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절대자 강세를 예고한 성인들 본문

세상이 변한다./현실로 다가오는 예언

절대자 강세를 예고한 성인들

세덕 2012. 3. 5. 15:15

절대자 강세를 예고한 성인들




상제님의 강세를 예고한 성인들


 
 진표 대성사 (732~?)
 진표 대성사는 지금부터 1300여년 전 통일신라시대의 고승이다. 불교역사상 도솔천의 천주님이신 미륵부처님을 직접 친견한 유일한 구도자로서, 미륵불의 한반도 강세를 약속받고 금산사 미륵전을 지어 이를 준비하신 분이다. 지금까지 우리 민족에 내려오는 미륵신앙의 원조가 되는 분이다.
 
 미륵부처님을 친견하다
 통일신라 경덕왕때의 도승 진표(眞表)는 12세때 출가한 후 미륵님을 신앙하다가 27세(760년)에 전북 부안군 변산에 있는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에 들어가 망신참법(亡身懺法)이라는 독특한 참회법으로 일심으로 구도한다. 그러자 21일 만에 천안(天眼)이 열리면서 미륵부처님께서 수많은 도솔천의 백성들을 거느리고 대광명 속에서 내려오시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
 
 도안이 열려, 닥쳐올 천지 대개벽의 환란을 내다본 진표 대성사는 온 우주 구원의 부처이신 미륵천주께서 한반도에 강세해 주실 것과 개벽기에 자신이 다시 태어나 인간구원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지극정성으로 기원한다.
 
 미륵신앙의 원조가 되다
 마침내 “밑 없는 시루를 걸어놓고 그 위에 불상을 세우라”는 미륵불의 계시를 받고, 4년에 걸쳐 금산사 미륵전을 완공한다. 그 뒤 금강산 발연사, 속리산 길상사(법주사)를 창건하고 평생을 미륵존불의 도와 복음을 전하는데 몸바쳤다.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미륵부처님 신앙의 원맥은 바로 진표 대성사로부터 내려온 것이다.
 
 
 마테오 리치 대성사 (1552~1610)
 카톨릭 예수회 신부였던 이마두(利瑪竇, Matteo Ricci) 대성사는 선교지 중국에서 동서양 문화를 번역하고 『천주실의』를 집필하는 등 동서문화 교류의 다리를 놓은 최초의 세계인이었다. 죽어서는 천상에서 상제님을 배알하고 이 세상에 모시고 내려온 지상최고의 공덕자가 된다. 오늘날 조상신을 거부하는 개신교에 반해, 카톨릭 문화에서 조상숭배의 제사문화를 인정하게 된 것은 모두 이마두 대성사의 노력 덕분이다.
 
 “이 길이 내 생애의 마지막 길”
 리치 대성사는 1571년, 19세때 명문대 법과공부를 접어두고 로마 예수회의 수사가 되었다. 20대 시절 고향을 떠나 인도로 전도여행을 떠나면서, ‘이 길이 내 생애의 마지막 길이다. 이제 땅에서는 부모도 형제도 영원히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며 결국 중국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카톨릭의 선교사로서 31세(1582년)때 중국에 건너간 신부님은 스님처럼 머리를 삭발하고 승복을 착용하고 전도한 지 13년만인 44세(1595년)에 이르러 중국의 남경에 들어간다. 거기서는 유학자처럼 생활하며 선교사로 활동했는데, 마카오에서 남경으로, 다시 북경(北京)으로 오기까지 20여년의 세월이 꿈결처럼 흘러갔다.
 
 마침내 중국예수회 관구장에 취임하면서 중국의 황제를 만나게 되고, 신부로서 평생의 소원대로 중국의 최고지도자 황제에게 카톨릭을 포함한 서양문화를 전해주게 된다.
 
 24절기를 체계화하고 시헌(時憲)이라는 호를 쓰다
 
 중국에 와서 동방문화를 접한 대성사는 동서문화의 다양성에 눈뜨고 동양문화에 대한 깊은 안목을 바탕으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구도자가 된다. 신부님은 중국생활에서 유럽과는 다른 또 하나의 찬란한 문명을 발견한다. 유교, 불교, 도가, 양자, 묵자 등 중국문화를 깊이 공부하여, 사서 등의 책을 라틴어로 번역해 서양에 알리기도 했으며, 반대로 서양의 학술, 천문학, 수학 등 당시에 싹트고 있던 근대문명을 중국에 소개하기도 했다.
 
 아세아(亞細亞), 구라파(歐羅巴) 등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용어들이 마테오 리치 신부님이 만들어낸 서양언어의 한자 표기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게다가 시헌(時憲)이라는 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양사람으로서 동양의 24절기를 체계화한 장본인이라는 것을 알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천주(天主)는 곧 상제(上帝)다”
 신부님은 예수회에 보낸 편지에서 ‘(종교문제만 제외한다면) 중국의 위대함은 아무리 보아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적기까지 했다. 그만큼 누구보다도 동양의 학문과 문화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신부님이 모시고 있는 천주(天主)와 유교의 하늘(天)과 상제(上帝)님 신앙이 맥이 통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저서 『천주실의』(天主實義) 서두에서 신부님은 ‘천주는 경서(經書)에 나오는 상제(上帝)와 동일한 분’이라 정의하였으며, 고대의 천(天)사상으로 돌아가 거기서 상제를 만나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오늘날 천주교의 ‘천주(天主)’라는 말은 리치 신부님이 지은 『천주실의』를 우리나라 실학자들이 국내에 도입하여 일반화된 말이다.


 
 




 
조상을 숭배하는 제사문화 인정
 또한 이마두 대성사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유교의 관습은 어떤 종교적인 행위라기보다 조상을 공경하는 예법으로 보고, 조상을 숭배하는 제사문화도 인정하게 된다(하지만 로마 교황청은 리치 신부님이 별세한(1610) 105년 후(1715)에 중국의 카톨릭 교인이 조상숭배를 비롯한 유교 제례에 참석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 세상에 상제님을 모시고 오다
 증산 상제님은 마테오 리치 대성사가 죽어서도 쉬임없이 인류의 문명발전에 봉사한 공덕이야말로 어느 성자나 철인, 과학자와도 견줄 수 없는 우주사적인 불멸의 공덕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사람들이 이를 모른다고 지적해 주셨다.
 
 리치 신부님은 동서양 문화를 통틀어 하느님의 나라를 지구상에 건설하고자 헌신함으로써, 천상 신명계에서 절대자 상제님을 배알하고,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는 상제님이 직접 이 세상에 내려가셔야 한다’며 상제님을 인간세상에 모시고 내려온 장본인이다.
 
 그러한 공덕의 결과로 상제님께서 후천의 새세상으로 인류를 인도하는 천지공사를 행하시면서, 리치 대성사를 신명계의 주벽(최고신)으로 임명하시게 된다.
 
 * 이마두의 공덕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나 천지신명들이 그를 떠받드나니, 이마두는 신명계(神明界)의 주벽(主壁)이니라. 항상 내 곁에서 나를 보좌하여 모든 것을 맡아보고 있나니 너희는 마땅히 공경할지니라. (道典 4:11)



 

 

 




 
최수운 대성사 (1824~1864)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대성사는 지금으로부터 140여년전 1860년, 경주 구미산 용담정에서 49일간의 피나는 구도 끝에 우주의 절대자인 상제님으로부터 직접 도를 받았다. 그리고 열석자 주문을 받아, 동학을 창도하고 후천개벽과 상제님의 지상강세를 선포하는 『동경대전』(한문)과 『용담유사』(한글)를 남겼다.
 
 
우주의 하느님으로부터 도를 받다
 조선이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받아 멸망의 어둠 속에서 비틀거리고 있을 때, 유학자 집안에서 서자로 태어난 최수운 대성사는 방랑생활을 하다가 을묘년(1855) 낯선 스님으로부터 신이한 책을 받는다. 그뒤 세상을 구제할 뜻을 품고 마침내 수도생활에 전심하게 된다. 그리하여 경신년(1860) 4월 5일 37세 되던 해, 우주의 절대자 상제님으로부터 직접 도를 받게 된다. 이른바 ‘천상문답사건’이라 불리는데, 이때 상제님으로부터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라는 13자 주문을 받았으며, 글을 지어 중생들을 가르치고 법을 펼치라는 성령의 말씀을 듣는다.
 
 
최수운 대신사가 전한 메시지의 핵심
 그리하여 한문기록 『동경대전(東經大全)』과 한글기록 『용담유사(龍潭遺詞)』를 지었다. 내용은 장차 우주의 통치자 한울님이신 상제님이 이 땅에 강세하시어 후천 오만년 동안의 무극대운의 새 세상을 여실 것이니 천주를 모시라는 시천주(侍天主)사상과 후천개벽이 온다는 개벽사상을 전했다. 이것이 최초의 동학의 가르침이었다. 한마디로 동학의 참된 메시지는 한울님, 상제님을 믿어 후천 5만년 무궁한 운수를 열라는 것이었다.
 
 
 
 
김일부 대성사 (1826~1898)
 동양의 6,000년 역철학사를 통틀어, 김일부 대성사는 역(易)을 완성하신 분이다. 음양오행원리의 고전인 주역(周易)의 모든 결론은, 김일부 대성사가 완성한 정역(正易)으로 귀결된다.
 
 정역을 통해 우주개벽의 이치를 전체적으로 드러내 밝혀 주었으며, 아울러 상제님이 사람으로 오심을 밝혔다.
 
 
천지일심을 가진 구도자
 성철 김일부 대성사는 날아다니는 학(鶴)체와 같은 풍모를 지녔다고 한다. 한평생 잠도 누워서 잔 적이 없다고 전해질 정도로, 평소의 생활태도가 엄격했으며 구도자다운 풍모를 갖고 있었다. 또한 진리를 위해서는 어떠한 역경과 고난도 헤쳐나갈 수 있는 불굴의 의지의 소유자였다.
 
 
 
정역 팔괘를 계시받다
 36세때, 스승이신 연담 이운규 선생이 ‘공자의 도를 이어 천시를 받들 것’이라며 전해준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이라는 글귀에 크게 깨달은 바 있었다. 이에 새로운 진리를 찾아 연구하고 심법수련과 수행에 피나는 노력으로 정진한지 18년만인 기묘년(1879) 54세 이후로, 눈앞에 팔괘의 획이 나타나더니 천지를 뒤덮었다. 3년 동안 이 괘상을 응시하던 대성사는 마침내 연구를 거듭한 끝에 「정역」을 완성하게 된다.
 
 
 
후천이 오는 이치를 우주원리로써 완결하다
 후천 우주대개벽의 신비경을 담은 정역(正易)에는, 1년 365 1/4일을 기록하는 선천 윤역이 1년 360일로 들어가는 정역의 시간대에는 지축이 바로 선다는 사실과, 이 천지의 시운을 타고 사람으로 오시는 상제님이 계시니 천지도 상제님에 이르서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깊은 구원의 섭리가 들어 있다.
 
 한평생을 정역의 완성에 바친 김일부 대성사는 1897년 생전에, 인간으로 오신 상제님을 논산 집에서 만나 뵙고서 이듬해인 1898년 에 영면하였다.
 
 상제님께서는 “일부가 내 일 한 가지는 하였다”하시고, “최수운은 내 세상이 올 것을 알렸고, 김일부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다”고 말씀하셨다.
 

 


    


                         20c 최대의 불가사의한 인물 강증산 상제님



 
 
*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미륵이니라. ” 하시니라. (道典 10:17:1)
 * 나는 옥황상제(玉皇上帝)니라.” 하시니라. (道典 2:12:3)
 * 동학주문에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이라 하였으니 나의 일을 이름이라. (道典 3:129:9)
 * 천지간의 모든 신명들이 인류와 신명계의 겁액을 나에게 탄원하므로 내가 천조(天朝)의 대신(大臣)들에게 ‘하늘의 정사(政事)를 섭리하라.’고 맡기고 신미(辛未 : 道紀 1, 1871)년에 이 세상에 내려왔노라.

  (道典 2:73:3∼4, 7)

증산 상제님은 인간으로 강세하신 우주의 참하나님

 지금부터 133년 전인 1871년, 천쪾지쪾인 삼계 우주를 통치하시는 주재자 하나님께서 이 땅 한반도에 강세하셨다. 한민족의 핏줄을 타고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성(姓)은 진주 강(姜)씨, 이름은 일(一)자 순(純)자, 존호(尊號)는 시루 증(甑), 메 산(山)의 증산(甑山)이셨다.
 
 9천년 역사를 지닌 선천 역사의 종주국인 우리 한민족은 우주의 주재자 하나님을 ‘상제(上帝)’라 부르며 신앙하여왔다. 상제(上帝)란 윗 상(上)자, 하나님 제(帝)자로서 천상(天上)에 계신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 더 이상이 없는 지존자 하나님을 부르는 한자 문화권의 호칭이다. 따라서 인간으로 강세하신 강증산 하나님을 강증산 상제님 혹은 증산 상제님이라고 부른다.
 
 천상의 깊은 곳에 계시며 이 대우주를 통치하시는 우주 주재자 하나님의 인간강세!
 
 이것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전환의 이 시대를 사는 지구촌 65억 인류에게 증산도가 던지는 충격의 제1 메시지이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당신의 정체와 인간 강세의 우주사적 배경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 이제 온 천하가 큰 병(大病)이 들었나니 내가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선경(仙境)을 건설하려 하노라. 나는 옥황상제(玉皇上帝)니라.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運)이라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하늘과 땅에 전란(戰亂)이 그칠 새 없었나니 그러므로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우므로 이제 이 상극의 운을 끝맺으려 하매 큰 화액(禍厄)이 함께 일어나서 인간세상이 멸망당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천지신명이 이를 근심하고 불쌍히 여겨 구원해 주고자 하였으되 아무 방책이 없으므로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호소하여 오므로 내가 이를 차마 물리치지 못하고 이 세상에 내려오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내가 큰 화를 작은 화로써 막아 다스리고 조화선경을 열려 하노라.
  (道典 2:12:1~10)

 
 증산 상제님은 31살 되시던 1901년, 상통천문(上通天文)과 하찰지리(下察地理)의 도를 뛰어넘어 인류사에 없던 중통인의(中通人義)의 대도를 이루셨다. 이로부터 상제님은 인존 하나님으로서 지상강세의 목적이신 천지공사(天地公事)를 9년 동안 행하셨으며 1909년 다시 천상의 보좌로 어천(御天)하셨다.
 
 상제님의 어천 이후, 천지대업의 종통맥을 이으신 태모 고수부님께서 최초로 교단을 개창하셨으며(1911년), 태모 고수부님의 선화(仙化) 이후 안운산 종도사님과 안경전 종정님으로 종통맥이 이어져 오늘날 상제님 대도진리의 본 면목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증산 상제님은 누구신가?

 
상제님은 선천 성자들을 지상에 내려보냈던 우주의 원 하나님
 1871년 인간의 몸으로 강세하신 증산 상제님은 누구신가? 상제님은 바로 공자와 석가와 예수 등의 선천 성자들을 지상에 내려보내셨던 우주의 주재자 참하나님이다. 상제님은 지상에 강세하시기 전에는 천상의 보좌에서 삼라만상을 섭리하고 계셨다. 이러한 상제님을 기존의 종교에서는 하나님, 미륵불, 옥황상제 등으로 불렀었다.
 
 
* 또 말씀하시기를 “목사가 믿는 하느님이나 중들이 가르치는 부처가 본래는 하나로되, 중생들을 그릇 인도하면 천지의 원 주인도 자리를 잡지 못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5:10:4)
 
 *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동학 신도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나니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각기 저의 스승이라’ 하여 따르리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보냈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2:43:1~5)

 
 우주 하나님의 인간 강세!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이 명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시(天時)와 지리(地理)와 인사(人事)의 세 가지 측면에서 알아봐야 한다. 왜 상제님은 우주 역사의 무수히 많은 시점 가운데 우리 시대, 지금부터 133년 전에 이 지상에 내려오셨는가? 과연 우리 시대가 역사의 어느 시점에 놓여 있는가? 또 우주의 절대자 상제님은 왜 지구상의 수많은 땅 가운데 동방의 끝 쪽에 있는 한반도에 강세하셨는가? 그리고 상제님은 왜 한민족의 핏줄로, 강(姜)씨 성으로 오셨는가? 이상의 세 가지를 살펴봐야 한다.
 


 
 
 
상제님은 왜 지금의 이 시대에 지상에 오셨는가?
 
- 우주일년의 가을개벽기에는 하나님이 지상에 내려오신다
 
 인간으로 오신 상제님은 인류역사 처음으로 우주 시간의 비밀을 밝혀주셨다, 바로 천지가 인간농사를 짓는 주기인 우주일년, 천지의 일년이다. 우주일년이란 129600년을 한 주기로 해서 천지가 생장염장(生長斂藏)의 법칙을 따라 인간 농사를 짓는 우주순환의 일주기를 말한다.
 
 지금은 우주일년 가운데 우주의 여름에서 가을로 전환하는 하추교역기, 다시 말해 우주의 가을이 열리는 가을개벽기이다. 가을이란 본디 성숙과 결실의 시대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오랜 희망과 꿈은 우주의 가을이라는 시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인류문명사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하추 교역기에는 반드시 우주의 절대자 하느님이 지구상에 강세하도록 법칙적으로 정해져 있다. 이는 기을 대개벽의 환란을 맞이하는 인류를 구원하고 성숙과 결실의 이상세계를 실현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상제님뿐이기 때문이다.
 
 증산 상제님은 인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지상에 강세하신 우주의 통치자 하느님으로서, 인류를 가을의 새 생명의 세계로 인도하는 분이다.
 
 증산 상제님은 1871년 신미(辛未)생으로 이 지상에 오셨다. 신미(辛未)의 두 글자 속에도 상제님 강세의 의의가 숨겨져 있다. 천간 신(辛)은 가을의 결실을 의미하고, 지지의 미(未)는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하추교역기에 화극금하는 우주의 대변국을 화생토, 토생금으로 중재하는 절대 중화의 10미토(未土)를 나타낸다. 60갑자의 원리로 볼 때 우주의 절대자 상제님은 반드시 신미생으로만 오셔야 한다. 이는 우주변화의 원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더욱 절실히 공감할 수 있다.
 

상제님은 왜 동방의 한국 땅에 강세하셨는가?
 
- 한반도가 지구의 혈이다
 
 사람은 하늘을 아버지로 삼고, 땅을 어머니로 삼아 천지부모의 품안에서 살아간다. 자연히 땅은 모든 생명을 기르는 생명력의 보고가 된다. 하지만 지구의 땅덩어리도 그 위치와 형국에 따라 각기 생명력이 다르다. 풀 한포기 없는 사막이 있는가 하면, 아름드리 나무들이 울창한 아마존의 밀림지대도 있다.
 
 왜 우주의 주재자 상제님이 지구의 수많은 땅 가운데 한반도로 강세하셨는가?
 
 이 문제를 전 지구 땅덩어리를 놓고 지리로써 설명해 주신 분은 오직 증산도의 안운산 종도사님이시다.
 
 종도사님께서는 한반도가 전 지구의 혈(穴)자리라고 말씀해 주셨다. 혈이란 쉽게 사람으로 비유하여 말하면 생식기와 같은 곳으로, 생명이 창조되는 에너지의 보고寶庫이다. 지도를 보면 전 지구의 5대양 6대주 가운데 오직 한반도가 중심 혈이다. 혈은 임금에 비유되며, 좌청룡 우백호는 임금을 보좌하는 신하에 비유된다. 일본은 좌청룡이며 중국은 우백호이다. 일본은 내청룡, 아메리카는 외청룡이며, 중국대륙은 내백호이며 아시아, 아프리카가 모두 만첩백호이다 . 지구의 기운, 에너지가 모두 한반도에 모여 있다.
 
 따라서 전 지구를 통틀어, 우주의 통치자인 상제님을 모셔올 수 있는 땅은 오직 한반도뿐이다. 한반도는 전 지구의 생명력이 모여 후천 오만년의 역사를 열어갈 혈자리이다. 이리하여 상제님이 한반도로 오시게끔 되어져 있는 것이다.
 
 








지도(地道)의 원리로 증산 상제님의 강세를 예언한 주장춘

 
 “산의 근원은 곤륜산(崑崙山)이니
 곤륜산의 본래 이름은 수미산(須彌山)이니라. …
 곤륜산의 제3맥이 동방으로 쭉 뻗어 백두산에 맺히고
 그 맥이 다시 남으로 뻗어 금강산을 수놓아 1만 2천 봉이 솟았느니라.
 그리하여 이 기운을 타고 증산(甑山)께서 오시나니
 이분이 천지의 문호인 모악산 아래에서
 결실의 추수진리(오도熬道 : 볶을 오熬)를 열어 주시나니
 그분의 도(道)는 ‘모든 진리를 완성’시키는 열매가 되리라.
 후에 그의 도문에서 금강산의 정기에 응해
 1만 2천 명의 도통군자가 출세하리라.”
 [주장춘(朱長春), 『진인도통연계(眞人道通聯系)』]
 


 
곤륜산 제1맥
 - 유발산(儒拔山) - 니구산(尼丘山) 72봉 - 공자(孔子) - 72현(賢)
 곤륜산 제2맥
 - 불수산(佛秀山) - 석정산(釋定山) 499봉 - 석가모니 - 499제자
 곤륜산 제3맥
 -
백두산(白頭山) - 금강산(金剛山) 12,000봉 - 증산 상제님 - 12,000 도통군자

 
 
 
상제님은 왜 한민족의 핏줄을 타고 강씨 성으로 오셨는가?
 
- 한민족이 인류문화의 모태민족이며 강씨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뿌리 성(姓)이다
 
  증산 상제님은 한민족의 혈통으로 한반도 땅에 강세 하셨지만 결코 우리 민족만의 하나님이 아니오 전 인류, 모든 민족, 지구촌 만 백성의 하나님이다. 또한 상제님은 지구에만 국한 되는 하나님이 아니요 전 우주와 신명계 모든 영역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다.
 
 그런데 이렇게 지존하신 상제님이 왜 한민족의 핏줄로 강세하셨는가? 또한 강씨 성으로 오셨는가?
 
 상제님이 한민족으로 오신 것은 한민족이 선천 역사의 종주민족이며 한민족을 바탕으로 후천 5만년 새 문화가 개창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현재 한민족의 역사가 너무도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어 기존 관념에 사로잡힌 보통 사람으로는 금방 공감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다. 상제님은 인류문화의 종통과 조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바가 있다.
 
 
* 應須祖宗太昊伏인데 何事道人多佛歌오
  응수조종태호복 하사도인다불가
  모름지기 선천문명의 조종(祖宗)은 태호 복희씨인데
  웬일로 도 닦는 자들이 아직도 부처 타령만 하느냐!
  (道典 5:303:1~5)

 

 태호 복희 씨는 한민족의 조상으로 지금부터 5700여 년 전의 분이다. 주역(周易)을 창시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전 인류문화가 비롯되었다. 한편 태호 복희 씨는 인류역사 최초로 성(姓) - 풍(風)씨 - 을 가졌던 분이다. 하지만 바람 풍가의 풍씨는 대를 잇지 못하고 중간에 절손(絶孫)이 되었다.
 
 따라서 현존하는 성씨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성씨가 강(姜)씨이다. 상제님께서는 강씨 성으로 오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세상에 성(姓)으로 풍(風)가가 먼저 났으나 전하여 오지 못하고 다만 사람의 몸에 들어 체상(體相)의 칭호로만 쓰이게 되어 풍신, 풍채, 풍골 등으로 일컫게 되었을 뿐이요 그 다음에 강(姜)가가 났나니 ‘강가가 곧 성의 원시’라. 그러므로 이제 개벽시대를 당하여 원시로 반본되는 고로 강가가 일을 맡게 되었느니라. (道典 2:37:2~5)
 

 천지의 가을철이 되면 만유생명이 뿌리를 찾아 근본으로 돌아간다. 이를 원시반본이라고 한다. 상제님이 강씨성으로 오심도 이러한 원시반본의 천리에 의해서이다.


 



 

우리나라는 지구의 핵, 우리나라 문화는 인류문화의 모태

 
- 안운산 종도사님 말씀 -


 



 증산도는 종교가 아니다. 새 문화 새 틀을 얘기하자니 쉽게 종교라고 하는 게지, 본질적으로 증산도는 종교가 아니다.
 
 증산 상제님은 만유를 주재하는 상제님으로서, 천상 보좌에서 우리나라 땅에 내려오셨다. 허면 어째서 이 넓은 지구상에서 꼭 우리나라에 오시게 되었느냐?


 
 우선 지리학상으로 볼 때, 우리나라가 지구의 원 고갱이다, 속고갱이.
 
 어째서 그러냐? 그 자세한 얘기는 할 수가 없고,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리나라가 지구의 중심이다.
 
 지정학상으로 따져보면, 지구의 축이 곤륜산인데 거기서부터 지맥이 뻗어나와 저 만주 요동 700리를 결인結咽했다. 맺을 결 자 목구멍 인 자. 그걸 목구멍 인咽 자 목구멍 후喉 자, 인후목이라고 한다. 사람도 이렇게 목이 있어야 하듯이, 지리라는 것도 인후목이 있어야 생기는 법이다.
 
 지맥地脈이 저 요동 700리 평지결인平地結咽을 하고는 떡 하니 백두산을 세워놓았다. 그러고서 우리나라 금수강산 삼천리가 생겼는데,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일본열도가 좌측에서 바짝 감싸주고 있다. 그게 바로 내청룡이다. 날씨 좋은 날 부산 태종대에서 건너다보면 구주가 다 뵌다.
 
 그러고 저 아메리카 대륙이 외청룡이다.
 
 또 중국, 싱가폴까지가 내백호이고, 저 아프리카 대륙에 한 7억 인구가 살고 있는데, 그게 외백호다. 대만해협이 물 빠지는 파破고.
 
 저 일본 구주서부터 대만까지가 연륙돼 있다. 높은 데는 육지가 되고 깊은 데는 물 속으로 묻혔지만, 물 속을 조사해보면 땅이 연결돼 있다. 그래서 구슬을 꿴 것 같다고 유구열도琉玖列島라고도 했고, 놋줄 모양 연결됐다고 해서 충승도沖繩島라고도 했다.
 
 그러고 저 호주가 안산案山이다.
 
 시간이 없어서 자세하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잔주를 붙이는 것이다.
 
 이렇게 지정학상으로도 우리나라가 지구의 핵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 문화가 인류문화의 모태다.
 지금 인류역사의 문제가 어떻게 돼 있느냐?
 
 기록에 남아 있는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금년 임오壬午년이 9,201년 되는 해다. 우리는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이 돼서 이런 얘기를 하면 아무도 곧이 듣질 않는다. 아, 단군도 부인하는 세상 아닌가.
 
 혹 단군 국조는 부인한다 해도, 태호 복희 씨가 주역을 썼다는 것은 부인 못 할 것이다.
 
 태호 복희 씨는 단군 이전에 사신 분이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5,600년 전 분이다. 태호 복희 씨가 시획팔괘始劃八卦를 했다, 비로소 팔괘를 그었다 하는 것은 어지간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건 무식한 애들도 어른들 하는 소리를 들어서 상식적으로 다 아는 얘기다.
 
 태호 복희 씨가 주역을 만들었다. 주역이라는 것은 인류문화의 모태가 되는 문화다. 주역 팔괘는 음양오행 원리 아닌가? 1·3·5·7·9는 양이요, 2·4·6·8·10은 음이요, 일건천一乾天, 이태택二兌澤, 삼리화三離火, 사진뢰四震雷, 오손풍五巽風, 육감수六坎水, 칠간산七艮山, 팔곤지八坤地, 이게 아주 인류문화의 시원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전 인류가 자기네 나름대로 알파벳도 만들고, 여러 가지 문화를 일으켜 발전시켜 온 것이다.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상으로나 대우주 천체권이 형성될 때부터 우주가 개벽을 할 때는 우리나라에 절대자가 오셔서 매듭을 짓는다 하는 게 아주 틀로써 정해져 있다.
 
 (도기 132년 양력 5월 22일 진주 개벽대 강연회 말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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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 상제님의 생애

 증산 상제님께서 지상에 강세했던 19세기 후반의 세계 정세는 인류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위기와 전환의 시대였다. 당시 세계는 힘의 패권을 앞세워 약소국을 잔인하게 짓밟는 제국주의의 극성기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식민지 확장에 혈안이 되어 있던 강대국의 침략을 받아 깊은 신음소리를 내며 처절하게 망해가고 있을 때였다.
 
 동아시아의 조그만 나라 조선의 운명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등 열강들이 침략의 손길을 뻗쳐와 국가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이 위태로웠다. 나라 안 사정 또한 지극히 어려웠다. 이미 왕조 5백년의 말기로 접어들어 탐관오리들의 매관매직과 가렴주구(苛斂誅求)가 극에 달해, 자연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유리걸식하는 자와 도적이 되는 자가 늘어나고, 곳곳에 민란이 일어나며, 전염병이 창궐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불안감이 팽배해 있었다.
 
 
 
상제님이 오신 시간대와 장소(도기 원년, 1871년)
 이러한 인류역사의 대 전환기에 상제님은 1871년 음력 9월 19일,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지금의 전북 정주시 덕천면 신월리)에서 탄강하셨다. 상제님이 태어나신 마을 객망리(客望里, 손바래기)는 상제님이 탄강하기 전에는 선망리(仙望里, 하늘의 주를 기다리는 마을)라 하였고, 어천하신 뒤에는 신월리 신기(新基)마을 곧 새터로 고쳐 불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상제님의 아버지 되시는 분은 강흥주(姜興周)로 얼굴이 호상(虎相)이고 음성이 우렁찬 천하의 장사였으며 농사를 지어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고 계셨다. 상제님의 어머니 되시는 분은 권양덕(權良德)으로 용모가 단아하시고 붕어를 잡아오면 고기의 배를 가르기 어려워 할 정도로 성품이 선하시고, 천성이 조용하시고 남의 말을 하지 않는 분이셨다.
 









 
 
생명 살리기에 힘쓰시고 천지에 대한 혜각이 열리셨던 어린 시절
 어릴 적 상제님은 마당 구석에 화초를 심으시고, 밭둑에 나무를 즐겨 심으셨으며, 미물곤충이라도 위기에 빠진 생물을 보시면 힘써 구하셨다. 여섯 살 되시던 해에는 풍물굿(농악)을 보시고 혜각이 열리셨다.
 
 이 해에 부친께서 훈장을 구하여 아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는데, 하늘 천(天) 자와 땅 지(地) 자는 집안이 울리도록 큰 소리로 따라 읽었으나 그 뒤로는 따라 읽지 않으셨다. 훈장이 아무리 타일러도 끝내 읽지 않으니 부친이 안으로 불러들여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하늘 천(天) 자에 하늘 이치를 알았고, 땅 지(地) 자에 땅 이치를 알았으니 더 배울 것이 어디 있사옵니까?”라고 말씀 하셨다.
 
 일곱 살 되시던 하루는 어느 글방에서 놀랄 경(驚) 자 운(韻)을 받아 다음과 같은 글을 지으시어 천지의 주재자이신 소년 상제님의 기개를 나타내셨다.
 
 
 
遠步恐地坼이요 大呼恐天驚이라
 멀리 뛰려 하니 땅이 무너질까 두렵고,
 크게 소리치려 하니 하늘이 놀랄까 두렵구나.
 (道典 1:15:9)

 
 
 
머슴살이와 산판꾼의 삶을 체험하셨던 10대 청소년 시절
 증산 상제님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집안이 워낙 가난해 14~17세에 학업을 중단하고 사방을 주유하셨는데 이때 상제님은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도 하고 산판에서 나무를 베는 벌목꾼 일도 하시며 고통받는 하층 백성들의 삶과 고통을 몸소 체험하셨다. 그후 이곳저곳으로 유랑생활을 하다가 집에 돌아와 수년동안 객망리 시루산 상봉을 주야로 오르내리며 공부하셨다. 상제님은 이때 당신의 호를 마을 뒷산의 이름을 취하시어 증산(甑山)이라 하셨다.
 
 상제님의 존호 증산(甑山)은 시루 증(甑), 뫼 산(山)으로 천지의 가을을 맞아 인류문화를 성숙시킨다는 깊은 의미가 들어있다.
 
 
 
실패로 돌아가는 갑오 동학혁명을 지켜보시며 광구천하의 큰뜻을 정하시다
 24세 되시던 갑오년에 태인 동골 사람 전봉준이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케 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동학신도들을 모아 혁명을 일으키니 온 조선 천지가 들끓었다. 하지만 혁명은 30만 명이 넘는 농민이 비참하게 죽음을 당하며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그후 세상 인심은 날로 악화되고 관리들은 더욱 포악해져 백성은 고난과 궁핍 속에서 안도할 길을 얻지 못해 불안과 두려움이 온 사회에 가득했다.
 증산 상제님은 실패로 돌아가는 동학혁명을 지켜보시며 동서양의 온 천하가 날로 그릇됨을 깊이 근심하시고, 의연히 세계 인류를 건지시려는 광구창생의 큰 뜻을 구체화하기 시작하셨다.
 
 
 
3년 동안 천하를 유력하시며 만상을 둘러보시다
 27세 되던 정유(도기27, 1897)년에 이르러 광구천하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해 먼저 유불선 음양참위를 비롯한 모든 글을 읽으시고 “이것이 천하를 광구하는데 일조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세태와 인정을 체험하기 위해 이 해 가을 천하 유력의 길을 떠나신다.
 
 이로부터 상제님은 온 몸으로 세상 인민들의 삶을 직접 체험하시니 맨발로 먼 길을 걸으시고, 풀밭에서 노숙하시고, 인가에서 걸식하시고, 굶기도 자주 하시며 몸소 세상 만상(萬相)을 둘러보고, 인간의 온갖 고통을 둘러보셨다.
 
 유력하시던 어느 날 개울가를 지나다, 배가 고파 개울가에서 드러누워 있는 어느 부녀를 보셨다. 딸이 물새우를 잡아 아비의 입에 넣어주니 그 아비는 다시 꺼내 딸의 입에 넣어주고 있었다. 상제님께서 그 광경을 애처로이 바라보며 슬픈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어서 베풀어 저런 불쌍한 창생들을 살려야 하리라. 저렇게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널리 구하리라.”
 
 이렇게 수년동안 돌아다니며 민심과 풍속을 살피고 명산대천을 관찰한 뒤 30세 되던 해에 고향으로 돌아오셨다. 그리고 객망리 본댁에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공명첩과 교지를 불사르며 만류하는 부모와 친족들에게 “모든 것이 나로부터 새롭게 된다”고 선언하셨다.
 
 
 
1901년, 31세에 중통인의(中通人義)의 도를 이루시고 천지대신문을 여시다
 31세 되던 신축(道紀31, 1901)년에 이르러 “이제 천하의 대세가 종전의 알며 행한 모든 법술로는 세상을 건질 수 없다”고 생각하시고 비로소 모든 일을 자유자재로 할 조화권능이 아니고서는 광구천하의 뜻을 이루지 못할 줄을 깨달으시고 수도에 더욱 정진하셨다. 6월초 마을 뒷산 시루산에 올라가 14일 동안 수도하시고 6월 16일 다시 전주 모악산 대원사 칠성각으로 가서 도를 닦으셨다. 이때 대원사 주지 박금곡(朴錦谷)이 상제님을 천신(天神)으로 대접하고 공경하며 모셨다.
 
 
 대원사에서 수도하신 지 스무 하루 만인 음력 7월 7일, 천둥과 지진이 크게 일어나고 상서로운 큰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모든 마(魔)를 굴복시키고 중통인의의 도를 이루셨다. 이로부터 삼계대권을 주재하는 인존천주님의 자리에서 천지대신문을 여시고 우주의 조화권능을 뜻대로 행하기 시작하셨다.
 
 
 
후천 오만년의 새 천지질서를 짜는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시(1901~1909) 천상의 보좌로 어천하시다
 상제님은 31세 되시던 신축(辛丑, 1901)년부터 39세 되시던 기유(己酉, 1909)년까지 9년 동안, 선천 상극의 운을 끝막고, 후천 상생의 새 천지를 개창하는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집행하셨다.
 
 천지공사란 선천 5만년 역사를 심판하고, 가을 개벽기에 인류를 구원하여 후천 5만년 새 천지를 창조하는, 인간으로 강세하신 상제님의 인간과 신명 구원의 대 성업(聖業)이다. 증산 상제님의 모든 진리는 천지공사로 통한다. 이는 상제님 지상강세의 목적이 천지공사를 집행하시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보는 일이 한 나라의 일에 그칠진대 어렵지 않지마는 천하사(天下事)인 고로 이렇듯 더디노라.” 하시니라. (道典 5:321:1)
 쪻 이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 물샐틈없이 도수를 짜 놓았으니 제 한도(限度)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道典 5:320:1~9)

 
 상제님이 인간의 몸으로 계시던 당시 인존 상제님을 추종하는 영광을 입어 천지공사에 수종들은 지상의 성도(聖徒)들은 수십 명에 이르며, 불치의 병고침을 비롯한 인생사의 크고 작은 고통을 끌러내는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부지기수였다.
 
 선천 상극의 우주를 후천 상생의 새 천지로 돌려놓으시는 천지공사는 인간으로 강세하신 상제님의 인류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봉사와 대속의 삶 속에서 이루어졌다. 상제님은 1909년 음력 6월 24일 천지공사를 마치시고 다시 천상의 보좌로 어천(御天)하셨다.
 


 

 

 



김구선생의  『백범일지』에 나타나는 100년전 증산 상제님의 성적(聖蹟)

 
 김구 선생의 자서전인 이 『백범일지』의 상권에서 「우리 집과 내 어릴 적」 부분을 펼쳐보면, 김구가 과거시험에 대한 회의를 품고 돌아온 후 동학에 입문하려 할 즈음의 기록에 이런 내용이 보인다.
 
 
● ”그러할 즈음에 사방요언괴설(四方謠言怪說: 사방의 뜬소문과 이상한 말)이 분(紛: 어지러움)한데, 어디서는 이인(異人: 이상한 사람)이 나서 바다에 떠다니는 화륜선(火輪船)을 못 가게 딱 붙여놓고 세금을 내어야 놓아보낸다는 둥, 불원(不遠)에 정도령이 계룡산 도읍을 하고 이조국가는 없어질 터이니 밭은목에 가서 살아야 제2세 양반이 된다고, 아무개는 계룡산으로 이사를 하였느니 하는 중이라. …” (직해본, 집문당)
 
 여기서 이인(異人)으로 표기되어 있는 분이 바로 ‘증산 상제님’이시다. 이 소문의 발원이 된 사건은 계묘년(1903년) 늦여름 증산 상제님께서 군산 바닷가에 가시어 조화의 대권능을 보여주신 일을 이름이다.
 
 당시 이 사건을 두고 소문이 세간에 꽤 퍼졌었던 모양이다. 저 멀리 황해도 해주의 김구 선생 귀에까지 들어갔을 정도니 말이다. 소문의 주인공이 강증산 상제님인 줄은 세상 사람들도, 김구 자신도 몰랐던 것 같다.
 
 김구 선생(1876년생)은 당시(계묘년, 1903년) 나이가 28세였을 텐데 1947년에 이 책이 출간된 것을 감안하면, 연대를 착각하여 청소년시절에 갖다놓은 것 같다.
 
 
 
● 계묘(1903)년 늦여름 꽃이 질 무렵에 상제님께서 형렬과 호연을 데리고 군산항에 가시어 공사를 보시니라.
 
  하루는 부두에 나가셨는데 저 앞으로 커다란 윤선이 지나가거늘 상제님께서 “너희들, 게 섰거라.” 하고 땅이 흔들릴 듯이 소리를 지르시니, 윤선에서 한 사람이 “어떤 놈이냐. 이리 와 봐라.” 하는지라.
 
  이에 상제님께서 가는 배를 못 가게 붙들어 놓으시고 물위로 걸어 배 앞까지 가시어 훌쩍 뛰어오르시니, 갑판에 나와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아이구 세상에. 조각배를 타고 와야 여기를 올 수 있는데 물위를 걸어오다니….” 하고 말을 잇지 못하고, 상제님께 ‘이리 오라.’고 소리쳤던 사람은 “당신이 사람이오, 무엇이오?” 하거늘 상제님께서 “무엇은 어디가 무엇이냐.” 하며 따귀를 한 대 때리시니 물로 떨어져 머리만 물에 박힌 채 거꾸로 서는지라. 이에 상제님께서 그 사람 발바닥을 밟고 서서 계속 구르시며 노래를 부르시니라. (道典 5:39)

 
“어디에는 이인(異人)이 나타나 바다에 떠 다니는 기선(汽船)을 못 가게 딱 붙여놓고 세금을 내야 놓아준다. …” (돌베개)
 “어디서는 진인이 나타나서 바다에 달리는 화륜선(火輪船-汽船)을 못 가게 딱 붙여 놓고 세금을 받고야 놓아 주었다는 둥 …” (교문사, 황성문화원, …)
 “어디서는 진인(眞人)이 나타나서 바다를 달리는 화륜선을 못 가게 딱 붙여놓고 통행세를 받고야 놓아주었다는 등 …” (하나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