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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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고분군의 미스터리
나주 고분군의 미스터리
(나주=연합뉴스) 김태식.전승현 기자 = 영산강 유역에 자리한 전남 나주에 는 3∼7세기에 걸쳐 삼국시대에 조성 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이 밀집해 있 다.
한국 고고학계나 문헌사학계 대부분 은 이들 고분이 백제가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전남지방에 지배력을 본 격적으로 미치기 시작하던 시기에 이 일대에서 활약했던 백제 지방호족의 무덤이라 보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삼국사기는 기원을 전 후한 백제 시조 온조왕 때 이미 백제에 게 멸망당했다고 했지만 중국 사서에 는 292년까지 중국에 사신을 보낸 것 으로 엄연히 기록돼 있는 마한의 근거 지였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중 어느 하나도 나주 고분군 의 비밀을 명쾌히 밝혀주지는 못한다.
우선 큰 것이 길이 50m를 넘는 나주 고분이 무령왕릉을 비롯해 백제 옛도 읍인 공주나 부여지역의 백제왕실 무 덤과는 규모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 로 크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크기 하나만 보면 이 일대 고분은 경주 지역 신라고분과 비견된다.아무리 지 금의 전남지방 백제 지방호족이 세력 이 컸다 해도 부여나 공주의 백제 왕릉 을 능가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또한 이들 고분이 마한왕(족)들의 무 덤이라는 설명도 석연치 않기는 마찬 가지다. 중국사서가 비록 마한이 292 년까지 중국 왕조에 사신을 보냈다고 기록하고는 있을 망정 이 무덤 조성시 기와 대체로 일치하는 백제 팽창기에 마한은 급격히 위축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거대 고분이 밀집해 있고 또 이곳에서 금동관이나 금동신발,환 두대도 등이 출토되는 것을 볼 때 적어 도 나주 일대에는 강력한 중앙집권을 갖춘 고대왕국이 자리했었다는 점은 분명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비롯 한 우리측 역사서나 중국,일본 역사서 어디에도 나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 남지방에 왕국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 다. 나주 고분이 백제지방 호족이나 마 한 무덤이라고 주장하는 한국학계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지금의 전남지방은 백제 동성왕때인 498년 백제가 탐라국을 정벌하기 위해 지금의 광주인 무진주에까지 왕이 친 히 군대를 이끌고 갔다는 대목에서 비 로소 한국 역사에 고개를 내밀고 있다.
즉 적어도 역사기록만으로 볼 때 498 년 이전 전남은 한국 고대왕국 중 어느 나라 땅도 아니었다.
그러면 나주지방을 중심으로 거대 고 분군을 축조했던 주인공은 과연 누굴 까.
이 대목에서 기존 한국 사학계나 고고 학계가 거들떠보지도 않으려 하지만 일부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고대 왜(倭)의 한반도 남부 거주설이 주목 을 끈다.
사실 일본학계 일부에서는 지금도 광 개토왕에게 토벌당하기 전인 서기 400 년쯤 이전에는 왜가 한반도 남부에 있 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주장의 이면에는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이 도사리 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본 학자들이 왜는 본래 근거지를 현재의 일본열도에 두고 한 반도 남부에 식민지를 건설했다고 주 장하는 것과는 달리 이들 재야사학자 들은 원래 왜는 한반도 남부에 있다가 일본열도로 밀려간 한반도 동이족의 한 갈래라고 본다는 점에서 점에서 확 연히 구분된다.
사실 왜가 한반도에서 쫓겨나기전 전 남지방을 중심으로 한반도 남부에서 강력한 왕국을 건설했다고 가정하면 왜가 백제와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 는 광개토왕비(414년 건립)의 신묘년 조 기록이나 4세기말 신라와 백제의 왕자를 인질로 삼았다는 삼국사기 기 록이 무리없이 설명되는 점이 없지는 않다.
또한 고고학적 유물로 볼 때도 서기 400년경 이전에는 일본열도에 고대왕 국이 성립되지 않았으며 응신왕릉을 비롯한 거대 고분군이 일본열도에 집 중출현하는 것이 5세기 초반 이후라는 점이 왜의 한반도 남부 거주설을 부추 기기도 한다.
최근 발굴된 나주 신촌리 9호분을 비 롯해 몇년전 모습을 드러낸 광주 월계 동과 명화동 고분 등 주로 영산강 유역 전남지방의 고분에서 잇따라 출토되 고 있는 일본식 원통형토기가 주목을 끄는 것은 바로 왜의 한반도 남부 거주 설 때문이다.
실제 일본 한 고대사학자는 무덤양식 또한 일본식인 월계동과 명화동 고분 발굴 결과를 근거로 왜가 한반도 남부 를 지배했다는 논리를 펴는 글을 최근 에 발표했다.
여하튼 역사기록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은 나주 고분군과 여기서 출토되는 원통형토기를 비롯한 유물이 임나일 본부설과 맞물려 한일 두나라 학계에 서 일대 논란을 불러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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