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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지는 동북아, 격랑에 휩쓸리는 한반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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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지는 동북아, 격랑에 휩쓸리는 한반도

세덕 2012. 12. 27. 16:55

거세지는 동북아, 격랑에 휩쓸리는 한반도

미국 ‘글로벌 호크’ 한국 판매 중국 견제 겨냥… 중·일 갈등에 국수주의 일본총리 등장

거세지는 동북아, 격랑에 휩쓸리는 한반도
[정상모의 흥망성쇠] 미국 ‘글로벌 호크’ 한국 판매 중국 견제 겨냥… 중·일 갈등에 국수주의 일본총리 등장

동북아시아·태평양 지역 6개국들의 권력재편이 끝났다. 남한에서는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통한 안보를, 북한에서는 강성대국 노선을 강조하는 지도자들이 등장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기의 임기를 시작하게 됐고, 중국과 러시아, 일본에서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권력체제가 들어섰다.

올해 동북아 영토분쟁을 격화시킨 민족주의와 강경한 보수 세력의 대립과 갈등이 우려되는 권력재편 구도다. 이런 우려가 벌써부터 현실로 나타났다.

미국 의회가 지난 21일 ‘2013년 국방수권법안’을 통과시키자 중국이 이에 정면으로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중국을 겨냥한 법안의 중국 관련 조항 때문이다.

중국 관련 조항에서 미국은 중국과 일본이 전쟁 일보 직전까지 다투었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가 미국의 일본 방위 의무를 정한 미․일 안보조약 제5조의 적용대상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문제의 열도에 대한 일본의 행정관할권을 인정한다는 점도 명시했다. 미국이 일본 편을 들어 개입하겠다는 뜻 아니겠는가.

게다가 미 의회는 대만에 F-16 C/D 전투기나 비슷한 성능의 신형 전투기 판매를 통해 대만의 전투력 증강을 미 행정부에 요구했다. 중국이 아킬레스건처럼 예민하게 여기는 문제들을 국방수권법안이 건드린 셈이다.

중국 외교부는 “댜오위다오는 중국 고유의 영토로서 미·일 안보조약이 중국 등 제3국의 이익을 해쳐서는 안 되며, 타국 간 영토분쟁에 개입해서는 더욱 안 된다”고 법안을 비판했다. 어떤 국가든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강조했다.
 

   
미국이 우리나라에 4배나 비싼 가격에 팔려고 하는 무인 정찰기 글로벌 호크.

미국 국방부가 지난 21일 한국에 4대의 글로벌호크를 팔기로 했다고 의회에 통보한 것도 중국은 못마땅하게 여길 게 뻔하다. 미국이 글로벌호크로 중국을 더욱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호크는 작전 반경이 3천km나 돼 북한 전역은 물론 서울에서 1천km 거리인 베이징을 포함해 중국의 상당 지역을 손바닥 보듯 감시할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괌이나 오키나와 기지보다 훨씬 가까운 위치에서 중국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지난 10월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 합의로 늘어난 한국의 탄도미사일 사거리 800km만 해도 중국 최대 도시인 상하이는 물론, 동북부의 중거리 미사일 기지인 퉁화, 덩사허, 이두까지 사정권에 두는 거리다. 제44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 직후 리언 파네타 미국 국방부 장관이 “한국과 미국이 미사일방어를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밝힘으로써 한국이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제에 편입되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더구나 미국의 한·미·일 미사일 공동방어체제 구상에 따라 한․일 군사협정 체결이 추진되기도 했었으니, 중국은 미국이 이번 국방수권법안이나 글로벌호크 한국 판매 등으로 중국 포위와 견제 전략을 바짝 조이는 것으로 보지 않겠는가. 중국의 시진핑 총서기가 공개적으로 미국에게 전략적 경쟁이 아닌 협력의 ‘신형 대국관계’를 요구한 터라 이번 사태의 추이가 주목된다. 미국과 중국이 본격적으로 전략적 경쟁을 벌이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동북아 정세의 주도적 요인으로 미․중 간 갈등 관계의 심화는 중·일 간의 대립 격화 등 동북아의 격랑으로 이어진다. 영토나 역사 문제에서 국수적 민족주의로 정치적 지위를 높여 일본 총리로 다시 등장한 아베의 일본 정부가 동북아 격랑의 변수다.

‘극우’가 포진한 아베 내각이 당분간은 대지진 복구와 경제재생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겠지만, 내년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번 총선에서 재미를 본 배타적 민족주의 정서의 분출을 정략적 의도를 갖고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미·중 간의 갈등이 심해질 경우 이에 편승한 일본의 도발로 일본과 한국·중국 등과의 영토나 역사 분쟁이 올 해 못지않게 격렬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미·중 간 갈등 구도에 휩쓸리거나 이에 앞장서기보다는 이를 완화하거나 해소하는 지혜와 노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한반도가 분쟁으로 인한 동북아 격랑의 중심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시급한 과제는 남북관계의 개선이다.
 

   
대만 어선이 영토 분쟁 중인 동중국해의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 열도) 인근에 접근하자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왼쪽)이 물대포를 쏘며 영해 진입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남북 간 신뢰가 쌓이고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면, ‘비전 코리아프로젝트’를 본격화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조건이 충족되면, 노태우, 김영삼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2단계인 한민족 경제공동체를 실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당선인의 대북 정책 구상에는 남북 간 신뢰 조성과 북한의 비핵화를 이룰 구체적인 방안 제시가 없다. 이명박 정권이 ‘비핵·개방 3000’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의 ‘선 핵포기’를 요구한 것처럼, 박 당선인도 북한이 진정성이 있는 조치를 먼저 취해야 한다는 것인가.

아무리 좋은 장밋빛 구상이라도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이라면, 실효적 가치가 없다. 실효성 없는 요구에만 집착해 엄중한 기회를 놓치고 문제만 더욱 악화시켜 자칫 한반도의 위기를 맞게 되면 어찌 할 텐가.

북한 쪽 입장을 대변해 온 <조선신보>는 한반도의 대립 구도 해소와 관련해 남한의 새 정권의 대북정책이 중요한 변수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면 북한이 언제든 화답할 준비가 돼 있다는 내용의 <노동신문>의 글을 상기하며 남한과 미국의 대북정책에 따라 북한이 유화적 태도를 취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새 국무장관으로 존 케리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명함에 따라 미국의 대북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주목되는 판이다. 케리 지명자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에 비판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략적 인내’가 ‘전략적 무관심’이 돼서는 안 된다”며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주장함은 물론, 군축·정전협정의 대체와 통일문제까지 논의할 뜻이 있음을 밝히기도 했었다.

동북아의 격랑과 한반도 위기냐, 아니면 이를 벗어날 기회의 단초를 마련하느냐 엄중한 선택의 시점이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국제적인 제재가 어떻게 결정되느냐가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강경한 맞대응의 악순환 끝에 벌어질 북한의 제3차 핵실험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태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의 합의다. 문제의 관건은 사태의 당사자인 한국 정부의 선택과 의지다.

동북아의 격랑을 헤쳐나가야 할 주체는 남북한이다. 동북아의 위기는 한반도의 위기이면서 또한 한반도의 위기가 곧 동북아의 위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