넘는 속도로 날아온 플라스마 기체가 지구 자기장을 뒤흔들었다. 태양에서 날아온 플라스마 입자들과 지구 자기장이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켜 일명 ‘자기장폭풍’이라 불리는 자기장 왜곡현상이 일어났다.
이런 현상은 12시간이나 지속됐다. 극지방에서나 볼 수 있던 오로라가 유럽과 북미 북부에서도 관찰됐다. 하지만 다행히 우려할 만한 재난이나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인공위성과 항공, 통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도 장애를 일으키지 않았다. 태양폭풍 때문에 1989년 퀘백 주 전역에서 일어난 대정전 사태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며칠 후 태양관측위성인 태양동역학관측위성(SDO)이 찍은 태양 플레어의 사진과 함께 태양폭풍이 있었음을 알리는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이 실렸다. ‘잠들어 있던 태양이 깨어나고 있다’.
2013년 태양폭풍 절정일 듯
지난 몇 년 동안 태양은 잠잠했다. 흑점이 관측되지 않는 날이 여러 날 지속됐다. 흑점의 수는 태양활동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보통 흑점의 수가 많을 때를 태양활동 극대기, 적을 때를 태양활동 극소기라고 지칭한다. 한국천문연구원(이하 천문연) 태양우주환경연구그룹의 김연한 그룹장은 “보통 평균적인 태양활동 극대기의 1일 최대 흑점수가 114개인데 비해 지난 주기에는 90개에 불과했다”면서 “특별히 태양폭풍도 없고 조용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태양활동이 2008년 12월 반환점을 찍었다. 흑점과 태양폭풍이 거의 없는 태양활동 극소기를 지나 태양활동이 왕성해지는 극대기로 옮겨가고 있다. 태양은 보통 11년 주기로 활동이 왕성했다가 조용해지기를 반복한다. 천문학자들은 다음 태양활동의 극대기를 2013년 5월로 보고 있다. 그런데 태양의 극대기를 준비하는 NASA의 분위기가 예년과 다소 다르다. NASA는 6월 8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우주기상 대응 포럼’에서 2013년 태양에서 강력한 태양폭풍이 엄습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대규모 정전사태와 함께 각종 전기와 전자 시스템이 마비되는 재앙이 일어날 수 있으니 이를 대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NASA의 태양권물리학부 담당책임자인 리처드 피셔 박사는 이날 “현재 태양은 표면폭발 활동이 비교적 잠잠하지만 2013년이 되면 강력한 플레어가 발생해 태양폭풍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보다 20배는 더 큰 경제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NASA는 왜 매번 반복되는 태양활동에 유난히 우려하는 걸까. 지난 태양활동 극소기는 100년 만에 흑점 수 가 가장 적은 시기였다. 혹시 태양활동 극소기가 최저점을 찍으면 다음 태양활동 극대기는 최고점을 찍는, 일종의 반동효과가 있는 걸까. 국내 천문학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태양활동에 이러한 반동 효과는 없다.
김 박사는 “2007년 4월까지만 해도 다음 태양활동 극대기의 시기와 규모에 대해 2011년 하반기쯤에 흑점의 개수가 140개가 넘을 것이라는 안과, 2012년 8월에 80개 정도가 될 것이라는 안이 있었다”며 “지난해 5월까지 태양활동을 지켜본 결과, 140개가 넘을 거라는 안이 쏙 들어갔다”고 말했다. 다음 극대기는 평균적인 태양활동 극대기보다 약할 것이라는 얘기다. 미 해양대기청도 다음 주기의 평균 흑점 수를 90개 정도로 내다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기장폭풍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고위도 지역이 아니라서 태양폭풍의 영향권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다. 태양폭풍으로 인한 자기장폭풍의 영향은 오로라가 발생하는 고위도 지역에서 주로 나타난다. 하지만 흑점의 수가 적다고 해서 태양폭발의 세기가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천문연 곽영실 연구원은 “흑점의 수는 플레어와 같은 강력한 현상이 얼마나 자주 일어날지 짐작할 수 있는 지표일 뿐 세기와는 상관이 없다”며 “점 수가 적더라도 얼마든지 센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전기와 통신에 대한 의존도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커진 점도 태양폭풍을 우려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우주환경과 전파 예보를 제공하는 회사인 (주)에스이랩의 오승준 대표는 “우리의 삶에서 통신과 전기를 없애면 살 수 있겠나”라고 반문하며 “한순간 모든 시스템을 무력화할 수 있는 태양폭풍을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 대표는 “자기장 교란은 고위도에서 잘 일어나지만 태양폭풍의 위력에 따라 중위도까지 내려올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며 “과거에 경험한 적이 없다고 어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 태도는 현재 상태에서 가장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소폭탄 수십억 개 폭발 에너지
그렇다면 지구를 암흑천지로 만들 수 있는 태양폭풍의 정체는 무엇일까. 태양폭풍은 태양물질이 거대한 힘에 의해 일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현상이다. 달이 태양을 가리는 개기일식이 있을 때 태양 주위에 희미하게 빛나는 부분이 태양의 대기인 코로나다. 코로나는 수소 원자가 분해되면서 만들어진 전자와 양성자, 그리고 극소량의 헬륨으로 이뤄져 있다.
코로나에는 플라스마와 자기장이 공존하고 있다. 태양은 마치 거대한 자석과 같아서 복잡한 자기력선을 만든다. 그런데 반대방향의 극성을 가진 자기력선들이 서로 만나면 거대한 폭발현상이 일어난다.
자기력선이 태양을 벗어나 뻗어나갈 때 코로나 물질도 함께 분출된다. 태양폭발의 대표적인 예가 태양 플레어다. 플레어는 매우 한정된 영역에서 단시간에 폭발적으로 일어난다. 에너지는 1메가톤(Mt) 수소폭탄 수십억 개에 해당할 정도로 강력하며 플레어가 폭발하는 순간 방출되는 물질은 1000만℃까지 가열된다.
또 다른 폭발은 코로나 질량 방출(Corona Mass Ejection)이다. 플레어와 마찬가지로 대규모의 자기적인 불안정 때문에 일어난다.
플레어가 엑스선이나 전자파를 방출하는 것에 비해 코로나 질량 방출은 전자나 양성자 같은 비교적 가벼운 대전입자를 대량 방출한다. 속도는 초속 200~2000km 범위에 있고 평균 초속은 400km이다. 음속의 약 수백~수천 배에 해당한다. 지구에 도달하는 데는 약 2~3일이 걸린다.
지구의 자기장은 태양풍을 막아 지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보호막은 태양풍과 상호작용하면서 고에너지 입자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 중 일부가 지구의 자기력선을 따라 극지방을 통해 지구 대기권 상층부로 들어온다. 이 입자가 대기권 내의 분자 또는 원자와 부딪히면서 빛이 나는 것이 오로라다.
문제는 고속 태양풍이나 고에너지 입자가 인공위성에 피해를 입히고, 나아가 지상에서 갑작스럽게 많은 유도전류를 만들어 전기 시스템 자체를 못 쓰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태양으로부터 나온 많은 양의 전하를 띤 입자(플라스마)가 지구에 도달하면 지구 자기장과 상호 작용을 일으키고, 이것에 의해 지구 자기장이 변형된다. 그리고 지구 자기장의 변형에 의해 지구표면뿐 아니라 땅속에도 유도전류가 생긴다. 송전선에 유도전류가 발생하게 되면 순간적으로 많은 전류가 흐르게 돼 전력시스템이 고장날 수 있다.
1989년 캐나다 퀘백시에서 일어난 대정전도 이런 이유로 벌어진 참사였다. 유도전류는 기름을 수송하는 송유관에도 영향을 미쳐 계기판을 오작동시키고 부식율을 높인다고 알려져 있다.
방송과 통신 불통, 휴대전화도 영향 받아
태양폭풍이 일면 지구의 통신시스템에도 장애가 발생한다. 장거리 통신은 전리층에서 반사되는 전파를 이용한다. 그런데 자기장 폭풍이 생기면 전리층에 교란이 생겨 전파가 비정상적으로 전달된다. 특히 선박-해안간 교신, 군사통신, 항공기에서 사용하는 3~30MHz 파장 대역(HF)이 취약하다. 항공기는 보통 지구정지궤도 위성을 이용해 공항과 통신한다. 하지만 남극이나 북극을 가로질러 비행할 때는 HF 파장을 사용한다. 위성은 북위 82˚ 이상에서는 신호가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양폭풍이 일 때는 극항로 노선을 포기하고 먼 항로를 이용해야 한다. 당연히 비행시간과 연료가 더 들어간다.
이동통신은 영향이 없을까. 오승준 대표는 “스마트폰이나 휴대전화는 자기장폭풍에 직접적인 영향은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위성과 접속할 때는 교신상태가 나쁘고 잡음이 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연한 그룹장은 “대형 플레어의 경우 기지국과 단말기 간에 통신 잡음이 증가하고 단말기 안테나에 잡음이 생겨 광범위한 통신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태양폭풍이 발생했을 때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것이 인공위성이다. 에너지가 높은 양성자가 인공위성을 그대로 통과해 전자소자를 손상시키고 소프트웨어에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 천문연 태양우주환경연구그룹의 이재진 연구원은 “10메가전자볼트(MeV) 이상의 고에너지를 가진 양성자, 즉 방사선은 위성의 외벽을 뚫고 들어가 안에 있는 반도체를 파괴한다”고 설명했다.
또 인공위성 주위에 플라스마 밀도가 증가하기 때문에 인공위성이 대전되기도 한다. 그런데 위성의 어느 한 곳이 특히 많이 대전돼 전위차가 커지면 전기방전이 일어나면서 위성의 부품이 손상된다.
태양 폭풍에 의해 한껏 부풀어 오른 지구의 대기도 문제다. 상층 대기층은 태양표면에 폭발현상이 있을 때 방출된 자외선과 X선을 흡수하면서 기체의 밀도가 높아진다. 그러면 기체가 인공위성에 부딪쳐 인공위성의 속도와 궤도를 바꿔놓는다. 궤도가 바뀐 위성은 안테나를 정확하게 지향할 수 없기 때문에 교신에 어려움이 발생한다. 또 낮은 고도를 도는 위성의 경우 지구 대기권에 진입해 일찍 수명을 다할 수도 있다.
1989년에 태양폭풍이 왔을 때, 미국 위성추적소가 1만 개가 넘는 위성의 궤도를 추적하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위험은 인공위성이 소형화되면서 더 커지고 있다.
인간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까. 지상에 거주하는 사람은 지구의 대기나 자기권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때문에 직접적인 위험은 거의 없다. 하지만 거꾸로 대기와 자기권으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외계에서 활동하는 우주비행사들은 치명적일 수 있다. 세포 속을 투과한 고에너지 입자는 염색체를 파괴해 암을 일으킨다. 에너지가 30MeV가 넘는 방사선을 많이 쪼이면 사망할 수도 있다.
극지역 상공을 비행하는 항공기 승객들은 상당량의 방사선 피폭에 노출될 수 있다. 이 경우 비행고도를 낮춰 방사능 피폭을 줄여야 한다.
지상에 있는 사람도 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지구의 중간 대기층에 진입한 양성자 같은 고에너지 입자는 기체 분자를 이온화시켜 대기 중의 오존을 파괴하는 화학 물질을 생성한다. 실제로 1982년의 태양 양성자 사건 때에는 오존 밀도가 일시적으로 70% 감소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더 많은 양의 해로운 태양 자외선이 지표면에 도달한다.
남는 전기 보내고 위험 시엔 아예 전력 차단
태양폭풍의 피해를 막으려면 태양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NASA는 태양 관측을 위해 꾸준히 우주기상 전용 위성을 쏘아올리고 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스테레(STEREO), SDO, 고성능우주성분탐사위성(ACE) 외에 2012년에는 방사선대 폭풍을 관측하는 방사선대폭풍관측위성(RBSP)을 더 띄울 예정이다. 스테레오는 한 쌍의 위성이 각각 태양의 반대편에서 표면적의 90%를 찍기 때문에 태양활동의 3차원 영상 재현이 가능하다. SDO는 고해상도의 사진을 거의 실시간으로 전송한다. 방사선대폭풍관측위성은 2기의 위성이 편대 비행하면서 밴앨런방사선대를 관측할 예정이다. 일본도 유럽연구진과 함께 HINODE 위성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은 미국 뉴저지공대와 함께 ‘한국형 태양전파폭발위치감지기’(K-SRBL) 개발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우주환경정보 서비스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김연한 그룹장은 “지난 9월 9일 우주환경 정보를 이용하고 있거나 잠재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는 사용자들을 모아 사용자들에게 좀 더 유용한 우주환경정보는 무엇인가에 대해 의논했다”며 “2013년 태양활동 극대기가 되기 전에 우주환경예보를 위한 준비를 끝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양폭풍 정보가 입수되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우선 전기가 통하는 모든 물건이나 시스템을 끄거나 안전모드로 둬야한다. 남는 전기는 여유가 있는 곳으로 보내거나 위급 시에는 아예 전력을 차단시켜야 스파크로 인해 장비가 망가지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미 해양대기청은 기초기반 시설을 담당하는 기술자들에게 미 해양대기청을 비롯한 우주기상예보를 하는 센터에 등록해 수시로 정보를 확인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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