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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잊혀진 역사

[고구려 백제 신라 중국에 있었나?] 삼국사기 천문 기록은 왜 중국에서 이뤄졌을까?

세덕 2013. 4. 30. 13:23

 

[고구려 백제 신라 중국에 있었나?] 삼국사기 천문 기록은 왜 중국에서 이뤄졌을까?
[고구려 백제 신라 중국에 있었나?] 삼국사기 천문 기록은 왜 중국에서 이뤄졌을까?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를 찾아서
2013.04.29 08:22 입력

1994년 4월 16일. 아침 신문에 위의 그림에 보이는 기사가 일제히 실렸습니다.

 

고대 국가의 천문 기록을 역으로 추적 해보니,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의 영토가 중국에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당시만 해도 식민사학이니 민족사학이니 해서 많은 논쟁들이 일어나던 시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서, 많은 논객들이 인터넷에서 논쟁을 하지는 않았지만, 역사에 관심 있는 일반 대중들에게 상당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기사입니다.

 

그림으로는 기사 내용을 정확이 읽을 수 없어 아래에 텍스트를 옮겨 보겠습니다.

 

"신라 등 삼국 '중국'에 있었다"

삼국시대의 일식 등 천체 관측 기록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고구려는 물론 백제와 신라도 중국 대륙에 있었다는 주장이 한 천문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우주론)는 15일 서울대 호암생활관에서 열린 한국 천문학회 춘계 학술대회에 낸 논문 '삼국시대 천문기록의 독자관측 사실증명과 삼국위치의 재조명'을 통해 "천체역학적인 계산 결과 삼국시대 일식의 관측지점은 백제의 경우 중국 동부의 발해만 부근, 고구려는 그 북방, 신라는 건국 초기는 양자강 유역이다가 나중에 한반도로 옮아온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중국 동부가 한국 고대국가의 영역이라는 주장은 일부 재야사학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으나 모두 서지학적 근거를 토대로 한 것으로, 자연과학적 증저를 바탕으로 한 이번 주장은 학계에 새로운 논란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박 교수는 삼국의 고대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67번의 일식현상을 추적했다.

 

컴퓨터로 계산한 당시 동아시아 전역의 일식과 대조해 이 가운데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거나 관측이 잘못된 13번의 일식을 뺀 54번의 일식을 바탕으로 최적 관측지점을 찾아나갔다.

 

박 교수의 아이디어는 이렇다.

 

지구상에 달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식은 띠 모양의 일부 지역에서만 관측이 가능하다. 일식마다 진행방향과 관측 가능지역이 다르므로 기록된 모든 일식을 동시에 관측할 수 있는 후보지를 좁혀나갈 수 있다.

 

또 해가 많이 가리는 곳일수록 관측이 쉽기 때문에 그곳이 관측지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식으로 찾아낸 일식 관측지점은 놀랍게도 모두 중국이었다.

 

24회의 실제 일식을 기록한 신라는 201년까지 중국 양자강 유역에서 일식을 관측하다가 그 뒤 5백31년 동안 아무런 관측기록이 없다가 787년부터 관측지점이 한반도로 옮아 오는 특이한 양상을 나타냈다.

 

백제는 19회의 일식을 고르게 관측했는데 관측 지점은 발해만 근처였다. 고구려는 일식 관측횟수가 적어 관측지점이 불확실하나 백제보다 북쪽일 것으로 추정됐다.

 

박 교수는 고려시대에 관측된 99번의 일식에도 똑같은 방법을 적용한 결과 한반도 중부지방이 관측지점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이 결과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는 삼국이 중국의 관측기록을 베꼈을 가능성이고, 둘째는 백제와 신라가 어떤 이유에서건 중국의 일식을 관측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첫째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신라의 경우 관측기록이 훨씬 많은 중국의 기록에서 26개를 임의로 빌려왔을 때, 결과적으로 중국의 관측지점인 서안이나 낙양이 아닌 양자강으로 나타날 확률을 0.24%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밖에 중국에는 없고 삼국만이 기록한 천체 현상의 비율이

 ▲금성이 낮에 보임

▲유성과 운석의 낙하 80%

▲달이 행성을 가림 70%

등에 이르는 사실도 일식의 독자 관측을 뒷받침해준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두번째 가능성에 대해 박 교수는 "역사학자에 맡기겠다"며 언급을 피했다.

 

그는 "자연현상에 대한 기록은 변조의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귀중한 사료가 된다"고 말했다.

 

재야 역사학자들과 일부 역사학자들은 중국의 동부에 한때 백제와 신라가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는 '한민족 대륙 경영설'을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서울대 노태돈 교수(한국 고대사)는 "백제가 4세기 이후 중국 요서지방에 백제군을 설치했다는 주장이 일부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을 뿐 백제와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는 설명은 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 대륙에 있었느냐?

 

이 논쟁은 재야 사학계와 주류 사학계가 오랜 시간 동안 논쟁을 벌이고 있는 사안입니다.

 

조금 더 시계 바늘을 거꾸로 되돌리면 고조선(古朝鮮)이 한반도에 있었느냐 아니면 중국 대륙에 있었느냐 하는 문제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980년 대 초반 초등학교 ‘사회과부도’에는 중국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하고 세운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제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국사 교과서에서 한사군의 위치에 대한 기술은 사라지고 맙니다. 한사군의 위치에 대한 논쟁이 매우 커졌기 때문이죠.

 

고조선이 중국에 있었다. 또는 고조선은 한반도에 있었다고 명확히 기술하기 보다는 어떤 쪽 손도 들어주지 않는 외면 전략을 사용한 것이지요.

 

고조선이 중국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우리 역사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축소, 왜곡됐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역사의 자부심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이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역사는 증거를 바탕으로 밝혀 나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역사적 유물 등 현재 발견되는 증거로 볼 때 한반도에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북한 역사학계는 고조선이 중국 대륙, 엄밀히 말하면 요동반도에 있었다는 학설을 채택했었습니다. 그리고 남쪽의 역사학계는 한반도에 있었다는 견해가 주류를 이뤘구요.

 

그런데 갑자기 북한의 역사학계 입장이 180도 바뀝니다. 평양에서 단군릉이 발견됐다고 발표하고 나선 것이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고대사의 무대가 중국이었느냐, 아니면 한반도였느냐를 놓고 많은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진실을 밝혀 낼 수는 있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