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의 기원은 신궁을 받드는 제사집단이다.
화랑의 기원은 신궁을 받드는 제사집단이다.
"화랑은 선도이다. 우리나라에 신궁을 받들고 하늘에 대제를 지냈다. 처음에 여자로 원화를 삼다 폐지하고 화랑을 설치했다." 필사본은 화랑의 기원에 대해서도 명확히 밝히고 있다.화랑이 신궁을 받드는 제사 집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이런 내용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화랑세기)필사본에 의하면 신궁이 제사 집단에서 화랑이 기원했다는 기록이 보이고 있고,
그리고 또 화랑이 처음엔 여자였는데 남자로 바뀐다는 어떤 성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화랑의 성격, 조직의 커다란 변화를 암시해주는 것입니다. 종전에 우리는 화랑하면 전사 집단으로만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닌 종교적인 제사 집단으로써의 가능성을 새롭게 모색해보게 되었습니다."
-이도학 박사 Kbs 역사스페셜 ‘화랑세기 필사본의 진실‘
태백일사 신시본기에 인용된 고려팔관잡기에는 삼랑의 뜻을 이렇게 전한다.
삼랑은 배달신이다....... ‘백성을 교화하고 형벌과 복을 맡은 자를 ’랑‘이라 하며.. 지금 혈구에 삼랑성이 있는데 이것은 곧 삼랑이 머무는 장소이다. 낭은 곧 삼신상제를 수호사는 관직이다.
삼랑은 배달시대에 삼신 상제님을 수호하는 관직이었다. 그래서 상제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백성의 잘잘못을 가려 복을 주기도 하고 벌을 주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삼랑은 신교정신으로 무장한 신교의 수호자이자 국가와 백성의 수호사졌다.
13세 흘달단군에 이르로 단군이 고조선 전역에 소도를 많이 설치하여 신교를 진작시키면서 출범시킨 ‘국자랑’이 고조선의 정식 낭가이다. 미혼의 자제들중에서 선발된 이들은 소도 바로 옆에 지은 경당에서 글공부를 하며 활쏘기,발달리기,검술 등으로 단련하고 예절,가악을 배우고 익혔다. 삼한의 경당에서 ‘문무를 겸비한 인재’가 나라의 동량으로 배출된 것이다. 국자랑은 밖에 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를 꽂고 다녔으므로 ‘천지화랑’이라고 불렀다 446
환단고기는 환국에서 비롯하여 배달국의 제세핵랑 →단군조선의 국자랑→ 북부여의 천왕랑→ 고구려의 조의선인,백제의 무절,신라의 화랑→ 고려의 재가화상 또는 선랑 , 국선으로 계승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