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한국고대사학회의 고구려비 학술발표회에서 토론중인 중국 학자들. 왼쪽이 쑨런제 지안박물관 연구원이며 한사람 건너가 겅톄화 퉁화사범학원 교수다. |
‘지안 고구려비’ 토론회
“광개토왕때 건립” “장수왕때 건립”엇갈린 주장하며 “개인 의견” 강조
비석글 조작설엔 “근거 없다” 반박
고대사학회, 직접 실물 분석하기로 “비석은커녕 탁본 실물도 못 봤어요.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입니다. 우리는 불리한 게임을 하는 겁니다.”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가 촌평한 대로였다. 지안 고구려비를 둘러싼 한·중 학자들의 토론은 내내 겉돌았다. 비석 실물을 연구한 중국 학자들은 질문을 가려서 받았다. 대부분의 답변도 “개인 의견일 뿐”이라고 토를 달았고, ‘동북공정’과 연관된 질문에는 입을 닫았다. 지난해 7월 발견 이래 국내 최고의 고구려 비석 여부를 놓고 논쟁해온 지안 고구려비에 얽힌 궁금증은 10시간 가까운 토론에도, 속시원히 풀리지 않았다. 13일 오전 9시부터 서울 고려대 운초우선교육관에서 열린 한국고대사학회의 지안 고구려비 학술 발표회는 청중이 방청석 200여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시작됐다. 이날 자리에는 최근 중국 쪽의 지안 고구려비 보고서 작업을 주도한 겅톄화 퉁화사범학원 교수, 쑨런제 지안박물관 연구원이 나와 비 건립 연대를 광개토왕 때와 장수왕 때로 각각 달리 지목한 논고를 ‘개인 견해’로 발표해 눈길을 모았다. 비문 글자의 판독 내용과 성격 등에 대한 한·중 학자들의 6개 주제 발표에 이어 오후 3시께부터 열린 종합토론에 관심이 쏠렸다. 건립 연대를 둘러싼 논란을 비롯해 국내 일부 학자들이 제기한 비석 위조설, ‘동북공정’과의 연관성 등을 놓고 논의가 이어졌다. 겅톄화·쑨런제는 시종 지안 고구려비가 한나라 이래 중국 대륙 왕조와의 밀접한 영향 관계에서 나온 것임을 강조했다. 겅톄화는 “고구려는 광개토왕 때 중국 중원의 비석양식을 답습해 처음 비석을 만들었다”는 견해를 폈다. 두 학자는 최근 국내 학계에서 제기된 비석 명문 조작설은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함께 비석을 연구한 동료인 장푸유 지린성 사회과학원 부원장이 비 건립 연대를 장수왕 때인 427년 정묘년이라고 주장한 견해를 최근 <중국문물보>에 발표한 데 대해서도 “장푸유한테 직접 물어보라”고 즉답을 피했다. 취재진은 보고서에서 고구려인의 기원으로 중국계 고이족을 언급한 배경을 묻는 서면 질의서도 냈으나, 이들은 답변하지 않았다. 토론회 진행을 맡은 노태돈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겅톄화는 고이족 기원설에 따르지 않고 중국 요서지역 고대 홍산문화를 만든 사람들이 고구려인의 기원이라는 지론을 밝힌 바 있다”며 “그의 견해와 다른 학설이 보고서에 들어간 것은 잘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고대사학회 쪽은 비석을 보관중인 중국 지안박물관이 다음달 재개관하면, 연구팀을 보내 비석 실물을 분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